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피아니스트 임동창국악 뿌리로 창안한 장르… 마음으로 연주하는 새 창작곡 집 발표

불가에서 수도생활을 했던 민둥머리 음악가, 종종 육두문자가 섞이는 걸쭉한 입담, 작곡은 물론 무대 위에서 피아노, 장구, 노래 1인 3역을 해내던 국악 피아니스트. 세인들은 그를 '괴짜' 피아니스트라고 했고, 그는 '그냥'이라는 호로 세인들의 쉬운 분류에서 빠져나갔다.

누구의 음악도 아닌, 자신만의 음악을 하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수많은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던 스승이기도 했다.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임동창(54)이 최근 발표회를 하며 세상 밖으로 다시금 얼굴을 내밀었다.

김덕수 사물놀이와 함께 신명 나게 피아노를 치던 모습으로 세상에 알려진 그를 10여 년 전까지 TV와 공연장에서 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인기의 절정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작곡에 몰두하기 위한 의도적인 두문불출이었다. 서양의 클래식부터 재즈, 국악, 대중음악 등 장르를 불문하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던 그가 필생의 화두, '어떻게 해야 오롯한 내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의 실마리를 풀어내던 시간이었다.

발표회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새 창작곡 집 '임동창의 풍류, 허튼 가락'은 그가 우리나라의 고전음악을 정리하고 재해석하며 발견해낸 필생의 역작이자 그의 화두에 대한 음악의 화답이다.

"허튼 가락은 다른 불순물을 섞지 않고 우리 조상의 DNA를 새롭게 디자인한 음악입니다. 시공의 틀에서 벗어나 부드럽게 이완되고 자유롭게 살아 숨쉬죠. 작업의 주재료인 오리지널 음악을 '된장'으로 비유해보면, 된장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를 낱낱이 분석한 후에 된장 외의 다른 물질은 하나도 섞지 않고 새롭게 조직하여 전혀 다른 맛의 새롭고 다양한 음식물을 만들어낸 것과 같아요."

국악을 뿌리로 그가 창안해낸 장르인 '허튼 가락'은 '허튼 작곡(창작)'과 '허튼 연주'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 허튼 가락을 연주해보면 "마치 필터를 통해 흙탕물이 맑아지듯, 연주자에게 즉흥연주의 길이 환하게 열릴 것"이라고 임동창은 설명했다. 연주자가 이전에 어떤 장르를 연주했을지라도 상관없다. 허튼 가락의 연주를 통해 연주자는 백지 상태가 되고 다시 자신의 음악으로 완전히 채워진다는 원리다.

"오롯한 내 음악이 뭘까 고민하던 중에 수제천을 들었어요. 마치 몇 개월간 아무것도 안 먹다가 음식을 먹는 사람처럼 우리 조상의 음악을 그대로 빨아들였습니다. 제 음악이 어떤 것인지, 그 음악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깨닫게 된 거죠."

늘 '너의 음악을 하라'고 말하던 그는 마침내 자신의 악보를 연주자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게 했다. '허튼 가락'이 연주자가 음악의 주인이 되어, 곡을 끝까지 이끌어 가고 자신만의 음악성을 발현할 수 있는 발판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연주자는 내면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는 명상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걷어내어 격조 높은 '향악'을 원료로 한 데다가, 연주자의 정신을 자유롭고 평안하게 하는 허튼 가락의 특성 때문이라는 것. 늘 음악공부에 앞서 마음공부를 앞세웠던 그가 가지고 온 음악도 결국은 마음을 다독이는 음악인 것이다.

허튼 가락은 악보의 어느 지점에서나 연주를 시작해도 음악이 이어지고, 즉흥 연주처럼 연주자에 따라 빠르기나 셈 여림을 조절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악보를 보고 연주해도 연주자의 연주 방식과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으로 들린다.

임동창은 발표회에서 자신의 연주와 제자의 연주, 그리고 발표회에서 사진 촬영을 하던 스텝의 연주 시연을 통해 이를 증명해 보였다. 허튼 가락이 손으로 하는 연주가 아닌 마음으로 하는 연주임을 보여준 셈이다.

템포와 셈 여림을 자유롭게 조절하면서 음악의 균형을 깨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 자신의 상태로 깊숙이 들어가게 하는 신비한 음악, 허튼 가락. 임동창은 이를 총 2,000여 쪽에 이르는 창작곡 집으로 완성했다. 이번에는 1차로 그 절반인 1,116쪽 분량을 먼저 출판했다. 악보는 가곡 41곡을 바탕으로 한 '동창이 밝았느냐'(전 2권), 상영산을 재창조한 '외갓집 풍류', 영산회상의 3가지 버전인 중광지곡과 유초신지곡, 표정만방지곡을 새롭게 창조한 '가즌 풍류', 여민락을 바탕으로 한 '나랏말싸(ㅆ+ㆍ)미', 대취타를 재창조한 '국유현묘지도' 등 모두 6권으로 편집됐다.

계속 발표될 '허튼 가락'은 지금까진 세 장의 음반만을 내놓았다. <영산회상(중광지곡)>, <경풍년/염양춘/수룡음>, <수제천> 등이다. 오는 8월 28일엔 충남 금산 보광사 산사 음악회에서 임동창의 '허튼 가락'을 직접 들어볼 수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