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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영 무술감독 "한국적 액션으로 중화권 러브콜 받았죠"

<올드보이> '장도리 신'으로 해외진출 초석… '무술한류' 할리우드 도전
영화 <올드보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롱 테이크의 '장도리 신'이다. 한 번의 '컷'도 없이 진행된 4분여의 이 장면은 국내 영화 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서도 가치 있는 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지난해 영국 영화전문지 엠파이어(Empire)가 선정한 '세계 50대 영화스틸(Picture Perfect: Iconic Movie Stills)'에서 이 장도리 신을 포함시켰을 정도다. 이 장면의 수혜자는 배우 최민식이지만, 숨은 조력자는 양길영 무술감독이다.

15년의 감금 생활에서 탈출한 오대수(최민식 분)가 복도에서 장도리를 휘두르며 분노를 표출하는 이 장면은, 1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양길영 무술감독의 뜨거운 열정과 꽤 닮아 있다.

양 감독은 <올드보이>를 통해 입봉함과 동시에 그 실력을 인정받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열정이 통했던 것일까. 양 감독은 장도리 신으로 해외진출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대만의 영화감독이 <올드보이>와 <괴물>을 보고 나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믿을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됐고, 지금은 무술감독으로서 해외진출 1주기를 맞았다."

  • 영화 <올드보이>
한국 액션의 전파, 해외진출 1년의 성과

양 감독에겐 추석 연휴가 반갑지 않다. 9월 19일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대만영화 <굴러라 아시니>의 일정 때문이다. 벌써 중화권 영화만 세 번째 작품이다.

그는 지난해 <올드보이>에 반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대만의 유승택 감독과 대만영화 <맹갑>을 촬영했다. 그의 말처럼 "스스로 계약을 성사"시켜 만든 첫 영화였다. 유승택 감독은 젊은 배우들의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액션을 위해 중화권 무술감독이 아닌 한국의 무술감독을 원했다. 대만판 <친구>로 꼽히는 <맹갑>은 양 감독의 사실적인 액션이 빛난 작품이다.

<맹갑>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이후 200억 원 규모의 대만 블록버스터영화 <싸이더커 바라이>에도 무술감독으로 발탁되면서 대만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우삼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하고 웨이더셩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양 감독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그의 실력을 인정한 <맹갑>의 총괄 프로듀서가 <싸이더커 바라이>에도 참여하면서 그를 적극적으로 추천한 것.

더불어 <달려라 아시니>까지 맡게 되면서 중화권 영화계에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대만의 대작 영화에 참여한 사실만으로 그의 해외진출 성적은 높이 평가되는데 중국 본토에서도 그에게 작품 의뢰가 들어오고 있어, 해외진출 선언 1년 만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무술 영화의 본국으로도 불리는 중화권에서 양 감독에게 보낸 관심은 의미심장하다. 화려한 무술, 장엄한 와이어 액션 등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있는 듯한 특수효과와 기술을 가진 그들이 양 감독을 찾은 이유는 무얼까. 이에 대해 양 감독은 "사실적이고 감정이 실린 한국적인 액션"때문이라고 말한다.

"중화권과 한국의 무술, 즉 액션은 비슷한 면이 많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이 틀린 듯하다. 한국의 무술은 감정을 중시하며, 관객들이 원하는 진정성이 묻어나는 액션을 선호한다."

중화권이 조금은 화려하고 과장된 몸짓으로 액션을 소화한다면, 우리는 소박하지만 사실적이면서 섬세한 과정을 담고 있다. 이런 차이가 그들에게 다른 장르로의 도전을 재촉하게 했다. 최근 중국이 그에게 상당한 규모의 드라마 촬영 제의를 한 걸 보면, 중화권의 무술도 변화기를 맞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 중심에 양 감독의 자취가 묻어나고 있다. 1년 전 "국내 경쟁이 아닌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걸어보겠다"고 다짐했던 그의 포부가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것이다. 무작정 해외진출을 그리던 추상화가 남다르고 뚜렷한 목표로 구상화로 발전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의 사무실 '무토 액션 스튜디오' 벽면에 걸린 스케줄 보드에는 빈틈 없이 빼곡한 일정이 적혀 있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내 스스로 중화권 시장을 개척했다는 것에는 자부심이 있다. 무술 하나로 서로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후배양성이 곧 제2의 한류로 가는 길

양 감독은 마음이 급하다. 현재 회사 소속 무술감독과 스턴트 맨 등 14명에게 새로운 길을 터주는 게 그의 또 다른 목표다. 양 감독이 해외진출을 모색한 건 선배들을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들의 도전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후배양성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고 한다.

그는 20여 년을 무술을 하며 스턴트맨으로 활약했지만, 마흔을 넘기고서부터 국내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국내에 30대 초반의 젊은 감독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영화 작업 환경도 젊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는 가야 할 길을 선택해야 했다.

"중화권은 우리처럼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진 않다. 70세의 조감독도 있고. 일하는 것에 있어서는 나이를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다. 반면 국내에선 작업 환경이 젊어진 대신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팽배해 있는 느낌이다."

그는 그래서 후배들에게 "빨리 빨리", "더 더"를 외치고 있다. 무술 실력과 함께 영상편집 능력까지 갖춘 인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또 중화권 시장에 진출한 이상 중국어 등 회화 실력을 키우는데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참이다.

해외활동 뿐만 아니라 국내 활동까지 끌고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후배들에게 다양한 장르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게 하고 싶은 것이다. 현재 SBS <자이언트>와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MBC <김수로> 등을 맡아 후배들과 팀을 이뤄 작업을 진행 중이다. 팀으로 움직이면 경제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양 감독은 영화 <올드보이>, <괴물> 외에 <바람의 파이터>, <작업의 정석> 등과 드라마 <태왕사신기>, <카인과 아벨>, <로비스트> 등으로 그 노하우를 몸소 익혔다. 그 역시 선배인 정두홍 무술감독에게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양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인 정두홍 무술감독과 20여 년을 동고동락했다. 그는 1990년대 초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서울로 올라와 합기도 등 무술을 연마하던 중 당시 스턴트우먼으로 활약하던 강대석씨를 만나 활동했다. 이후 강씨의 도움으로 정두홍 무술감독과 인연을 맺었고 함께 서울액션스쿨을 설립했다.

그러다 지난해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독립, 현재의 '무토 액션 스튜디오'를 차렸다. 뜻이 맞는 후배들과 회사를 이끌어 가면서 정 감독처럼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 있다. 든든한 후배인 심재원, 박현진 무술감독 등이 한 팀이 돼 중화권을 넘어서 할리우드까지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기도 하다.

"얼마 전 상업영화 <패는 여자>의 주인공으로 우리 회사 소속의 여자 스턴트우먼이 캐스팅돼 촬영을 마쳤다. 회사에 스턴트 및 무술지도를 하는 여자 후배 2명이 있는데, 한국 최초로 여자 무술감독을 배출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양 감독은 국내 대중도 할리우드나 중화권처럼 액션 연기에 마음을 많이 열었다고 말한다. 특히 여성 관객들이 액션 영화를 찾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한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꾼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처럼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액션 영화를 만드는 것을 말이다.

"여전히 국내 스턴트계의 환경은 열악하다.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갈 길이 멀다. 그렇지만 해외에서 얻은 수확을 국내에도 전파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데 일조하고 싶다.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이 적절할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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