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환 시인7번째 시집 <마네킹과 천사>… 죽어있는 것들과 죽어가는 것에 초첨

화가 이우환의 간결한 그림에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점에서 시작해 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점은 새로운 점을 부르고 선으로 이어진다. 궁극의 지점을 가장 간결한 형태로 나타내기. '점 몇 개 찍은' 그의 그림이 아시아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유다.

장르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예술가들의 작품을 발표 순으로 나열해 보면 하나의 포물선이 그려지는데, 젊은 시절 맹렬한 투쟁과 냉소의 시기를 거쳐, 나이를 먹으며 그 형태가 점점 더 단순해지고 따스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마치 궁극의 지점을 향해 달려가듯이. 그러니 아이와 같은 이 단순함은 역설적으로 깊은 연륜의 예술가만 빚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절벽 앞에서

조창환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마네킹과 천사>가 출간됐다. 2004년 <수도원 가는 길>을 내고 6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후 그는 꾸준히 시를 발표해 왔다. 그 시는 어떤 모양새를 지녔나. 시인에게 물었다.

"2001년 낸 <피보다 붉은 오후>라는 시집이 있어요. 이 시집을 내기 1년 전에 간암 수술을 받았거든요. 시집에서 생명시학, 그러니까 생명이란 것의 고마움과 신비, 아름다움을 표현했죠. 너무 어두운 시대를 지나와서 그런지 요즘 우리 시들이 흐리고 무겁다고요. 나는 실제로 사람들이 즐겁게 살면서 이렇게 폼을 잡아야 하는 것이 싫었어요. 그리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면 숨 쉬는 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후 발표한 6번 째 시집 <수도원 가는 길>은 문학 강연 차 떠난 미국에서 쓴 여행시가 묶여 있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 앞에 선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조형했다. 자연 속에서 함께 뒤섞일 수 없는 소외감을 고요, 고독으로 읽어낸 그 시집에서 시인은 범접하기 힘든 자연에 대한 외경과 인간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이렇듯 시인은 신(神)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표현해 왔다.

'절벽 앞에서 길을 찾는다/ 천길 낭떨어지 앞에 곧게 서서/ 신발 끈 고쳐매고/ 허리띠 졸라매고/ 숨 깊이 들이켜면/ 완강한 허공도 한순간이다(…)이제부터 한순간 허공에 솟구쳐/ 맞은편 바위 위에 서기만 하면/ 허공에서 하느님이 저를 붙드사/ 거기에 내려놓은 줄 알겠사오니// 절벽 건너서 길을 찾거든/ 쓰임새 있는 곳에 쓰시옵소서' (시집 <피보다 붉은 오후> '절벽 앞에서' 중에서)

일상의 공간에서

6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 모양새는 어떻게 변했나. 시인의 이야기를 듣기 전, 새 시집을 펼친다. 시인의 시세계는 그 제목이 표상하는 바, 이 '마네킹'과 '천사'가 의미하는 바를 나름대로 곱씹어 본다.

'마드모아젤 양장점 앞을 십 년 넘게 지나다녔어도/ 쇼윈도 안의 마네킹 셋이 서로 흘끗거리는 건/ 오늘 아침 출근길에 처음 보았다 (…) 은사시나무, 여름 달빛에 흔들리는/ 잎맥 가늘고 여린/ 바비 인형 같은 마네킹은 고개를 숙이고// 안 보는 척하면서 눈길을 주고 있다/ 입술 삐쭉 내밀며 아랫도리 오므리는/ 저것들이 구미호 다 된 줄을/ 오늘 처음 알았다' (시 '마네킹' 중에서)

그에게 문명이란 것은 죽은 플라스틱 인형 같은 것, 그런데 이 마네킹이 어느 날 살아서 표정짓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 해설을 쓴 문혜원 평론가는 '이전의 시들이 삶의 향기에 매혹된 시인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시집의 시들은 죽어있는 것들과 죽어가는 것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시인은 말했다. "최근 3~4년 동안에는 죽음이란 존재를 객관화시켜 보려고 했어요. '죽음이 괴로운 건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그렇지, 죽음 자체가 그럴까…'하는 생각에." 이번 시집의 가장 큰 변화라면 이 시선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 이미 죽어 영안실에 안치된 사람을 보며, 시인은 죽음을 정면으로 인식하고 있다.

'웃고 있네, 저 얼굴/ 흰 국화 가지런히 꽂힌 노 없는 뱃전에 앉아/ 목탁 소리, 연도 소리, 찬송가소리/ 양재동 꽃시장 튤립 다발 같은/ 삼성병원 영안실 복도/ 바라보며 웃고 있네, 저 얼굴' (시 '웃고 있네' 중에서)

이번 시집의 또 다른 표상인 '천사'는 어떤가.

'지하철 4호선, 사당역에서 미아삼거리까지/ 벙어리 애인 둘이 쉴 새 없이 지껄인다// 꽃병 든 손 모양 만들었다가/ 파도 안은 물새 모양 만들었다가/ 검정 저고리 입고 강 건너편에서 손짓하는/ 관음보살 닮은/ 처녀가 말간 암죽 떠먹는 시늉을 한다 (…) 뭐 도와줄 일 없을까 하고 기웃대던/ 자루옷 입은 천사는/ 늘어지게 하품 한 번 한 후/ 먼저 내린다// 애인 둘,/ 불쏘시개 같은 가로등 따라/ 날아오르겠지? 오늘 밤' (시 '애인 둘' 중에서)

그는 절대자 신이 아니라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를 그리고 있고, 이 천사는 항상 사람 옆에 있으면서 사람의 삶을 지켜보는 보이지 않는 눈과 같은 존재다. 요컨대 시인은 여전히 신에 대해 경외감을 표하지만, 이제 그 믿음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생활 속에 육화된 것이다.

그가 말했다. "너무 엄숙한 것 말고 세속적인 신성성에 관심이 있어요." 시집 뒷면에 실린 짧은 산문에는 저자의 못 다한 말이 압축되어 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 노동과 명상, 머묾과 떠남의 모든 시간과 장소도 영적인 세계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그처럼 신비롭고 아늑하고 따뜻한 곳이다. 아니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아찔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삼가 근신할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 귀에 들리는 모든 것, 향기와 감촉을 주고받는 모든 존재는 조심스럽게 사랑하고 경외하고 받들 일이다.'

요는 우주 삼라만상이 영적 존재로 충만해 있고, 그러므로 그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경외할 일이라는 것. 이 지난(至難)한 사색을 담아 시인은 시를 썼고, 또 쓸 것이다. 궁극의 한 점을 향해서.

'얼마나 더 이 길 걸어야 온유하고 정결한 그늘 만날 것인가.' (시인의 말 중에서)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