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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나무는 상실감 앓는 존재"

손택수 시인
세 번째 시집 <나무의 수사학> 도시인으로서 일상 묵묵히 그려 향수 자극
1.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향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 마음은 제 고향 진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정지용 '고향')


정지용은 노스탤지어와 현실의 간극에서 비틀거린다. 그 공간은 고향이다. 정지용의 고향은 태어나 부대끼고 견뎌낸 삶의 공간이 아니라, 그리워하고 싶은 심미적 대상으로서의 환상이다.

때문에 정지용은 그곳을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부르지만,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끝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고향 그리기 노래의 수 천년 전통 속에서 목 메이게 가고 싶은 고향은 구체적 경험의 공간이 아니라 '그렇다고 믿고 싶은' 이상향의 공간이다.

2.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 대한 범사회적 열광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경험한 가족을 왜곡했다는 데서 비롯된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삶에서 겪어내는 '우리 엄마'가 아니라, 한국인이 근대의 척박한 현실에서 기댈 언덕으로서 찾고 싶은 '우리 엄마'의 재현이다. 왈, 수 천 년 이어온 모성신화 속에서 어머니는 또한 구체적 실존이 아니라, 모든 것을 품어 기르는 자연인 대지의 어머니, 기대고 싶은 대상으로서의 판타지다.

3. 시인 손택수는 세 권의 시집을 냈다. <호랑이 발자국>(2003), <목련 전차>(2006) 그리고 최근에 낸 <나무의 수사학>이다. 첫 시집에서 시인은 호랑이로 대표되는 설화와 그 설화가 태어난 농경문화, 그것이 발자국(흔적)으로만 남은 세계의 간극을 노래한다. 이를 매개하는 것은 화자의 할머니다. <목련 전차>는 목련이 상징하는 생명성과 전차의 물질성, 기계성을 대비해 현실의 삶을 이야기했다. 이를 매개하는 것은 어머니다.

요컨대 시인도 고향과 어머니를 찾으며 비틀거린다. 다만, 시인은 정지용과 신경숙처럼 판타지로서 고향과 어머니를 충실히 재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실에 발붙여 기민하게 대처하지도 못한다. 손택수의 시에서 어머니, 고향은 모성신화, 이상향의 공간과 화자의 개별적 경험이 맞물려 재현된다.

나무의 수사학

세 번째 시집은 <목련전차> 이후 4년 만에 낸 것이다. 시집을 묶는 동안 시인은 서울살이에 차차 적응했고, 편집자로 출판사(실천문학) 살림살이도 제법 잘 꾸려왔다. 제 본령을 잊지 못해 주말 농장에서 토마토며 고구마를 "소꿉놀이 하듯" 기르며 산다. 그가 말했다.

"저는 농(農)자가 참 좋아요. 노래 곡(曲)에 별진(辰). 시의 원형이죠. 땅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생명의 충만함을 주죠. 그럴 때 유년 시절 풍경이 떠올라요. 이게 실제 삶에 있어서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그는 시를 쓸 때가 아니라 삶에서도 노스탤지어와 현실을 오간다. 시집에는 이 경험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주말농장 밭고랑에 서 있던 형이 감자꽃을 딴다/ 철문 형, 꽃 이쁜데 왜 따우/ 내 묻는 말에/ 이놈아 사람이나 감자나 너무 오래 꽃 피우면/ 알이 튼실하지 않은 법이여/ (…) / 꽃시절 한창일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도 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냈으리라' (시 '감자 꽃을 따다' 중에서)

'고드름 맺힌 지느러미 부딪는 소리, 몸에 들러붙은 얼음 조각 서걱이는 소리, 어느 산중에라도 든 듯 따랑따랑 풍경 소리를 낸다 몇해만 더 머물고 뜨자던 서울 이 빚더미 아파트와 벗어날 수 없는 나날들이 한 채 소슬한 절집이라도 된다는 듯' (시 '얼음 물고기' 중에서)


표제 연작은 이런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이전 두 권의 시집과 이번 시집의 달라진 점은 이 표제 연작이 담긴 2부에서 볼 수 있다. 시인이 이전 두 권의 시집에서 '발자국'으로 남은 농경문화에 대한 애수를 노래했다면, 이번에는 도시인으로서 일상을 묵묵히 그려낸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향수를 자극한다.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 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시 '나무의 수사학 1' 중에서)

'식육점 간판을 가리다/ 잘려 나간 가지 끝에 물방울이 맺혀 있다/ 흘러갈 곳을 잃어버린 수액이/ 전기 톱날 자국 끝에 맺혀 떨고 있는 한때' (시 '나무의 수사학2' 중에서)


시인은 말했다. "(서울의) 나무는 어머니 세계로부터 절단되었기 때문에 상실감을 앓는 존재"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그게 서울살이 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고. 최근의 제 모습이죠. 현실의 세계와 제가 지향하는 설화적 동일성의 세계가 균열되는 거죠."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진솔한 말로 담아내기. 이전 전통 서정시가 저 도저한 은유의 마술로 이상향을 마치 과거의 일부분인 듯 노래했다면, 그래서 천박한 일상을 살아볼 만했던 삶으로 비틀었다면, 2000년대 서정시는 이렇게 담담한 언어로 이상과 현실의 균열을 담아낸다.

"첫 번째 시집이 할머니, 두 번째 시집이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 시집에서 아내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아내는…. 파편화되고 도회적인 세계에서 고단함을 함께 겪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세계를 얘기하는 방식은 가족이에요. 그게 가장 덜 부끄럽고, 진정성이 확보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인은 60여 편의 시를 3부에 나눠 담았다. 1부가 시인이 발붙이고 사는 현실을 말한다면, 표제 연작이 담긴 2부는 도시적 삶의 소모성, 3부는 생태적 세계와 신생을 다룬다. 시집은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작품의 연장선과 '민중서사적 시인'(이시영 평)이란 제 본령을 벗어나려는 분투가 섞인 과도기적 모습이다.

이 분투가 지나면 또 한 세계가 펼쳐질 터, 현학적 수사 한 줄 없는 그의 시를 또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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