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피아니스트 이노경드럼 대신 장구로 재즈 피아노 트리오 구성한 4집 앨범 발표

'덩 덩 덩 따 따 덩 드르닥 따 궁' 마치 성냥불(matchmaker) 혹은 장작불이 타면서 내는 듯한 소리에 재즈 피아니스트의 선율이 입혀진다. 그들의 화음에 베이스가 조용히 끼어든다. 곡 전반의 리듬을 장악한 장구와 멜로디를 입히는 피아노 사이를 베이스가 끈끈하게 이어준다.

최근 재즈 피아노 트리오로, 4집 앨범을 발표한 이노경의 앨범 타이틀 곡인 'Matchmaker'다. 일반적인 재즈 피아노 트리오는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되지만 그녀는 이번 앨범에서 드럼 대신 장구를 들여왔다.

재즈와 섞인 '몽금포 타령'(Forbidden Land로 수록)은 한없이 서정적이고 '오돌또기(OhDolDoGi로 수록)'는 사색적이기까지 하다. 총 11곡이 수록된 앨범엔 경기도의 경복궁 타령, 서도의 몽금포 타령, 남도의 진도 아리랑, 동부의 강원도 아리랑, 제주도의 오돌또기 등 도별 민요가 편곡되어 담겨 있다.

"국악과 재즈는 공통점도 있고 서로 보완도 해줍니다. 재즈는 물론이고 국악, 특히 시나위 장단이 즉흥성이 강하고 중요하죠. 그래서 국악을 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게 장단이에요. 그만큼 국악에선 리듬, 장단을 중요한 기반으로 삼고 있죠. 그런데 국악을 배우다 보니 화성적인 측면이 부족한 걸 알았어요. 재즈가 이 부분을 보충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리고 재즈엔 클래식에도 없는 '텐션'이란 게 있으니, 국악과도 잘 어울릴 거 같았어요."

장구잡이(임용주)는 중모리 장단, 엇모리 장단, 동살풀이 장단 등 그녀가 지정해준 장단으로 연주를 이어갔다. 국악기만 사용해서 서양음악을 연주하며 서양의 틀 속에 국악을 넣기보다는 한국적인 색채를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photo by 김현진'
그동안 재즈와 국악의 조합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주선한 국악 장단으로 대표되는 장구와 뛰어난 화성을 가진 재즈 피아노의 만남은 기존의 국악과 재즈의 크로스오버와는 다르게 읽힌다. '무엇'이 아닌 '어떻게'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할까. 국악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장구의 국악 장단을 기반으로 지어낸 정제된 연주는 국악과 재즈를 세련된 방식으로 '매치메이킹'(matchmaking, 중매)하고 있다.

음악 평론가 김진묵 씨는 "창작의 기본은 틀을 깨는 것이다. 드럼 대신 장구가 자리한 새로운 쿨사운드. 우리 재즈는 이렇게 한발씩 세계로 나가고 있다"고 평했고, 대금 명인인 최상화 씨는 "그녀의 재즈는 한국의 막걸리를 세계의 맛으로 숙성시켰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녀의 스승이기도 한 헝가리 출신의 저명한 재즈 피아니스트 라즐로 가도니 역시 그녀의 진지하면서도 이색적인 시도에 흡족한 눈치다. "그녀의 모던한 하모니와 블루지한 전통적 음악 요소가 매우 잘 어울린다. 새로운 리듬의 가능성을 이 창의적인 앨범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리뷰했다.

사실 이 앨범이 나오기까지 녹록지 않았다. 4집을 위해 꼬박 쏟아 부은 시간은 3년이다. 국악을 이해하는 시간이었으며, 이 과정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국립국악원에서 1년간 장구를 배웠고, 중앙대 국악교육대학원에서 2년간의 석사 과정을 밝았으며, 지금은 국립국악원에서 정가(시조창)를 배우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궁극적으로 이노경만의 사운드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전작에서도 재즈와 트로트의 조합을 시도한 앨범 을 발표하며 한국적 색채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던 그녀다. 음악가로서 점점 커져가는 월드뮤직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국악은 재즈 피아니스트 이노경의 정체성 찾기의 단초가 되어주고 있는 셈이다.

"재즈 뮤지션으로서, 나만의 컬러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해외유학생들이 많아지다 보니 컨템포러리 재즈에서는 사운드가 비슷비슷하거든요. 국내에선 래그타임(ragtime)이나 블루스 같은 세부 장르에서 전문성을 가진 재즈 뮤지션을 찾아보기가 어렵죠. 나의 경우는 어떨까 생각하면서, 일단 국악에서 방향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그녀뿐 아니라 세계적인 재즈 거장들도 한번쯤은 전통음악에서 방향을 모색해보곤 한다. 스패니시 미국인인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는 스페인 음악을, 허비 행콕은 피그미 족의 음악을, 전설적 재즈 거장 존 콜트레인은 인도음악을 깊이 탐구하고 곡 작업을 해왔다. 세계 각국의 전통음악을 사용하는 이유는 달라도, 재즈 뮤지션들에게 그것이 훌륭한 뮤즈가 되어주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심리학을 전공했던 그녀가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걷고자 결심하게 했던 뉴올리언스. 어린 시절부터 줄곧 피아노를 쳐왔고 대학교 앞 재즈클럽에서 이미 재즈를 시작했지만 그녀는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다. 이어 뉴욕의 퀸즈 칼리지에서도 재즈 전공 석사를 마쳤다. 그리고 지금껏 차분히 걸어왔다.

천재형이기보다 노력형에 가까운 그녀가 한 단계도 허투루 뛰어넘는 법 없이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걷고 있다.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재즈를 하고 싶다는 그녀는 올해만도 두 권의 책 출간도 앞두고 있다. 그녀의 미래가 기대되는 건, 그녀의 음악인생이 로또가 아니라, 부지런히, 세심하게 지어내는 큰 그릇이기 때문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