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69) 작곡가 전민재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작곡부문 우승… 피아노 결선진출자 의무 연주

작곡가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작곡가 전민재(23) 씨는 자신의 작품을 듣고 '동감했다'는 청중을 만날 때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자신의 작품을 들은 청중으로부터 그 말을 들었다. 콩쿠르에서 결선 진출한 12명의 피아니스트가 그의 수상작을 연주한 뒤였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작곡부문 사상 최연소 수상자인 전민재 씨는 지난 5월 작곡부문 우승 소식을 알려왔다.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그동안 한국의 기악부문 유망주들의 입상소식으로 낯설지 않은 대회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작곡 등 4개 부문으로 구성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작곡은 2년마다, 그 외는 4년마다 번갈아 가며 대회가 개최된다. 올해는 피아노 부문 콩쿠르가 이루어진 가운데, 결선 진출자들은 모두 전년도 우승한 작곡가의 곡을 의무적으로 연주해야 한다. 그 곡이 바로 전민재 씨의 '표적(Target)'이었다.

전씨는 수상작 '표적'에 대해 '서정과 이야기를 상실한 20세기 음악에 반대한다'는 신념으로 썼다고 설명했다. 어떤 의미일까. 10대 후반부터 불과 지난해 봄까지도 아방가르드 음악에 심취했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음악적 전기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지난해 봄, 현대음악제에서 연주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청중들의 시큰둥한 반응.

"애착을 가지고 쓴 작품이었는데, 무미건조한 청중들 모습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음악을 시작하고 사랑했던 때로 돌아가자'는 것이 목표가 됐어요. 20세기 서양음악 작곡가에겐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작곡할 지가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서정성과 이야기를 상실하게 된 거죠."

이런 반성과 고민 속에서 탄생한 곡이 '표적'이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스토리를 만들고 여기에 현대 음악적인 재료를 조합해냈다. 생상이나 라벨의 협주곡에서 느껴지는 '유희적인 측면'에 무엇보다 초점을 맞췄다고 그는 설명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전씨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자퇴서를 쓰고 작곡에 몰두해왔다. 15살, 글루크의 발레 음악 <돈 주앙>을 듣고 큰 감동을 하기 전까지 그에게 작곡은 취미일 뿐이었다. 하지만 취미라는 범주에 묶어두기에 그의 재능은 두드러졌다. 6살에 악보를 베끼면서 작곡 공부를 시작했고, 7살 때는 부모님을 위한 '왈츠'를 작곡했다.

"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모님께 들은 바로는, 7살 때 자다가 일어나서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 새벽에 일어나서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당시 악보를 보면 협주곡을 작곡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음악 영재로 태어났지만 화가인 아버지와 서예가인 어머니는 그에게 '늘 겸손하라'고 말씀하신다. 매일 그는 바흐의 작품을 연습하면서 마음을 다시금 새롭게 한다고 했다. '평생 공부해야 할 것 같다'는 그이지만, 우수한 실력과 투철한 작가 정신을 가진 동료를 보면서 한국 작곡의 미래는 낙관한다고 말한다.

내년 그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좋아하는 고전음악을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어서다.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만은 '스스로 연주할 수 있는 작곡가도 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도 전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