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묵 음악평론가'세상의 음악학교' 개강 재즈, 월드음악서 옛 가요까지 내력 훑어

음악은 무덤가에 피는 꽃이다. 사랑을 잃은 이들은 노래를 불렀다. 때로 그 가락이 흐느낌과 구분되지 않았다. 슬픔과 추억,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하릴없이 뒤섞였다.

나란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합하고, 아이가 어미의 눈물을 따라 부르는 동안 망자는 춤추며 돌아갔다. 세속에는 곡(哭)과 곡(曲)만이 흥건했다.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음악에는 연이 있다.

"음악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음악은 무속 혹은 종교에서 출발했죠. 그래서 사람이 살아온 곳에는 어디든 음악이 있습니다."

음악평론가 김진묵이 삶의 역사 속에서 음악을 보는 강의 '세상의 음악학교'를 연다. 9월7일부터 8주 동안 매주 화요일 저녁에 진행된다. 재즈와 인도·아랍 음악, 월드 뮤직에서부터 한국의 옛 가요까지 그 내력을 두루 훑는다. 음악이 태동하고 퍼뜨려진 시대·사회적 여건을 긴밀히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이 커리큘럼은 김진묵 평론가의 궤적이기도 하다. 그는 1980년 클래식 평론가로 데뷔한 이후 재즈에 심취해 한국 최초의 재즈 평론가가 되었으며, 한동안 국악에 끌렸다가, 인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을 다니며 현지 음악인과 교류했다. 국경을 넘는 다양한 월드 뮤직을 기획해 왔다. 삶에 뿌리 내린 세상의 모든 음악이 귀한 줄을 안다. 이번 강의의 목표도 "참가자들에게 음악 각각의 아름다움을 다 심어주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 세상을 봐온 김진묵 평론가에게 아름다움은 슬픔과 구분되지 않는다. 음악에서 삶의 본질적 고통들, 답이 없는 문제와 신의 침묵을 헤아리고 버틴 인간의 강인함을 꿰뚫어 보기 때문이다.

"음악의 본질은 슬픔이에요. 슬픔이 깊어야 호소력이 생기죠."

그는 4년째 <흑인잔혹사>를 쓰고 있다. 재즈를 낳은 미국 흑인 노예의 역사를 추적하는 책이다. 유럽인들에 의해 '사냥' 당한 후 강제로 서구문명 건설 과정을 떠받친 아프리카인들의 고난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인 재즈의 지층이라는 해석이다.

"재즈가 얼마나 신나요. 신날 수밖에 없었던 게 피지배층의 음악이었기 때문이에요. 백인 농장주들이 밤마다 술 마시고 파티를 열 때 흑인 노예들은 낮 동안 혹사당한 몸을 이끌고 가서 흥을 돋우는 노래를 불러줘야 했어요. 슬프게 부를 수 없었기 때문에 가장 슬픈 음악인 거죠."

다음 과제는 트로트의 세계화다. 재즈와 탱고, 보사노바와 알앤비의 대열에 트로트를 넣는 것. 그 가능성도 한국의 역사에서 찾는다.

"조선시대 봉건 계급사회를 거쳐 나라를 빼앗기고 동족상잔 전쟁까지 겪은 한국의 역사도 만만치 않아요. 옛 가요들에 그 한이 다 결정(結晶)되어 있어요. '황성옛터'가 20세기 초반 동양에서 나온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라는 말도 있을 정도죠."

마치 재즈처럼, 연주자들이 '뽕짝'의 패턴 틈틈이 재치 있는 애드립을 섞으며 한바탕 어울리는 공연을 떠올리니 그럴듯하다. 낮 동안 온통 덥다가 슬며시 선선해지는 이 계절의 저녁 무렵, 어느 옥상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누군들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은 흘러/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아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옛 가요 '과거를 묻지 마세요'의 가사라도 바람과 섞여 분다면 누군들 저무는 해처럼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시대가 켜켜이 쌓여 온 슬픔과 죽음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곡(曲) 속에 곡(哭)이 있다는 것을, 삶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의 음악학교'의 일정 확인과 참가 신청은 인문학습원 홈페이지(www.huschool.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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