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근 CMI 대표화가로 변신 첫 개인전… 자신의 내면세계 그린 30여 점 선보여

작품 'ne plus ultra' 옆에 선 정명근 CMI 대표
이순을 훌쩍 넘긴 나이까지 음악과 함께 살아온 정명근(68) 공연기획사 CMI 대표가 화가로 변신해 16~29일 서울 강남의 표갤러리 사우스에서 첫 개인전을 갖는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형인 정명근 대표는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가 수준급인 음악가이자 정명훈을 비롯해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 '정 트리오' 공연을 30년 넘게 기획하고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뮤지컬 공연 등을 기획해 온 국내 대표적인 공연기획가이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내한공연, 뮤지컬 <캣츠 > <레 미제라블 > <미스사이공>, 러시아 키로프 발레 <백조의 호수 > 등 주목받는 공연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런 정 대표가 미술을 취미를 넘어 개인전까지 여는 것은 의외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의 미술 이력은 오래고 깊다. 회사를 경영하며 바쁜 가운데서도 꾸준히 미술 작업을 해 전시(단체전)에 참여하는 등 30년 넘게 미술과 인연을 이어왔고 뉴욕 아트스튜던트 리그에서 수학하며 사진과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래도 음악과 더 친밀하게 살아온 삶이기에 그에게 미술이 지닌 의미가 궁금했다.

'Symphonie fantastique' Acrylic on canvas, 116X91cm, 2010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는데 생각,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나이 들며 음악, 미술, 사진을 대하면서 결국 표현방법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미술은 상당히 특이하고 미술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을 생각했어요."

그는 음악이나 사진이 표현에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음악으로부터 배운 지식이나 기술, 경험으로는 자신의 삶이나 느낌을 적절하고 충분하게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물론 실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국내외 정상급 음악인들의 연주를 들으면서도 과연 '연주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간의 의미 있는 소통이 얼마만큼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종종 가졌습니다."

정 대표는 '시간의 예술'인 클래식 음악과 '시각의 예술'인 미술의 작업 방식이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써 놓은 작품을 엄격하게 정해진 규율 내에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해낸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사진에 대해서도 "나의 생각, 느낌으로 셔터를 누르지만 표현에는 확실히 제한적"이라고 말했다.반면 미술은 '컴포즈(compose)'와 '퍼폼(perform)'을 같이 할 수 있어 느낌이나 생각을 다양하고 창조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Four seasons' Acrylic on canvas, 145X112cm, 2010
"내가 그림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바로 색과 형태로 구성된 나만의 언어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언어로 생각이나 경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통상적인 언어로는 충분하거나 적절하게 전달하기 힘든 느낌과 생각의 표현이다. 그에 따르면 '사랑'이란 단어가 지니고 있는 심상(心象)을 일반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은 극히 한정적인데 반해 사랑이란 단어가 연상시키는 갖가지 느낌과 생각은 그 말을 건네는 상황이나 듣는 대상, 시기와 장소와 따라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는 적절하고 세심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미묘한 느낌과 생각을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갈구하게 되는데 예술이, 미술이 그러한 소통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소통이란 결국 자신의 내적 자아(Inner Self)와 대화하는 것이다. 정 대표는 그러한 내적 자아와의 대화수단으로 그림을 선택했다고 한다. "느낌이나 생각의 표현 방식이 무한한 색과 형체를 배합하는 그림과 흡사한 것이 돼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정 대표는 전시에서 도형과 색채로 창조된 표현 언어를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그려나간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four seasons', 'symphonie fantastique', 'my World, your World' 등 자신의 기억과 음악적 경험에서 우러난,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내밀한 감정의 창작들이다.

사실성이 배제된 형상들과 다채로운 색의 조화와 대비를 통해 드러나는 각기 다른 음색들은 화면 전체에 음악적 리듬감을 부여하고, 한편의 교향악을 전달해 주는 듯하다. 작가는 작업과정에서 생각과 느낌을 줄거리로 짜고 단순한 형체와 색으로 줄거리를 만들어 수많은 형체로 세분화시킨다. 그리고 각각의 형상에 다시 무수한 색을 배합해 하나의 화면 속에 다양한 느낌과 흐름을 형성해나간다

작품 'symphonie fantastique'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양곡'을 20번 이상 감상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느낌, 생각, 시기와 사건에서의 감정 등을 수많은 형체와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원래 '자서전 13장'이라는 작품명을 염두에 두었으나 관람객의 감상을 유도하기보다는 보는 사람이 자신의 느낌에 따라 순서를 정해서 그림을 보면서 대화(dialogue)를 떠올리고 줄거리를 만들어가도록 수정했다. 그는 작품을 보는 순서와 방법, 시기에 따라 다양한 느낌으로 변주되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새롭게 대화하고 또 다른 느낌이 생성되기를 기대한다.

그는 자신의 내적 자아와 대화하고자 선택한 미술 언어가, 그것을 보는 다른 누군가의 호기심과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해서 그 자신의 또 다른 내적 자아를 찾아나서는 데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소망한다.

그는 음악과 함께 미술을 '영혼의 음식(soul food)'이라고 한다. 인간의 인식과 정신건강에 미술이 필수적 에너지원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이번 전시 타이틀 'AB INTERROGATIO AD EXCLAMAT(물음에서 감탄까지)'이 말해주듯 전시장 입구의 물음표를 형상화한 작품(quamobrem)부터 마지막 느낌표의 작품(ne plus ultra)을 돌아보면 어느새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번 정명근 작가의 전시는 자신과의 소통마저 단절되어 버린 현대인들에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진정한 소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향후 작품활동에 대해 묻자 그는 "미술에 확실한 계획이 있어 다음엔 다른 작품이 나올 것"이라며 "음악이든 미술이든 예술적 공감을 통해 삶을 더욱 진지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02)543-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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