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인 서도호 작가와 공동작업 한 <청사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참가

천장의 채광창을 통해 햇살이 내리쬐는 순백의 하얀 공간. 바로 아래 하늘거리듯 걸려 있는 거대한 이미지와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바닥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푸른색의 무엇.

그 사이를 걷는 관람객에게 심해를 유영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 작품은 이달 29일부터 열리는 제12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선보이는 <청사진 Blueprint>이다.

렘 쿨하스, 올라푸르 엘리아손 등 세계적인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초청된 본전시에서 유일하게 초청된 한국의 작가는 설치작가 서도호 씨였다. 이번 비엔날레 총감독인 세지마 카즈요는 서도호 작가에게 건축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했고, 서도호 작가는 동생 서을호(46, 서 아키텍스 대표) 씨와 김경은(38, 서 아키텍스 디자인 소장) 씨 부부를 공동 작업자로 지목했다.

4년 전 서울 한남동에 '서 아키텍스'를 차린 서을호, 김경은 부부는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한 베테랑 건축가들이다. 특히 김경은 씨는 조각에서 건축으로 전향해 이번 작업에서 서도호 작가와 서을호 씨 사이에서 매끄러운 커뮤니케이션을 도왔다.

서도호 작가는 자신이 사는 뉴욕의 높이 12.7미터의 4층짜리 타운하우스 전면을 코발트색의 얇은 천을 바느질해 1:1 스케일로 재현해냈다. 천장에서 타운하우스로 진입하는 계단이 내려오는 곳에서 서을호, 김경은 씨의 '그림자 reflection'가 시작된다.

서도호 작가의 뉴욕 집, 서도호, 서을호 형제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한옥, 전형적인 베네치아의 창문이 겹쳐져 하나의 집처럼 완성되어 있다. 거리를 두고 보면 천장에 달린 타운하우스의 그림자처럼 보이지만 치밀하게 관찰해보면 그곳엔 '집'이라는 매개를 통해 과거의 경험과 추억,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를 향한 시선까지도 조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에게 집은 단순히 '머물 공간'에 불과하지 않다. 그들이 굳이 이번 전시에 '집'을 꺼내 든 것도 '한 인간의 모든 경험이 축적된 문화적 총체'로서의 집에 주목한 까닭이다. 그들은 또한 묻고 싶었다. 정주하지 않는 유목민적 삶이 일상화된 세계화된 사회에서, '집은 또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라고.

기와에 새겨진 용 문양까지 세밀하게 프린트되어 있지만, '그림자'가 처음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들에게 뿌옇게 보이기를 바랐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작품에 함몰되지 않은 채, 관람객들이 가지고 있는 집에 대한 의미와 작가들의 그것간의 예리한 충돌. 관람객들에게 익숙한 집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 그 의미는 새롭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건물의 실체가 담긴 타운하우스는 하늘하늘한 천으로, 마치 환영처럼 작업이 됐고, 실체가 없는 그림자는 오히려 홈이 파인 고밀도 목재판으로 만들어져 단단한 물질적 특성을 가지게 됐어요."(김경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추상적인 순수미술과 실체가 명확한 건축의 특성이 극대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저희가 작업한 '그림자'는 집에 대한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붕어빵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해도 나만의 추억이 있는 집이고, 나만의 쉼의 공간이잖아요. 밖을 돌아다녀도 항상 집은 마음 속에 간직하고 다니죠. 서도호 작가도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집을 그리워하고 곱씹어보면서 그 안에서 남다른 의미를 건져 올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서을호)

그동안 거쳐간 여러 집 중에서도 서도호, 서을호 씨가 어린 시절에 살던 한옥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동양화가 서세옥 씨의 아들로, 서을호 씨는 자신의 손길이 닿은 한옥에서의 추억을 쏟아냈다.

"1970년대, 아버지가 창덕궁의 연경당을 모델로 한옥을 지으셨어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궁을 짓던 대목장 배희한 씨가 지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설계도 하나 없이 작업하던 대단한 분이셨죠. 제가 국민학교 4학년 때쯤인데, 형이랑 저에게 아버지가 매화를 그려주시면 그것을 벽돌로 만들어서 벽에 붙이곤 했죠. 집에 가보면 지금도 그대로 있거든요. 대문을 열어놓고 살던 시절이라 동네 코흘리개 친구들도 와서 도와줬죠. 그때 디지털 카메라가 있었으면, 모든 걸 기록해놨을 텐데, 그게 너무 아쉬워요.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감히 말씀 드리면, 한옥만큼 친환경적인 건축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만의 문화가 있죠. 외부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구조이고, 문을 조절해서 대청마루의 형태까지 바꿀 수 있는 변화무쌍한 트랜스포머지요. 장난꾸러기들도 이 안에만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정숙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어요. 한옥이 점점 사라지는 건, 건물의 형태를 잃었다기보다 우리가 가졌던 좋은 문화를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을호)

서 아키텍스에서 건축을 할 때, 서을호 씨와 김경은 씨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도 한옥의 문화를 어떻게 하면 도시에서 재현할 수 있는가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마당이란 공간이 사라지는 게 가장 안타깝죠. 이곳에서 혼례도 올리고 김장도 했잖아요. 인구를 생각하면 현대사회에서 아파트는 꼭 필요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마당처럼 자기만의 아웃도어 스페이스를 원하지요. 저희가 아파트를 개발할 때 늘 연구하는 점이에요. 그래서 건설사에서 10동을 건설하길 원해도 저희는 동수를 줄이더라도 사람이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외부 공간을 확보하는데 역점을 둡니다." (김경은)

어릴 적부터 작품이나 작업에 대해 비평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어 가족과 이야기하는 것도, 작업하는 것도 재미있다는 서을호 씨는 작품이 아닌 모 기업의 사옥 리노베이션에서 서도호 작가와 공동작업을 한 적이 있다. 지상에 발을 붙인 한 사람을 시작으로, 목말을 탄 이들이 13만 명에 이르는 설치작품은 자칫 1-2mm 차이로 지상의 천장과 지하의 바닥에 제대로 설치되지 않을 수 있는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두 형제의 치밀한 작업 스타일 덕에 긴장감과 우려는 안도의 한숨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버지를 보니 예술가의 혹독한 자신과의 싸움이 너무나 힘들어 보였어요. 건축가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켜주면 되지만 예술가는 만인이 클라이언트이기도 하고 아무도 아니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건축가도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 겁니다.(웃음)" (서을호)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건축가란 직업도 쉽지 않다는 그는 생애 처음으로 공식 초청받은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개막에 앞서 김경은 씨와 함께 베니스로 떠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