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백승우작년 일우사진상 대상… 블로우업·유토피아 시리즈 전시

피사체를 찍어야만 작업이 시작되는 사진은 태생적으로 감성적이기보다 이성적인 매체다. 개념미술은 1960년대에 이미 사진 속으로 들어와 사진의 내연과 외연을 확장시키고 있다. 사진이 웹과 만난 이후 이런 성향은 더 강해졌다.

아무도 밟지 않은 땅의 풍광을 찍는다는, 수고스러움과 치열함을 담보로 하는 사진에 대한 태도는 이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진작가들의 몫이 아니게 됐다. 인터넷에서 고화질의 이미지를 수천 장쯤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우사진상 대상 수상자인 백승우 작가도 이제 몸보다는 머리로 더 많은 작업을 하는 사진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을 사진가가 아닌 '건축가'라고 칭한다. 자신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나름의 규칙과 틀, 그리고 스토리텔링 때문이다. 그가 사진을 촬영하는 데 드는 에너지의 비율은 100중 10에 불과하다. 100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의외로 '리서치'였다.

'어디를, 누구를 찍을 것인가'보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건축가로 따지면 설계도면 작업에 해당한다. 일우 스페이스에서 전시 중(6월 10일~7월 7일)인, 전쟁과 북한을 소재로 작업한 블로우업(Blow up) 시리즈와 유토피아(Utopia) 시리즈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그의 작품의 방점은 사진의 촬영자보다 이후의 '비틀기'에 찍혀 있다.

북한을 소재로 사기를 치다

블로우업 시리즈는 2001년, 백 작가가 평양에서 한 달간 머물면서 촬영한 사진이다. 북한 당국은 촬영된 필름을 가져가서 현상하고 그 중 유출되면 안 되는 부분을 자르고 돌려줬다. 결국 필름 속엔 익히 보아온 평양의 이미지만이 남았다. 그 필름을 다시 꺼내본 건 4년이 흐른 후다. 자세히 보니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이미지들이 포착되어 있었다.

마치 트루먼 쇼의 세트장처럼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 그들 중엔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호텔 앞을 뛰는 여성도 있었다. 북한 당국이 늘 삭제했던 부분이지만 기념사진 촬영 중에 우연히 찍힌 작은 부분이 남아 있었다. 이 여성을 비롯해 북한이 숨기려 했던 이미지를 작가는 '블로우 업'(확대)했다.

유토피아 시리즈의 촬영자는 백 작가가 아니다. 일본을 통해 구입한 사진으로, 북한 정부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하지만 원본은 백 작가의 손에 의해 상당 부분 조작됐다. 5층의 낮은 건물이 높여지고 확장되면서 그것은 거대한 군함을 연상시킨다. 옅은 하늘색과 붉은색의 배경은 이 사진을 러시아나 미국의 프로파간다적인 이미지로 채색한다.

그의 작업은 말하자면 '뉴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사진이 곧 진실을 말했던 것과 달리, 그는 단지 다큐멘터리의 틀만을 빌려 대상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사기죠. 이야기를 비틀고 꼬아서 다소 복잡해진 사기라고 해야 할까. 이미지 작업을 하면서 제가 조작한 것을 숨기지 않아요. 오히려 더 과장하죠.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가장 진지한 듯한 마무리를 가진 다큐멘터리의 틀을 빌렸습니다. 북한은 왜곡하기도, 거짓말하기도 쉽기 때문에, 사기를 치기에도 더없이 매력적인 소재지요."

붉은색 바탕의 북한 건물은 16개 프레임으로 쪼개져 있다. 8개국 16개 도시에서 각각 현상한 사진이다. 이는 북한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폭력적인)시선들이기도 하고, 현상 장소와 전시 장소가 바뀌면서 대상의 변질된 의미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에서 알몸의 원주민이 사는 곳에 미국인들이 여행을 왔어요. 원주민에게 1달러씩 주고 같이 사진을 찍었거든요. 불과 6개월 만에 원주민들의 삶의 방식이 완전히 변해버렸죠. 다른 일은 안하고 다들 옷을 입고 나와 사진을 찍는 거예요. 이건 미국인이 원주민에 가한 일종의 폭력입니다. 나와 다른 것을 일방의 시각과 판단으로 재단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폭력인 거죠."

백 작가가 궁극적으로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실재와 허구의 모호한 경계, 소통되는 가운데 조작되고 왜곡되는 관계가 백 작가가 끈질기게 탐험하는 화두다. 그것을 이야기하기에 북한은 적절한 소재였지만 주제보다 소재가 더 자라버린 탓에 앞으로는 북한을 주연배우로 세우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도시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다

그의 작업은 리얼 월드(real world) 시리즈로 시작됐다. 리얼 월드 1이 세계의 유명 건축물의 미니어처 버전을 찍은 것이었다면, 리얼 월드 2는 장난감 병정들을 군사교본대로 도시에 배치해 놓고 찍은 사진이다. 백승우라는 작가를 국내외에 알린 시리즈지만 그 이전에 그는 108번뇌, 조선 시리즈 등의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다만 리얼 월드는 프로세계에 자신을 포지셔닝하기 위해 선택한 시리즈였던 것. 그의 치밀한 계산은 이런 부분에서도 읽힌다.

하지만 다음 시리즈는 건축가처럼 규칙과 틀을 세우던 기존의 방식을 180도로 뒤집는다. 이미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촬영을 했던 것과 달리, 촬영이 완성된 후에야 그 이야기도 완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다. 바로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까지는 제가 시나리오를 미리 써서 이야기를 끌어왔다면,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내가 연극의 배우로 있는 무대에서는 이야기를 채집해서 하나의 맥을 찾아가야 할거예요. 틈틈이 도시 사진을 찍으면서도 어느 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면 내가 뭘 찍는지 모를 때가 있어요. 하지만 찍다 보면 어떤 정점에 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는 곳을 내가 볼 수 없으니, 정의를 내리고 간다면 엉뚱한 곳으로 흐를 확률이 많거든요. 북한은 나의 정의가 맞든 틀리든, 백승우의 정의인 것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나중에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발표하진 않았지만 그가 해오고 있는 도시 프로젝트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세계 어느 도시든 가방을 하나씩 사서 그 안에 골동품 가게에서 산 연필, 엽서 등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이 묻어 있는 물건을 담아오는 식이다. 유명하다는 홍대 앞 커피샵에서 영국의 공원 벤치를 발견하고 장소의 변경으로 인해 의미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데 주목한 것이다. 하지만 도시 프로젝트에서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곧 뉴욕에서의 두산 레지던시 생활을 접고 가을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준비 중인 프로젝트 중 하나는 일본의 유명 포토그래퍼인 타카시 혼마와의 크로스 작업. '도쿄'에 대한 이미지를 촬영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던 타카시 혼마는 서울을 촬영하고, 백승우 작가는 도쿄를 촬영하는 방식이다.

내년이나 내후년쯤 이들의 작업은 책과 전시로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 같다. 백승우 식의 '비틀기'가 도시 프로젝트에서는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그의 작업이 기대되는 건, 그의 작업의 방점이 구태의연하지 않음, 곧 '비틀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