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소설가 황석영<강남몽> 출간… 5명 인물 통해 강남으로 대표되는 한국 근대화 과정 그려

사람이 새 이름을 짓는 것은 제 정체성을 전복하는 일이다. 김해경이 주어진 이름을 거부하고 '이상'의 날개를 달 때, 그는 오롯이 모더니스트 지식인이 될 수 있다. 육사의 이름에는 패망한 국가에서 태어난 지식인의 맹렬한 저항이 담겨있다.

황석영의 본명은 수영이다. 두 자를 그대로 두고 한 자만 바꾸었다. 말하자면 주어진 이름을 전복한 게 아니라 변형했다. 자연인 앞에 주어진 운명과 그 운명됨을 선택한 작가의 의지가 황석영, 세 글자에 담겨 있다.

"이름을 언제 바꾸셨나요?"

"등단할 때 바꾸었죠. 수영이 여자 이름 같아서요."

작가가 말했다.

"베트남 전쟁, 방북과 망명이 운명 같다고 말하지만, 선택을 하는 건 결국, 작가 자신의 몫이 아닌가 싶어요."

인터뷰는 엇박자의 대화로 시작됐다.

20세기 강남 형성사(史)

그와의 만남은 신간 <강남몽> 출간을 겸해서다. 작가는 대하소설 <장길산>을 탈고한 80년대 후반부터 강남 형성사와 철도원 3대에 걸친 이야기를 쓰겠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고, 간간이 발표한 소설 책 뒤에 써두기도 했다. <강남몽>은 그가 장담했던 첫 번째 이야기다.

"이 소설은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의 그늘과 상처를 나름대로 다루는 작품이면서 현재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되돌아보는 작품입니다. 현재 우리가 가진 욕망, 좌절, 여러 문제점은 저 시간의 상처 속에 있다는 거죠."

이야기는 1995년 1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백화점 붕괴에서 시작해 근대가 형성되는 해방정국 언저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해 온 개발시대의 욕망과 치부가 강남의 꿈을 좇는 인물 군상에서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작가의 모든 것은 작품에 담겨 있고, 그 작품의 지도는 '작가의 말'에 있다. 이야기의 끝, 책의 뒷면을 펼친다.

'저 삼십여 년에 걸친 남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가쁜 여정과 엄청난 에피쏘드들을 단순화하고, (…) 그 인형 같은 캐릭터들은 남한 사회의 욕망과 운명이라는 그물망 속에서 서로 얽혀서 돌아가고 그러면서 모르는 사이에 역사가 드러나게 하면 어떨까.'(376-377페이지)

수십 년 이야기를 300여 페이지에 압축하는 키워드는 인형극. 작가는 "민속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의 형식을 빌려오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5명의 인물을 통해 30여 년에 걸친 강남, 강남으로 대표되는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을 빠르게 전개한다. 이 5명은 근대 한국인을 표상하는 꼭두각시인 셈.

국밥집 딸에서 화류계 마담, 재벌의 후처가 된 박선녀(1장), 만주에서 헌병대 밀정을 하다 광복 후 처세술로 백화점 회장이 된 김진(2장), 부동산 사업가 심남수(3장), 강남 폭력조직 두목 홍양태(4장), 백화점 지하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임정아(5장)가 각 장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고 각 이야기는 연쇄적으로 연결돼 거대 서사를 이룬다.

또 다시 지도를 펼친다.

'이른바 '몽자(夢字)류' 소설은 <구운몽>, <옥루몽>, 그리고 중국 고전인 <홍루몽> 등으로 수십 편 되는데 (…)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소설의 제목을 강남몽이라고 정했다.' (377-378페이지, '작가의 말'중에서)

인형극 꼭두각시와 더불어 그가 이번 소설에서 사용한 형식은 몽자류 소설이다. 황석영의 하반기 문학으로 일컬어지는 2000년 이후 발표 소설은 모두 새로운 형식을 선보인다.

형식에 관하여

2000년대 이후 그의 문학은 확연히 바뀐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방북과 해외망명,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인한 복역 등으로 13년 동안 글을 쓰지 못했고 1998년 출소 후 장편 <오래된 정원>을 발표하며 하반기문학 세계를 연다. 이제까지 경험 중 가장 큰 충격으로 작가는 베를린장벽 붕괴를 꼽는데, 망명 중 이를 직접 보며 그는 "우리가 쟁취하려는 건 개인과 일상의 소중함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반기 문학의 첫 작품으로 꼽히는 <오래된 정원>은 기존 리얼리즘 형식에서 탈피해 1인칭, 2인칭, 3인칭을 넘나들며 개인의 시선에서 광주를 말한다. <손님>은 내림굿 12마당의 기틀로 한국전쟁의 참상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심청>은 한국적 서사를 근대소설 양식으로 풀어낸다.

작품마다 이야기와 이야기를 건네는 모양새는 제각각이지만, 보편적 현실을 '동양의 그릇'에 담아낸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는 매번 '작가의 말'을 통해 그 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형식실험을 하는 중이죠. '이것은 황석영의 형식이다'라는 걸 하나 만들어두고 죽으려고요. 가장 큰 골자는 세계 보편적인 현실을 우리 전통 양식에 담겠다는 거죠."

그가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좋아하는 것도 아마 이런 맥락에서 일 것이다. 환상적 리얼리즘이란 말로 대표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제국의 언어로 인디오의 전통을 담아낸다. 보편성과 개별성의 맞물림. 이것이 비서구 작가들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젊은 작가들은 한편에서 한국문학이 제국의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모국어의 허약함을 말하기도 한다.

