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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게 작은 치유와 성장 계기 되길"

소설가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후 1년 반만에 신간 <어디선가 나를…> 출간
실제와 사진 이미지가 다른 사람이 있다. 신경숙 작가도 실제와 이미지가 다른 사람 중 하나다.

통통할 것 같은 작가는 실제 만나보면 같은 나이 또래 작가보다 오히려 살짝 야위었다.

그녀의 소설처럼 느릿느릿한 말투를 처음 들으면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건 별개'란 생각이 들지만,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작가는 다르구나' 생각하게 된다. 작고 느릿한 음성으로 필요한 말은 다 한다.

작가는 사진보다 오히려 자기 소설과 닮아 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이야기 같은 것. 문학평론가 황종연은 그녀의 소설을 이렇게 말했다.

"가녀린 눈송이들을 닮았지만, 소설 말미에 이르면 집채를 삼킬 수도 있는 눈사태처럼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두.개.의.동.그.라.미.

한결 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녀의 소설은 "문체의 미학이 빚어낸 매혹"이라고. 그녀의 문체는 잦은 쉼표, 반복어구, 말 줄임, 두서 없는 구문의 비약, 미완 결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말로 치면 '눌변'에 가까운 이 문체가 오히려 90년대 '여성 마음의 무늬'를 섬세하게 드러냈다.

특유의 느리고 반복되는 문체를 통해 드러난 감성은 낯익은 것을 낯설게 만드는 긴장이 있다.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증오 같은 닳고 닳은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그것과 대면한 인간의 내면 움직임을 드러낸다.

등단 25년차 작가의 소설이 어찌 한 모양새일까 싶지만, 단순화를 무릅쓴다면 '두 개의 동그라미'로 모아진다. 하나는 친밀성의 부재나 관계의 단절 혹은 고독으로 현상하는 현대인의 불행한 실존을 다룬 이야기다.

또 한 갈래는 '오래 전 집을 떠날 때'의 기억과 풍경을 그리는 소설이다. 물론 이 두 궤적이 따로 떨어져 흐르는 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한다. 고독은 삶의 원초적인 풍경에 대한 동경을 부르고, 그 원초적 풍경의 기억은 고독이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인 내용임을 확인시킨다.

서두가 긴 까닭은 신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다시, 그녀의 <풍금이 있던 자리>, <외딴 방> 같은 초기작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해 죄의식을 겪는 작중 인물들의 모습은 작가의 초기 작품에 자주 등장하던 인물들과 닮아 있다. 재작년 <엄마를 부탁해>가 나온 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연애 소설을 쓰려고요. <깊은 슬픔>처럼 쓰였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은 그렇게 쓴 것이다.

누.가.말.해.줄.수.있.을.까.

장편 <엄마를 부탁해> 이후 1년 반 만에 내놓은 신간은 지난해 6월부터 6개월 동안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연재한 작품이다. 편집자는 "연재 후 최종본만 4번을 바꾸었을 정도로 대대적인 수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작품의 축을 이루는 인물은 대학 동기인 윤, 미루, 명서와 윤을 짝사랑하는 고향 친구 단이다. 소설은 저마다 어두운 기억을 지닌 20대 남녀들의 사랑과 방황을 그린다.

윤은 어느 날 대학시절 은사인 윤 교수가 위중하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8년 전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윤은 윤 교수의 원고를 정리해주기 위해 사무실에 들렀다 미루와 명서를 만나게 된다.

미루는 제 눈앞에서 충격적인 방식으로 자살해버린 친언니로 인해 정신적 불안을 겪는 인물. 화사한 얼굴과 달리 노인처럼 쪼그라든 미루의 손은 그때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미루를 함께 보살피면서 윤과 명서는 서로 애정을 느끼지만, 이들의 사랑은 미루와 단이의 잇따른 죽음에 대한 부채감에 압도되고 만다. 그렇게 흐지부지 헤어졌던 두 사람은 죽음을 앞둔 대학 은사의 부름을 받고 8년 만에 재회, 함께 은사를 찾아간다. 이야기를 읽다 소설집을 펼쳐 '작가의 말'을 살핀다.

'청소년기를 앙드레 지드나 헤세와 함께 통과해온 세대가 있었다면 90년대 이후엔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청년기의 사랑과 열병과 성장통을 대변하는 것을 보며 무언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어를 쓰는 작가로서 우리말로 씌어진 아름답고 품격있는 청춘소설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374 페이지)

그러니 이 작품에는 단지 사랑만 그려진 게 아니다. 예수를 업고 강을 건너 구원받았다는 크리스토프 이야기는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문학과 삶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던지고 있다.

'우리는 무엇엔가에 의지해서 이 강물을 건너야 해. 그 무엇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자 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들이기도 할 테지. 지금 여러분은 당장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배나 뗏목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할 거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여러분을 태워 실어 나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여러분이 그것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는 것이네. 함께 아이를 강 저편으로 실어 나르게' (62~63페이지)

작가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울한 사회 풍경과 시간을 뚫고 나아가서 서로에게 어떻게 불멸의 풍경으로 각인되는지를 따라가 보았다"고 했다. "가능한 시대를 지우고 현대 문명기기의 등장을 막았다"고도 덧붙였다.

죄의식을 겪는 인물은 초기작과 닮아 있지만, 삶을 바라보는 넉넉한 시선은 20~30대 젊은 작가에게서 느낄 수 없는 점이다. 특히 주인공 윤과 명서가 오랜 시간 후, 서로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았음을 내비치는 결말부가 그러하다. "젊은이들에게 작은 치유와 성장의 계기가 되길 바라며 썼다"는 작가의 의도와 무관치 않다.

