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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영산대 교수, 대중문화 속 사유의 씨앗을 틔우다

신간 <철학광장>낸 철학자 김용석 영산대 교수
대중문화와 철학이 함께 생각하고 소통하고 소통하는 지점 탐구
삶의 진실 향한 철학의 역할 전해
뿔테 안경에 근엄한 표정의 고집불통 아저씨가 '존재'와 소유'에 대해 느릿느릿 말을 이어간다. 벌써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어느새 리모컨을 쥔 손이 화면을 향해 채널 버튼을 누르고 있다.

이런 모습이 얼마 전까지의 철학에 대한 고정관념이었다면 최근엔 그 모습이 많이 가벼워졌다. 이미 '철학으로 TV 읽기', '철학으로 인터넷 읽기' 등이 한창이다. 영화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철학의 밥상이 됐다. 양복쟁이 철학자들은 이제 면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재미있는 철학을 속속 선언하고 있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는 이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마르고 단정해 보이는 얼굴과 눈빛은 '옛날 철학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하지만 신문과 방송, 도서와 인터넷 게시판을 막론하고 출현하는 그의 사유의 흔적들은 이런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트린다. 시대가 관심을 갖는 분야엔 그도 어김없이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만의 섬세한 여과기로 걸러낸다.

그런 그가 최근 관심을 가진 것은 '대중문화'다. 리얼리티 오락 프로그램에서 인터넷 댓글 문화, 3D영화까지 아우르는 신간 <철학광장>(부제 '대중문화와 필로소페인')은 그 관심의 결과다. 수많은 대중문화-철학 담론이 난무하는 시대, 그가 본 대중문화엔 어떤 철학이 담겨 있을까.

"대중문화'로' 철학하기"가 아닌 "대중문화'와' 철학하기"라는 책 서두의 강조는 결국 대중문화를 철학적 사유의 도구로 삼는 지금의 저작 현상을 지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옥스퍼드 머튼 칼리지의 '미친 구름'
지금까지 영화 같은 대중문화 작품을 철학(이론, 개념 등)을 '쉽게' 설명하는 통로나 도구로 삼은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려운 철학 이론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대중문화 작품과 현상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이에 머물면 우리는 새로운 '현실'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또 '대중문화로 철학하기'가 되면 철학이 항상 주체가 됩니다. '대중문화와 철학하기'에서 '와'는 대중문화가 이미 품고 있는 철학을 '철학하기'가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넓이와 깊이를 겸비하기란 쉽지 않은데, 선생님은 방대한 관심사 속에서도 항상 깊이 있는 시각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 많은 작업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시는 건가요.

사람들이 흔히 잊고 있는 것은 철학하기-생각하기라고 해도 좋습니다-에 연습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악기 연주를 들으며 감동하면서 연주자가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상상합니다. 뛰어난 스포츠 선수도 얼마나 많은 연습의 결과인지 압니다. 생각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유를 끊임없이 연습하는 사람이 생각을 제대로,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관찰의 노력과 그것을 화두 삼아 생각을 깊게 연습하는 일을 각별히 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학자'라고 할 수 있지요. 이는 저만의 과제가 아니라 모든 학자의 과제일 것입니다.

새로운 공간과 다양한 경험들로 다른 방식의 '필로소페인(고대 그리스어로 '철학하기'라는 의미)'을 하고 계신데요. 최근 가장 흥미롭게 몰두하고 계신 분야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하나는 제가 항상 추구했던 '현실' 또는 '실재'(reality)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진짜 '리얼'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과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을 아우르는 접근법이지요. 다른 하나는 '언어와 서사'의 문제입니다. 각 언어에 따라 같은 소재와 같은 주제를 가져도 그 전개가 달라집니다. 묘사의 방식도 다양하게 분화하고요. 각 언어 사이의 다른 점이 서사 형성에 어떻게 관계하는가에 호기심이 있습니다.

  • 김용석 교수가 '반지의 제왕'의 저자 J.R.R. 톨킨의 묘소에서 발견한 한 참배객의 메모
쉽고 재미있는 '현상 읽기'가 문사철 전공자들의 현안이 됐습니다. 수년째 문화예술의 전방위에 대한 창의적인 읽기를 하고 계신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철학은 시선을 돌릴 줄 아는 미덕을 지닌 학문입니다. 부챗살처럼 시선을 넓게 펴다가 포착한 대상에 정이 들어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창의적인 열매는 그 성과로 따라옵니다. 이런 의미에서 '쉽고 재미있게 현상에 접근' 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깊이 파고들 때 재미는 따라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든 진지하게 대하고 그 속 깊은 뜻을 찾아갈 때, 흥미진진해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유의 씨앗과 창의적 접근 방식도 얻게 됩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안식년 중이신데, 그곳에서도 특별한 '안식'을 취하고 계실 듯합니다.

'공간 이동'의 효과와 혜택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공간 이동'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리저리 이동하는 여행과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공간 이동을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공간 이동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달린 것이겠죠. 영국을 묘사하는 말은 여럿이겠지만, 제가 이곳 옥스퍼드에 와서 찾아낸 건 '구름의 나라'입니다. 날씨가 변덕스럽다 보니까 구름들이 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야말로 '미쳤다'라고 할 정도로 구름들이 '판타스틱'합니다. 잔디 위에 앉아 그 환상의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제 머리도 상상의 날개를 펴게 되지요. 이런 관찰과 시각의 다양성은 새로운 사유와 집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지요.

급변하는 시대에 따라 철학의 정의나 위치도 계속 변할 것 같습니다. 이 시대의 철학의 정의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철학은 이 시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은유적으로 말하면 철학은 '알고자 하는 자의 방황'입니다. 철학은 '방황하는 구름'이자 홀연히 사라짐을 두려워 않는 바람(風)입니다. 철학은 아무 소용없는 것이라는 놀림을 받더라도 자신의 비극성을 간직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 고귀하게 비극적일 수 있다는 어떤 진실의 비밀 통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또한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는 인간 삶의 수호자이기도 하지요. 철학의 이 역할은 우리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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