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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죠"

소설가 하성란
'정밀묘사의 여왕' 오대양 사건 모티프 9년만에 장편 <A> 출간
'의미 확장'이라는 것이 있소. 문자 그대로 단어의 본래 뜻에서 의미가 확장돼 쓰이는 말을 뜻하오. 예컨대 여성과 남성은 인간을 암수로 구분하는 생물학적 용어지만, 의미가 확장돼 여성성은 '내성적이고 배려 깊은' 같은 관습적 의미를 갖게 됐소. 이성애 중심 사회, 정확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오.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남성들의 불편한 심리 기저에는 '의미 확장'과 '전도(顚倒)의 오류'가 있는 듯하오. 활동가들이 '파괴적, 독단적' 의미의 남성성을 비판할 때, 이 남성성의 '남성'을 남자 개개인으로 잘못 이해하고, 개별 남성 자신까지 싸잡아 비난받고 있다는 자격지심을 갖게 되는 것 아니냔 말이오.

긴 이야기를 돌고 돌았소. 요는 하성란의 장편 는 이런 맥락에서 읽혀야 한다는 게요. 소설의 배경 '신신양회'는 분명 공동체 모계사회지만, 이는 남성을 집합적 유죄로 단죄하려는 '피해자 여성' 혹은 그것마저 감싸 안으려는 '대지의 어머니' 집단이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개별 (남성)독자는 집합적 유죄의식을 걷어내고 그 소설을 보라는 것. 그래야, '신신양회집 아이들에게 아버지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단어였다'(164페이지)는 화자의 말, 그 심층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눈 먼 아이가 그린 세상

여기, 한 아이가 있소. '신신양회'란 정체 모를 집단에서 밥을 짓는 엄마와 '이모들', 이모들의 아이들, 삼촌,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이 '어머니'라 부르는 한 여자와 함께 살고 있소. 엄마와 이모들은 자유롭게 사랑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노동하고, 부대껴 살아가오. 비유컨대 이 정체 모를 집단은 영화 <안토니아스라인>의 그것과 비슷하오. 어머니 섬김을 제외하고서.

머리가 큰 아이의 머릿속에 수박만한 종양이 자라는데, 이 종양 덩어리는 이야기 주머니 같아서 아이는 제가 태어나던 시절을 기억한다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걸 또 믿게 되오. 종양은 점점 자라 아이의 눈을 멀게 하오. 이 먼눈이 아이를 살리니, 제 나이 열아홉에 엄마와 이모들은 다락방에 갇혀 '축축한 손'에게 죽임을 당하고, 함께 갇혔던 아이는 살아 남았소. 어머니의 한 마디 때문에.

"그 앤 그냥 둬. 아무 것도 못 봐. 아무 것도 몰라."(51페이지)

시간은 모든 걸 잊게 한다지만, 그 공포스럽던 날은 눈만 감으면 어제 일처럼 선연히 되살아나는데, 문제는 아이의 눈이 멀었다는 사실이오. 아이는 말하오.

'나는 시간의 힘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117페이지)

소설은 여기서 시작되오. 작가가 이 눈먼 아이를 통해 세상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가 입을 열었소.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는 거죠.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은 다 죽었고, 눈먼 이 사람만 살아남았잖아요. 눈먼 사람이 진실을 밝혀가는 거죠. 아이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살아남은 거죠."

이 소설은 그녀가 9년 만에 쓴 장편이오. 작가가 이렇게 말하더이다.

"장편이 뭔지 이제 좀 알겠어요."

이미 장편 2권을 낸 등단 15년차의 베테랑이 무슨 말인가.

"예전에는 장편이 자유로운 장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장편과 단편 보폭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어떤 분은 읽으면서 '하성란의 장점이 이 소설에는 없네'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그 장점이 단편의 장점이지, 장편에 들어가면 단점이 되거든요. 그게 단점인지 몰랐어요. 예전에는."

하지만 사람의 본령이 그리 쉽게 바뀌는가. 정밀 묘사의 여왕, 하성란은 눈먼 아이가 그린 세상을 촉각, 후각, 미각으로 치밀하게 그려내오. 젊은 여성들의 노동이 빚어내는 땀 냄새, 그들의 자족적인 공동체 공간, 물질에 대한 욕망과 몰락, 공포는 모두 분뇨와 과일 냄새, 축축한 손과 딱딱한 바닥 같은 말로 표현되오. "그래도 여전히 묘사는 치밀하고, 뒤죽박죽인 장면과 장면을 겹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단편의 특징은 그대로"란 감상평에 작가는 이렇게 말했소.

"단편에서 화자가 대상에 가까이 가 있었다면, 이번 장편에서는 대상에서 시선의 거리가 좀 더 멀어지고 무던해졌죠."

그런데, '어머니'를 섬기는 '정체 모를 집단', 어디서 냄새가 나는 듯하지 않소? 1987년 오대양 사건을 모티프로 쓴 것이오.

당신의 A, 나의 A

제목 'A'는 무엇인가? 몇 해 전 한 신문에 연재한 단편 <주홍글씨>를 2장에 넣어 만든 구성으로 미뤄 얼핏 이'A'를 주홍글씨(Adultery, 간통)의 약자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면 굳이 모호하게 A로 정할 필요는 없었을 거요.

이 A는 아프리카 모계 중심 종족 아마조네스(Amazoness)를 뜻할 수도, 법 없이도 살 엄마와 이모들, 이모들의 아이들을 일컬어 천사(Angel)로 부를 수도, 정체 모를 집단을 거느린 독재자 어머니(Autocrat)를 뜻할 수도 있겠소. 고로 이 A는 S에 무엇을 넣어도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영화 를 떠올리게 하오.

그림형제의 동화(단편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조지 오웰의 소설(단편 <1984>), 허만하의 에세이(단편 <알파의 시간>)등 타인의 작품에서 힌트를 얻었던 작가는 이제 자신의 삶에서 이야기보따리를 만들고 있소.

가령 사회가 관습적으로 만든 남성성과 여성성이 기실 남성과 여성의 본성은 아니라는 것, 이는 몇 해 전 그녀가 아들을 낳아 기르며 몸으로 체득한 사실이오. 작가는 이렇게 말하더이다.

"딸, 아들을 키워보면 아기 때 다 똑같거든요. 구조적으로 내려오는 집단 무의식에 관한 것조차 남성성, 여성성으로 계승되는 것인데요, 그걸 빼면 그들은 누구인가, 제 주변의 남자, 여자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됐죠."

소설 속 아이는 시간의 힘을 믿지 않는다지만, 작가는 또 다른 장편 <여우여자> 연재를 시작하며 이렇게 적었소.

'소설을 쓰려면 한 500년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시간의 힘을 믿는다는 말인가? 믿지 않는다는 말인가?

"시간의 힘을 믿지 않아요. 그럼 잊혀진 것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죠. 그리고 잊혀질 건데 뭐하러 쓰겠어요? 작가는 시간을 내려다보는 사람이에요. 왜냐면 과거 현재 미래가 제 아래 있어야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단어는 '의미 확장'의 기능이 있는 법이고 때로 시간이 힘을 발휘될 때도 있는 법, 타고난 재주보다 세월이 가져다 준 연륜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장르가 소설이 아닌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렇게 묻고 싶었소. 무엇보다 소설은 세상보기이니까.

데카르트의 말을 빌어 "나는 홀로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처럼 천천히 갈 것이다"(2009 현대문학상 소감)고 한 작가의 다짐을 되새기는 건 그 때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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