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문화를 말하다] (1)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로만손 대표)후원회 '국악지음' 출범… 로만손 성공신화 문화경영으로 계승

자기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를 가리키는 말로 '지음(知音)'이 있다.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연주를 유일하게 잘 이해했던 친구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현을 끊어버렸다. 자신의 예술을 알아주는 유일한 지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5일, 문화계에서도 이런 지기들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국악과 중소기업이다. 이날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국립국악원 후원회 '국악지음(國樂知音)'의 출범식이 열렸다. 국악원과 중소기업중앙회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는 시작이다.

국악지음의 초대 후원회장을 맡은 중소기업중앙회 김기문 회장은 단상에 올라 국악 후원에 대한 기업인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국악박물관의 개선사업을 위한 성금을 내놓았다. 박일훈 국립국악원장은 김 회장에게 거문고를 선물로 전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후원회 출범을 알리는 북을 함께 쳤다.

왜 국악인가, 왜 중소기업인가

박일훈 국악원장(오른쪽)으로부터 거문고를 전달받는 김기문 회장(왼쪽)
두 단체의 만남은 지음의 고사만큼이나 신선하다. 문화 후원에 있어서 중소기업은 그동안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활동을 보여왔다. 그동안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은 주로 지자체나 대기업의 메세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후원 대상이 주로 클래식 음악과 발레 등 서양 예술에 집중되어 있어 국악은 관심의 바깥에 있었다. 비록 근래 젊은 국악인들의 실험으로 국악이 이전보다 대중과 가까워졌지만, 일반의 관심은 여전히 멀리 있었다.

김기문 회장은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스며 있는 국악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한데, 다른 예술단체에 비해 국립국악원은 공식 후원회조차 없어 아쉬웠습니다."

이런 안타까움은 곧 국악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과 실천으로 이어졌다. 김 회장은 중소기업계가 자발적으로 국악 후원에 참여해 국악 전승과 보존을 지원하는 것은 중소기업이 일정한 사회적 책임을 맡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중소기업계 내부의 공감도 있었다.

김 회장은 예상 외로 많은 중소기업인들이 다른 장르보다 국악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 진출하고 교류하고 있는데, 해외 바이어에게 우리나라를 소개할 때 대표할 만한 것이 국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희 로만손도 해외 바이어 초청행사를 할 때 꼭 국악을 넣곤 합니다."

중소기업인들이 연극, 무용 등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국악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국악지음 출범의 큰 힘이 됐다. 이후 국립국악원과 중소기업중앙회는 올해 초부터 친구 맺기를 위한 사전 작업을 충실히 해왔다. 국악의 대중화와 활성화를 위해서 300만 중소기업의 관심과 지원은 국악계에도 희소식이었다. 두 단체는 4월 30일 국악 발전 및 중소기업 문화경영 활성화를 위한 MOU 체결을 맺었다. 국악지음의 탄생은 이런 과정이 맺은 결실이다.

김기문 회장(왼쪽)과 박일훈 국립국악원장이 '국악지음' 출범을 알리는 북을 치고 있다.
"이제 선진국의 척도에서도 문화예술의 수준이 중요한 시대이지 않습니까. 중소기업이 그동안 묵묵히 연구개발이나 기술혁신 등에만 매진하다 보니 사회 공헌 활동이 미흡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후원회는 중소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첫 공식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악 후원과 문화경영으로 제2의 신화 희망

국악 발전과 중소기업의 경영을 같은 차원에서 보는 김 회장의 모습은 이제까지 그의 활동을 돌아보면 뜻밖은 아니다. 한 분야에만 안주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에서 새로운 동력을 발견하려는 진취적인 시각은 현재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 됐다.

2007년 3월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직을 맡기 전까지 그의 직함은 여러 개였다. 그중 해외에서 더 유명한 토종 시계 브랜드인 로만손의 성공신화는 그를 입지전적인 인물로 만들어준 기반이다. 1998년부터 9년 동안 시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했던 그는 2005년에는 8개 조합원사들과 함께 개성공단에 입주해 개성공단 기업협의회 창립을 주도하면서 경쟁력 약화로 힘들어 하는 국내 시계 생산 인프라의 대안을 찾아냈다.

이런 그가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맡은 후 새롭게 눈을 돌린 분야가 문화경영이다. 회장에 선출된 이듬해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친화적이고 기업친화적인 사회를 위해 '문화로 인사합시다'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문화경영 활성화를 위한 MOU를 체결하고 중앙회 내에 문화경영지원센터도 개소했다. 이후 문화경영지원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문화예술을 활용한 중소기업의 문화경영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지원해오고 있다.

"중소기업인들도 공연을 보고 싶어 하지만 관람할 시간이나 여유마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찾아가는 공연이 더 효과적인 거죠."

문화경영지원센터는 SB문화경영아카데미 운영, 중소기업인 신년음악회 개최, 문화대상 시상 등의 사업을 통해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문화경영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기업예술교육 사업을 실시해, 문화예술강의, 예술현장체험, 예술교육, 동아리 활동 등 기업 맞춤형 지원을 한다는 계획도 세워두었다.

하지만 이제 국악지음의 수장으로서 김 회장은 국악에 중점을 둔 문화경영에 힘을 쏟겠다고 다짐한다. "사실은 저도 이제까지는 국악을 자주 접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른들이 부르던 민요나 부채춤, 사물놀이 정도가 국악의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를 비롯해서 기업에서는 국악을 접해보지 못해서 그 우수성과 활용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중소기업이 국악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해외 전시회나 해외 비즈니스 상담 시 공연 등을 추진하여 국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차세대 꿈나무들에 대한 장학금 조성과 중국의 '여자 12악방'과 같은 글로벌 퓨전 그룹 양성 계획은 국악 전반에 대한 그의 폭넓은 애정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 회장은 또 국악을 통한 남북교류의 새로운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개성공단에서의 경험과 인맥을 살려 북한과 국악 공연을 협연한다는 생각이다. "그쪽 사람들도 국악에 탁월한 재능이 있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그런 교류의 자리도 마련해보고 싶습니다."

김 회장은 지난해 연말 모임에서 만난 홍석우 전 중소기업청장이 4시간을 넘는 춘향가 판소리 공연을 본 후 강력추천한 판소리 공연 관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표정에는 벌써부터 '국악지음'으로서의 설렘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다.

김기문 회장은…
▲1955년 충북 괴산 출생 ▲청주농고 졸업 ▲충북대 명예 경제학 박사 ▲로만손 창립 ▲중소기업 신지식인 ▲제1회 존경받는 기업·기업인 대상 수상 ▲국가경쟁력 강화위원회 위원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공동의장 ▲통일고문회의 통일고문 ▲국세행정위원회 위원장 ▲㈜로만손 대표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