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조각가개인전 <뒤틀림> 열어… 재료 살린 작품 통해 차원 이동 경험했으면

김주현 작가가 개인전 <뒤틀림>을 마련한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니 거대한 거미줄이 빛나고 있다. <뒤틀림-그물망>이다.

구리선을 얽고 뒤틀어 만들었다. 들여다볼수록 오묘하다. 복잡해 보이는데 정돈된 느낌이고, 재료가 선인데도 공간감이 있다.

"이 부분은 피보나치수열, 이 부분은 등차수열을 적용했어요. 변수를 조절하고 방향을 잡으니 이런 모양이 되었죠."

작가의 소개처럼 이 작품의 '자연스러움'은 과학적 법칙이 작동한 결과다. 김주현 작가는 탐구하는 자세로 유명하다. 본보기로 삼는 이들도 예술가와 과학자를 넘나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모리츠 에셔 등이다.

"프렉탈 이론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어요. 다 이해하지 못해도 직관적으로 세계가 이렇게 이루어졌구나 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게 일상을 보는 시선에까지 영향을 미쳐요."

'뒤틀림-그물망'
이번 작품에 대해서도 지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선이라는 1차원적 재료를 면이라는 2차원과, 3차원의 부피까지 확장시켰다. 차원 이동이다.

"작업하면서 <숨겨진 차원>이라는 문화인류학 책을 읽었어요. 일단 한번 다른 차원을 알게 되면 이전 차원의 삶을 완전히 다르게 보게 된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어요. <뒤틀림> 전의 작품들이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했으면 합니다."

작업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재료를 '살리는' 것이다. 재료의 속성과 가능성을 이해하고 다룬다. 구리선으로 만든 작품에는 조명이 달렸다. 전기가 통한다는 점을 이용했다. 나아가 선과 선이 만남으로 인해 불빛이 들어왔다는 관계성에 대한 메시지도 담았다.

관계성은 최근 김주현 작가의 작업에서 꾸준히 나타나는 테마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 생명 간 관계를 일깨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2007년에는 한강에 <생명의 다리>를 놓을 것을 제안했다. 생명이 분자와 기관과 개체, 종과 환경 등 여러 요소들 간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라는 내용의 과학철학책 <생명의 그물 The Web of Life>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수만 개의 나무 막대를 쌓아 만드는 보행 전문 다리다.

"절을 지을 때 기와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 것처럼 수많은 나무 막대기에 마음을 담아 다리를 짓고, 천천히 건너다니다 보면 생명의 원리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실제 지어지지는 못했지만, 당시 이 아이디어는 건축가와 물리학자, 도시계획자와 활동가 등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 간 교류와 논의를 이끌어냈다. 세상 속 관계를 만드는 데 한몫한 셈이다.

작년에는 <누구나 꾸는 꿈> 전을 통해 식물과 함께 살 수 있는 실내 공간을 선보였다. 전시와 함께 출간한 동명의 에세이집에서 김주현 작가는 "조각가는 왜 항상 작업을 하기 위해 죽은 나무를 써야 하는 걸까. 살아 있는 나무와 함께 작품을 만들 수는 없을까"라고 토로하고 있다. 그 고민의 결과 식물이 자라는 탁자, 나무 그늘 아래 쏙 들어가는 평상, 식물이 증식하는 탑 등이 탄생했다.

"도시 환경이 얼마나 삭막해요. 집안도 온통 사람 위주의 인공 공간이죠. 만약 사람들이 식물이 왕창 있는 와중에 끼어 산다면, 그 소중함을 실감할 수 있고 외부 환경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본업(?)은 조각이지만, 김주현 작가의 영역은 이처럼 재료에서 공간, 도시와 환경을 가로지른다. 건축가들이 협업을 제안할 정도다. 작가도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제 건축물로 태어나는 것을 환영한다. 스스로도 언젠가 "나를 위한 동굴집"을 설계해볼 생각이다.

김주현 작가의 작업이 언뜻 개념적으로 보이면서도 이토록 실용적인 것은 그 한 축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정헌이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업이 1996년 이후 "재료의 물성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던 이전과 달리 경첩을 사용하면서 자기확장을 시작했다"고 평가하는데 이는 작가의 삶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작업할 수 있는 시간도 힘도 모자랐어요. 작업을 나누어 할 수밖에 없다보니 자연스레 가벼운 재료를 쌓고 잇는 방법을 시도하게 됐죠."

환경에 대한 관심도 "연륜"에서 비롯했다.

"살다 보니 주변 문제가 다만 사소한 것이 아니라, 멀리까지 파생되는 것임을 인식하게 된 거죠. 관계성을 깨닫게 되었달까요."

작가는 에세이집에서 '육아'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내 아이가 생 별안간 모든 게 변했다. 그 또래 아이들을 모두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내가 관심을 갖고 눈을 마주치며 웃는 아이들도 점차 많아지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자 이미 대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다 내 자식처럼 느껴진다. 이에 따라 걱정도 많아졌다.(중략) 내 자식만 잘 키워서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은 도대체 누가 하는지 모르겠다. 내 자식을 사랑으로 정성껏 키운 사람이라면 남의 자식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모를 리 없건마는. 이렇게 참견을 하다 보니 결국은 교육정책, 사회, 정치에까지 관심을 두게 된다. 모든 생명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임을, 자식을 키우면서 겨우 깨달았다."

김주현 작가의 작업은 이처럼 '탐구'와 '생활'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 전시는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에 위치한 공간화랑에서 7월16일까지 열린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