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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얼굴 뒤 슬픈 모습 상상해요"

[문화계 앙팡테리블] (67) 이영주 시인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우화적 상상력으로 어두운 현실 포착
  • 사진: 전소연
닳고 닳은 '언어의 연금술사'란 말은 본래 시인의 것이다. 언어를 다듬어 얼마만큼 정결하게 노래하느냐는 시의 서정만큼이나 시의 '급수'를 좌우한다.

3~4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글이 에세이가 아니라 시로 정의될 때, 이 기준은 언어의 농도에 있다. 언어를 다듬는 법은 새 말을 만드는 것과 이미 있는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터, 때문에 시인을 '모국어의 첨단을 걷는 자'라 하지 않겠는가.

이영주의 시는 그 후자의 방법(이미 있는 말에 새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택하고 있다.

'겨울 밤에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밖에서 안으로, 아무도 없는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차가운 칼날 같은 손잡이를 떼 낸다. 손잡이가 있으면 한 번쯤 돌려 보고 배꼽을 눌러 보고 기하학적으로 시선을 바꿔 볼 수 있을 텐데. 어머니가 방바닥에 늘어놓은 축축한 냄새들.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버섯들이 있었는데, 잠에서 깨면 어머니는 버섯 머리를 과도로 똑똑 따고 있었다. (…) 네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바깥에 두고 온 손잡이를 어두워서 찾지 못할 때, 아무도 없는 안쪽이 버섯 모양으로 뒤집어질 때, 너는 성에 낀 202호 창문을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시 '언니에게' 부분)

그녀의 언니는 친근한 '자매님'이 아니라, 내면의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 은밀한 내부다. 언니는 나의 가장 안쪽에서 저 바깥을 환기한다. 언니라는 말의 내부는 외부를, 타인을 창문처럼 달고 있다.

외부와 내부를 이어주는 창문은 외부에서 내부를 바라보는 구멍이자 내부가 외부로 이어지는 통로다. '언니'와 '창문'은 그녀의 시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그녀의 시에는 이렇게 밑줄 그으며 읽어야 하는 단어들이 수두룩하다.

시인 이영주.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해 <108번째 사내>와 <언니에게> 두 권의 시집을 냈고, 김경주, 김민정, 안현미, 장이지, 김근 등이 속한 시 동인 '불편'의 멤버다. 앞의 시인들은 2000년대 이른바 '미래파'논쟁의 한 가운데 있던 시인들이고 그녀의 시 역시 이 '미적 테두리'로 읽힌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우화적 상상력으로 현실의 어두운 면을 포착한 그녀의 시는 두 번째 시집에 이르러 더 견고해졌다.

동인의 이름처럼 시가 '불편'하게 읽힌다는 감상평(시 언어가 난해하다는 것과 서정성이 없다는 평)에 대해 시인은 "모든 시는 서정시다. 행복한 서정시와 불행한 서정시가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물론 그녀의 시는 후자(불행한 서정시)일 테다.

"제 시는 화자가 분열되고, 불행하기 때문에 불편하게 읽히는 거잖아요. 저는 타자와의 합일을 위해서는 자기분열과 세계와의 불화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시는 이 분열 과정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아름다워지기 전에 뒤를 돌아보면 안 돼. 오르페우스는 어린 딸과 침대가 없는 외계(外界)로 가기 위해 천상의 노래를 부른다. 목소리를 잃고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본다.' (시 '뒤' 부분)

시에서 음울하고 어두운 세계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시인은 "사람의 웃는 얼굴 뒤로 슬픈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고 말했다.

"10대 때 친구가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등 죽음의 세계를 너무 많이 본 거죠. 이 때 경험을 털어내고 싶고 그런 지점에서 시를 써온 것 같아요."

여기 젊은 시인이 있다. '20세기와 21세기 사이를, 푸르게 방황하고 유려하게 왕복하는 시인'(시인 김소연의 추천사)이. 음울하고 어두운 세계를 방황하는 분열된 자아는 이 고민의 흔적일 터, 이 긴 방랑길의 끝을 기대해 보자.

'내 악행의 기록을 남기면서/ 나는 많은 것이 되었다가, 많은 것으로 흩어졌다.' (시집 <언니에게>에 쓴 자서(自序)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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