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72) 연출가 이양구<핼리혜성> 등 인간의 따뜻함 찾는데 주력, 장차 '사회성 있는 작품' 다룰 계획

같은 것을 보아도 사람들은 각자 다른 것을 읽어낸다. 각박하고 냉정한 세상에서 어떤 연극은 현실 그대로를 투영하고, 또 어떤 연극은 그 차갑고 건조함 속에서도 따스한 온기를 발견한다. 젊은 작가들은 대체로 전자의 예리함에 이끌리고 연륜 있는 작가들은 후자에서 희망을 찾는다.

하지만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젊은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양구의 관심은 후자 쪽이다. 지난 23일로 막을 내린 한국공연예술센터의 기획 공연 <핼리혜성>에서도 그것은 여전히 드러나고 있다.

극단 연우무대 신작 <핼리혜성>은 이양구 연출이 2007년 직접 써서 젊은 연극제에서 연출했던 작품으로, 삼촌과 조카가 수몰된 고향을 여행하게 되면서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을 알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수몰과 재개발이라는 소재는 사회비판적인 주제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이 연출의 시선은 '가족'에 맞춰져 있다. 평생 살아온 고향을 잃고 힘없이 떠나야만 했던 가족의 분열된 삶을 비추며 우리의 현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가족애 혹은 인간성에의 회귀는 이 연출의 다른 작품에서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이 연출의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기도 한 <별방>에서는 근대화의 어두운 부분과 해체되는 가족관계에 대한 조명이 시골의 단칸집을 무대로 펼쳐졌다. 지난해는 <그래도, 축제>에서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관계를 비추며 현대인이 직면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지난 세기의 소재와 익숙한 주제를 다루는 만큼 언뜻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연출은 이를 감성적으로 온화하게 풀어낸다. 그래서인지 그의 공연에는 유독 중장년층 관객들이 많다. 온통 착한 사람들만 등장시켜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하게 하는 이야기가 오래 전 그 시절을 떠나보낸 이들의 상처를 달래고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핼리혜성>은 이에 덧붙여 무대장치를 통해 작품이 가진 한계를 보완했다. 수몰된 마을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무대 한가운데를 물로 채웠다. 다섯 명의 배우들이 수면에 만들어내는 파동은 빛과 조화를 이루며 인물들의 상처와 심리를 대신 표현해준다. 무대 중앙에 고인 물은 수몰된 곳에 묻혀진 사람들의 눈물처럼 느껴진다. 개발로 인한 수몰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중국에서는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든 장면이기도 하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왜 그런지 눈이 부셔"라는 말은 76년 주기를 가진 핼리혜성의 특징으로 상징되어 나타난다. 이양구 연출은 이를 통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눈 앞의 순간들을 결코 놓치지 말라고 말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따뜻함을 찾는데 주력해온 이 연출은 언젠가 '사회성 있는 작품'을 다룰 계획도 갖고 있다. 날선 재치로 자신들의 재기를 과시해온 동시대 작가들과 거리를 뒀던 그의 온기 나는 시선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해진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