제목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최승자 시인의 시에서 따왔다고 들었습다.

"최승자 시인의 시 중에서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란 시가 있어요. 우리가 소통을 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노크하는 소리로 '전화벨 소리'를 상정했습니다. 제가 그 시를 좋아해서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목을 정하고 시를 찾아보니까 '어디선가'란 표현은 없더라고요. 연재 당시 제목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였는데, 너무 길다는 말을 많이 들어 단행본을 내면서 '끊임없이'란 표현은 뺐어요."

집회로 가득한 캠퍼스, 학생운동을 하던 애인의 실종 등 작품의 배경이 80년대로 읽혀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소설은 80년대 이야기가 아니에요. '작가의 말'에도 썼는데, 풍속이 달라지고 시간이 흘러가도 인간 조건의 근원으로 걷고 쓰고 읽는 일을 생각했기 때문이죠. 사실 작품에서 시대적인 배경은, 독자가 여기 살지 않았다고 가정했어요. 예를 들어서 일본이나 미국 사회에 살고 있는 독자가 이 작품을 읽을 때, 시대가 전혀 짐작되지 않게. 실제로 이 소설에 나오는 일들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자면 크리스토프 이야기라든지, 사랑을 하게 될 때 상대방에게 자기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하는 것, 또 힘든 시간을 겪어내는 과정들…….

마음이 아닌 소통 구조를 거의 제거했어요. 소설에는 전화 벨소리 외에는 문명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예전보다 문명이 발달했지만, 사람은 점점 더 고독해지고 불안해지는 듯해요. 마음을 주고받는 것만이 치료가 될 수 있는데, 그런 마음을 80~90년대와 2000년대의 경계가 없다고 생각하고요."

다른 책을 출간하실 때도 원고를 끝까지 붙잡고 있는 작가로 유명하신데요, 이번 책도 편집부에서 '대대적인 수정을 거쳤다'고 말했습니다. 연재 당시 썼던 내용과 단행본으로 퇴고하면서 바뀐 내용은 뭔가요?

"주인공 네 사람은 한 시절 청춘을 통과해 나가는 인물들이에요. 그 중에서 단이란 친구가 군대 생활을 하는 장면은 연재 당시 편지 한 토막만 넣었는데, 단행본으로 엮으면서 비중 있게 담았습니다. 미루의 언니 미래가 겪는 일은 아침에 연재할 수가 없어 단행본 낼 때 넣었어요.(미래는 애인의 실종 후 동생 미루가 보는 앞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투신자살한다) 윤 교수의 생활이나 전체적인 에피소드도 다듬었고요. 우스운 이야기인데요, 좀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쓰면서도 생각했는데, 밝게 웃을 수 있는 유머들을 제 소설에 처음으로 시도해 본 작품이기도 해요. 잘 소화가 됐는지 모르겠네요."

어떤 부분이?

"예를 어떻게 들어야 할까요? 낙수장이란 별명의 학생이 사랑하는 여자가 우니까 달래주려고 '네 어깨를 보니 내 가슴이 아프다'말해야지 생각하다 '축 처진 네 가슴을 보니 내 어깨가 아프다'라고 말하는 장면이죠.(97페이지) 독자들이 느껴주길 바랬는데, 저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저는 왜 유머가 안 될까요…?"

지난 한해 <엄마를 부탁해>로 각종 강연회, 인터뷰가 쇄도하면서 이 작품을 연재하셨던 것 같아요. 전압이 다른 작품을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게, 힘들지 않나요?

"강연회와 인터뷰가 있을 때만 잠깐 외출하는 거니까요. 연재 전에 새벽 3시부터 아침 9시까지 이 작품을 쓰겠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썼어요. <엄마를 부탁해> 이후 첫 소설이어서 저한테는 흡족해요. 작가로서의 균형을 잃지 않게 시간을 통과하게 해 준 것 같아요. 예수를 업어서 강을 건넜다는 크리스토프는 사실 예수 자신이기도 하다죠. 예수가 누군가를 저 강 건너로 데려다 주기도 하고, 스스로 업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 서로에게 서로를 물 건네게 해 주는 자, 등에 업히는 자 역할을 하길 바랐습니다. 실은 저도 써가면서 누군가의 등에 업혀서 이 작품 바깥에 건너가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기도 했고요."

작가의 첫 인터넷 연재 작품이지요. 연재하면서 요즘 젊은 세대가 나와 이렇게 다르다, 생각하신 적은 있나요?

"제가 나이가 들었다 느낄 때는 그냥 젊은 세대들이 예쁘게만 보일 때에요. 예전에는 마음 한 쪽이 쓰리기도 하고 했는데.(웃음) 이 소설에는 지금 시대의 유행 같은 것은 일체 없습니다. 설령 캡슐을 먹고 일상을 살아가는 삶을 살아도 남아있는 근본적인 것들로 청춘 속으로 들어가 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휴대폰 문자 한 번 주고 받는 것도 없습니다. 한 존재와 한 존재 사이에 마음을 가까이 가고, 사랑하고 뭔가 일 때문에 멀어지는 일, 서로에게 남기는 성장통, 불편의 풍경이 각인되기를 바랐습니다. 아마 젊은 친구가 아니라도 나중에 이 작품을 읽을 때 어디선가 내가 가졌던 그런 마음들이 들어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연재를 마치고도 또 쓰고 고쳐서 다시 쓰고, 그랬습니다. 젊은이들이 성장하는 것과 비슷하게 작품도 완성이 됐고요. 어떤 해답이라고 할지, 도움이라든지, 그런 정확한 건 없다고 봐요. 비가 온 뒤 한 줄기 바람 같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쓴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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