불화(佛畵) 화가 강창호고려·조선 불화 재현에 심혈… 창조적 신작으로 <아름다운 불화전> 열어

"불화는 깨달음의 과정이고 수양 자체입니다. 그림 그리는 게 '해탈'인 셈이죠."

강창호 화가는 불화(佛畵)를 단순한 회화 이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종교성이 강조되는 것도 경계한다. 그는 불화를 그냥 '자연'이라고 한다.

거리낌과 막힘이 없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런 교감과 자유로움이 늘 존재하는 세계 말이다. 지금까지 강 작가가 불화와 인연을 맺고 함께 살아오면서 그려진 상(像)이다.

그런 불화는 적잖은 인고의 시간 뒤에 그에게 다가왔다. "고교 2학년 때 인사동에서 우연히 불화 전시를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대학원에서 불화를 전공하게 된 게 그때의 잠재된 경험 때문이 아닌가 생각돼요."

강 작가는 용인대 대학원에서 이태승 교수가 이끌고 있는 불교회화연구소에 참여해 고려와 조선의 불화를 옛 선현들이 했던 방법 그대로 화폭에 재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23x50.5cm 견본금니
그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불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과거 명작들을 먼저 소화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지난 5년 동안 재료 구입, 안료 준비, 비단 염색, 배채법 등 전통 방식으로 역대 불화 전적들을 재현하며 옛 거장들이 그린 작품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과정을 밟은 이유다.

또한 중국 채색 벽화의 도상을 이용해 창작을 시도하기도 했다. 벽화 질감이 나도록 삼베에 흙을 바르고 그림 속의 보살들을 하나씩 떼어내어 화폭에 담은 후 그 위에 먹선으로 그 형상을 완성해 나가는 방식으로 그만의 독창적인 화법이다.

작년 11월 그는 5년여의 수련결과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내놓아 호평을 받았다. 화엄경과 법화경 등의 변상도(變相圖)는 굵기가 동일한 가는 금선이 화면 가득해 빛으로 충만한 부처 세계를 보여주었고, 조선시대의 시왕도(十王圖)에서는 원본과 같은 필선과 색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이다.

강 작가는 4월 초파일을 앞두고 개성이 돋보이는 불화로 신선한 매력을 전한다. 서울 인사동 장은선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아름다운 불화전>에서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나한(羅漢)'이다. 작가는 고려와 조선에 걸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한도를 채색, 금니, 먹 등으로 다양하게 창작하였다. 그 중 대표작인 진채(眞彩) 나한도는 스승인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모습과 각양각색의 나한들이 석가설법을 듣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나무대행보현보살도 49x21cm 삼베,흙,먹,석채,금니
감지바탕에 금니로 그린 단독 나한상은 오랜 세월 먹으로 그린 선화 전통을 일시에 금니로 바꿔버린 혁신적 작품이다. 또한 삼베에 흙을 바르고 형상을 오려 붙인 나한도는 지난 전시에서 보여준 벽화 재현 기법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나한이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길을 가는 부처의 제자들이라면, 불화를 그리는 화가는 부처 세계를 구현하며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또 다른 의미의 구도자이자일 것이다.

"선현들의 불화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렸는데 많은 것을 포용하는 자연의 마음이 관객에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강 작가의 법고(法古)를 바탕으로 창신(創新)으로 나아가는 신작 20여 점은 이달 22일까지 만날 수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