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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란씨>속 소외 당한 자의 삶

[문화계 앙팡테리블] (70) 소설가 배지영
첫 소설집 출간… 사회의 단면 포착 현실과 욕망 사이 괴리 드러내
'배지영의 소설은 신예의 소설답게 세상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횡단면으로 분할하고 재구성한다. 익숙하되 낯설며, 친숙하되 섬뜩하다.'

그녀의 첫 소설집 <오란씨>에 붙인 문학평론가 류보선의 해설이다. 사실 이 두 줄은 어느 신예 소설가에게 붙여도 들어맞는 말이고, 그렇다면 그 다른 횡단면과 재구성이 어떤 모양새인가를 살펴야 할 터, 오렌지 빛 하드커버에 음료 '오란씨' 마크가 찍힌 발랄한 디자인의 소설집을 펼친다.

표제작 <오란씨>는 오란씨가 등장한 88올림픽과 15년이 지난 2003년을 교차하며 서술되는 한 형제의 이야기다. 배경은 서울 변두리 모래내.

88년 당시의 형이 매밋집 여자 설희와 정분이 나 도망치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던 것처럼, 현재 시점에서 지입제 덤프트럭 운전수인 동생 '나' 역시 지능이 모자라는 식당 종업원 순희에게 마음을 준 것이 계기가 되어 교통사고의 희생자가 된다.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칠 때 그의 머리에 떠오른 오란씨는 그가 꿈꾸었던 사랑과 행복의 원초적 이미지를 드러낸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 오오 오란씨.(…) 그는 목이 말랐다. 왜 그날 설희가 준 오란씨는 먹으면 먹을수록 목이 말랐는지 알 것 같았다.' (73~74페이지)

"오란씨가 약간의 촌스러운 아이콘이잖아요, 당시 환타가 독주할 때 대항마로 우리나라에서 만든 음료수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리는 2류, 3류 인물들이 그런 오란씨의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했죠. 시대를 평정한 환타가 아니라 후발주자, 실패한 인생들 말이죠."

정리하면 그녀의 소설은 사회 단면을 포착해 현실과 욕망 사이의 괴리를 드러낸 작품이다. 소소한 이야기, 발랄한 상상력이 대세처럼 회자되는 오늘의 문학판에서 배지영의 작품은 포스모더니즘과 여성적 말하기가 각광받은 90년대, 현실 기록하기에 분투했던 김소진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소설가 배지영.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TV와 라디오 구성작가로 활동하던 중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오란씨>가 당선돼 등단했다. 작가는 제 앞에 절실한 문제를 글로 쓰는 자다. 이 말을 작가에게 투영시킨다면 그에게 절박한 것은 아마도 소외당한 자의 삶인 듯하다. 순한 인상과 달리 소설은 냉정하고 섬뜩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그녀는 소설집 끝 '작가의 말'에 "나는 누군가의 좌절을, 슬픔을, 혹은 무기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그런 다짐들을 이 책에 담고 싶었다"고 썼다. 내친김에 몇 편을 더 읽어보자.

세 편의 연작소설 <슬로셔터>. 첫 편 <버스-슬로셔터 No. 1>은 한 호신용품 제조업체의 비정규직 여성의 에피소드다. 버스에 다른 승객이 아무도 없는데다 호우로 다리가 잠기는 바람에 낯선 길을 달리게 된 버스 안에서 주인공은 두려운 상상을 키워 간다. 불퉁한 운전수가 모는 버스 안은 어느덧 '빠른 속도로 달리는, 유리창이 있는 덫'으로 인식된다. 이때 운전수가 외친다. "아가씨, 왜 안내려요? 다 왔잖아요."(96페이지)

이어서 <몽타주-슬로셔터 No.2>는 연쇄 살인범 이웃을 등장시켜 익명성의 그늘에 가린 현대 사회의 단면을 들추어낸다. 세 번째 연작 <파파라치-슬로셔터 No.3>는 그 역반응을 포착한다. 신고보상용 몰카 촬영을 하는 남자를 등장시켜 익명성을 파고드는 감시와 고발의 시선을 부각시키는 것.

세 편의 연작을 통해 작가는 익숙한 일상의 작은 틈 사이에 흐르는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 어둠과 광기를 냉정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소설집에 함께 엮인 3편의 다른 소설 역시 중심부로 가고픈 욕망과 주변부로 밀려나는 삶 사이의 괴리를 그리고 있다.

'생생하고 야성적이며 속도감 있게 다가오는 배지영의 문장들은 오늘의 안락과 평화가 기실 얼마나 허황되고 교묘한 거짓말로 짜여 있는지를 가차없이 증언하고 있다.'

그녀를 가르친 소설가 박범신 씨는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신예다운 이야기의 혁신성과 신예답지 않은 성찰의 깊이. 이 소설가의 미덕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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