영어가 사실적 표현에 기울어져 있다면 명사보다 형용사가 발달한 한국어는 좀 추상적이라는 것. 한국어는 감정 표현에 능하며, 따라서 소설보다 시가 적합하다는 것이 글 쓰는 대다수 문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소설의 문장과 문체에 집중하는 기자에게, 작가는 말했다. "무망(務望)한 노릇이 아닌가, 합니다."

"작가에게 중요건 눈입니다. 사물의 어느 면을 취사선택해서 잡아내는 거죠. 보통사람들도 그런 능력이 있지만 발휘하지 못할 뿐이에요. 그런 눈을 키우고,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어떤 작가가 '감각있다, 감성적이다' 할 때 그건 문체나 문장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시작해서 완결 지을 때까지 작품전체가 주는 인상이죠."

현실 마주보기

황석영에게 그 재간이란 현실 마주보기에서 비롯되었을 터다. 작가에게 인터뷰 초반 '엇박자 대화'에 대해 설명했다. 당신의 이름 석 자에는 굴곡진 운명이 드리워져 있을 테고, 그 길 가기를 결정하는 건 결국 당신의 의지였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다면 영광입니다.(웃음) 망명이 나한테는 유용했다고 할까, 자기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간이었다고 할까……. 게다가 반추할 수 있는 수감기간까지 있었잖아요. 그 10년이 내 후반기 문학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됐죠."

- 이전부터 대표적인 사회참여형 지식인으로 꼽히시죠.

"저는 아직도 소설을 통해서 하고 있는데요. 너무나 당연하지만 글 쓰는 사람에게는 그런 책임이 있는 겁니다."

- 글 이외에 최근 발언과 MB정부에서 활동을 말하는 겁니다.

"정치적인 얘기는 좀 그런데…. 하지만 한 마디 한다면 내가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두는 관심사가 남북관계 변화거든요. 그 변화를 현 정권에서도 한 번 해봤으면 한 거죠. 그래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접었어요. 천안함 사태 이후 너무 큰 변동이 있어서. 이 정권에서 별로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 열심히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죠."

- 예전에 말씀하신 '몽골+투 코리아' 방안 추진은 현정부에서 접으신 건가요?

"그건 다음 정권에도 그대로 해야 할 일이죠. 전 주동적인 역할에서 빠지겠다는 겁니다."

- 변절 논쟁으로 마음고생도 하셨을텐데요.

"저는 늘 그랬어요. 글 쓰면서도 상황 변화에 대해서 노력해왔습니다. 유신 때도 광주항쟁 때도 방북도 일맥상통하는 게 있거든요. 비난 받으면서 하는 거죠. 황석영의 변절이라고 하는데 나는 충절을 바친 정치 집단이 없어요. 그게 황석영인데…. 작가라는 건 자유롭고 열외 되었기 때문에 잘 볼 수 있는 거죠. 넘나들면서 그런 미진한 구석을 살피고 알리는 거죠."

- 근대문학이 시작됐을 때 뛰어난 문인은 곧 뛰어난 사상가이자 지식인이었습니다. 조선의 이광수나 중국의 루쉰 같은.

"일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이 그런 작가의 역할이 일본에서는 끝났기 때문에 일본 근대문학이 끝났다고 말하죠. 그게 그의 책 <근대문학의 종언>의 요지입니다. 근데 전 한국에서 근대는 끝나지 않았다고 봐요. 포스트모던한 현실과 근대가 동시에 공존하는 거죠. 마치 종이책과 전자책이 공존하는 것처럼. 이건 아마 제 3세계가 더 하지 않을까요? 세계에 서구만 있는 건 아니니까. 지역마다 시간차가 있는 거죠."

인터뷰 도중 그는 "나의 본령은 소설"이라는 말을 몇 번 되뇌었다. 본령인 소설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신 철도원 3대 이야기는 어떤 작품입니까? 왜, 철도원입니까? 그는 "근대의 상징인 기차는 풍경을 스쳐가기 때문에 서정성이 있다"고 말했다.

"19세기 일제식민지부터 20세기 한국전쟁까지 3대 이야기를 다룰 겁니다. 우리 문학에서 치명적으로 빠져있는 부분이 도시 노동자 이야기에요. 그 3대 이야기를 기차를 통해서 할 작정입니다. 오랜만에 정공법으로 <무기의 그늘>처럼 좀 길게 쓸 겁니다."

작가는 "내 만년 문학을 결정할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강남몽은 강인한 서사의 힘줄로 이 꿈틀거리는 무늬들을 따라가면서, 지금 이 시대의 삶의 바탕과 내용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들추어서 보여준다'

신간 <강남몽>에 붙인 소설가 김훈의 추천사다. 김훈의 그 마성의 문체는 목표를 조준하는 서늘한 일본도를 연상케 하지만, 이번 그의 수사는 황석영의 어떤 작품에 붙여도 좋을 말이다.

그 강인한 서사와 핍진성이 그리는 노동과 민족 서사는 시대 전체의 풍경을 아우른다. 수십 년간 독자가 그의 작품을 읽어왔고, 또 기다리는 이유일 터다.

황석영은…
1943년 만주 장춘(長春) 출생
1962년 고교시절 단편 <입석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수상
1966년 해병대에 자원입대, 베트남전 참가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 <탑> 당선
1971년 <창작과 비평>에 중편 <객지(客地)> 발표
1974-1984 한국일보에 <장길산>연재
198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초청으로 방북 이후 독일로 망명
1993년 귀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음.
1998년 3월에 석방
소설 <오래된 정원>(2000년), <손님>(2001년), <모랫말 아이들>(2001년), <심청, 연꽃의 길>(2007년), <바리데기>(2007년), <개밥바라기별>(2008년) 등 다수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