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앙팡테리블] (65) 리코더리스트 염은초금호 영재출신, 일본서 리사이틀 통해 프로연주자 발돋움

중세시대에 태어났지만 고전과 낭만 시대를 거치며 자취를 감췄던 비운의 악기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이면 누구나 배우는 리코더다.

바흐, 헨델, 비발디 등의 당대 작곡가들이 다수의 작품을 남길 정도로 바로크 시대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악기다.

화려한 소리를 가진 플루트의 등장으로 무대에서 설 자리를 잃은 듯했지만 현대에 들어서 고음악 바람이 불면서 리코더도 다시 생명력을 얻고 있다.

그래도 리코더를 전공한다고 하면 아직은 낯설다. '리코더리스트'라는 호칭도 어쩐지 입에 착 달라붙질 않는다.

프로페셔널들을 위한 악기가 아니라는 고정관념 때문일 거다. 덴마크 출신의 리코더 연주자인 미칼라 페트리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바이올린 협주곡인 '사계'를 리코더로 연주하거나 모차르트의 플루트 사중주를 리코더 버전으로 편곡해 녹음하는 식이었다. 리코더리스트가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여기, 리코더란 악기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한 소녀가 있다. 올해로 만 18살인 그녀는, 리코더의 레퍼토리만으로 그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는 리코더리스트 염은초다. 금호 영재 출신으로 지난 5월 초, 일본 야마나시 현에서 열린 24회 야마나시 고음악 콩쿠르에서 2위 없는 3위를 수상했다.

야마나시 고음악 콩쿠르는 카운터 테너인 요시가츠 메라,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인 기리야마 다케시 등 일본 차세대 고음악 연주자를 배출한 일본 유일의 고음악 콩쿠르다.

"비올라 다 감바, 성악, 바로크 바이올린까지 악기 구분없이 선발된 거라 좋았어요. 이 콩쿠르 덕에 일본에서의 리사이틀이 올해와 내년에 네 건이나 잡혀서 더 기쁘죠. 그동안 일본에서 친구들과 앙상블 연주를 하긴 했지만 리사이틀은 이번이 처음이거든요."

염은초의 단독 초청공연은 8월 23일 도쿄 공연을 시작으로 11월에 이어 내년까지 이어진다. 이들 공연을 통해 한국보다 먼저 일본에서 프로 연주자로서 발을 뗄 수 있게 된 것. 유럽만큼이나 일본에도 고음악 공연만 찾아다니는 마니아가 많다는 점은 그녀의 마음을 한결 즐겁게 한다.

염 양이 처음 리코더를 마주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초등학교 3학년 때다. 흥미를 느끼고 전공으로 방향을 튼 것이 3년 후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를 거쳐 뉴질랜드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만 16살에 스위스 취리히 음악대학에 입학해 현재는 졸업을 앞두고 있다.

"리코더도 종류가 많아요. 중세시대 악기는 원통형의 나무에 구멍 뚫어 놓은 것처럼 가장 심플하죠. 르네상스로 가면 몸통, 머리가 나뉘고 좀 더 디테일 해지죠. 바로크 시대로 오면 머리, 몸통, 발 세 부분으로 나뉘고 음정이 정확해져요." 1970년대에 나온 현대의 리코더는 기존의 형상을 완전히 뒤집는다. 기다란 나무막대처럼 생긴 그것은 콘트라베이스만큼 큰 것도 있다. 리코더이지만 현대의 리코더는 페졸트란 이름으로 불린다.

연주하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현대 곡 중엔 전자 음악이 많아요. 무대 위에 연주자 말고도 두 명 정도의 엔지니어가 필요해졌죠. 흔히 아는 플라스틱 리코더나 페졸트에 마이크를 끼우고 연주하면 엔지니어들이 전자음을 조절해주는 식이죠. 유럽에서는 리코더 연주자들의 트렌드라고 볼 수 있어요. 존 케이지처럼 실험적인 퍼포먼스나 즉흥 연주도 많아요. 올해 9월에 저도 취리히에서 동료들과 실험적인 연주 하려고 해요."

염 양은 현대의 리코더 레퍼토리도 적극적으로 익혀가고 있다. 지난해 여름,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선보인 현대곡도 반응이 좋았다. 두 개의 리코더를 입에 넣어서 한 번에 연주하다가 중간에 '꺄악' 비명도 지르는, 일종의 퍼포먼스 같은 연주였다. 한국에 무대에 다시 서면 리코더의 기존 이미지를 깨는 연주를 꾸준히 선보이겠다며 야무진 포부를 다진다.

"아직 리코더로만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진 않지만, 프로 연주자로 성장하고 싶어요. 리코더가 얼마나 가능성이 많은 악기인지 보여주고 싶거든요."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