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야극장의 허욱 대표배우출신 극장장, 저소득층·지역주민 위한 복합문화공간 포부

서울 국립극장과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은 육중하면서도 장엄한 외관이 먼저 떠오른다. 더불어 그 속에서 펼쳐지는 공연들 또한 가볍지 않은 진지함으로 다가온다. 도심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어쩐지 우리와의 거리가 가깝지만은 않다. 격식을 차려야만 들어설 수 있는 공간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런 무거움 때문일까. 대중, 즉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며 친근함을 내세운 극장이 반갑기 그지없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주)가야극장. 30대 초반의 젊은 극장장인 허욱(33) 대표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퍼포먼스 공연이나 클래식, 뮤지컬, 대중음악 등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한 계층과 연령이 즐길 수 있는 공연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장소다.

10월 1일 개관한 가야극장은 허 대표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그 시작을 알렸다. 지난 6개월간 개관 준비를 하면서 그의 머릿속에는 '소통과 융합'이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았다. 높은 문턱의 극장들과는 다르게 저소득층과 지역주민 등을 위한 친밀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특히 배우 출신으로서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더 의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허 대표는 영화 <태풍>, 드라마 <남자이야기> 등 카리스마 있는 연기파 배우로 활약했다. 그의 경력에서 말해주듯 그는 대중과의 소통을 잘 이해하고, 그 방법을 순차적으로 풀어갈 의지를 피력한다.

"현재는 퍼포먼스 공연인 <판타스틱>과 <리턴>의 전용극장으로 운영될 계획입니다. 1년간 안정적인 측면에서 극장을 이끌어가려고 합니다. 가야극장이라는 이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야 다양한 콘텐츠를 관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허 대표가 퍼포먼스 공연을 위한 전용극장을 내세운 건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수용하고자 하는 포부 때문이다. <난타> 등 퍼포먼스 공연은 외국인들에게 더 쉽게 우리의 정서를 전달할 수 있는 무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사 없이도 무대 위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게끔 한다는 것. 이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부가산업까지 구상 중이다.

그의 말대로 "사명감을 갖고" 운영한다면, '외국인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꼽히는 극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의 포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30대의 젊은 감각으로 극장을 위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꿈과 희망을 주는 극장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대형화, 거대화되는 풍토 속에서 그보다는 작지만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극장으로 우뚝 서고 싶어요. 극장의 문턱이 높아서야 되겠어요?(웃음)"

저소득층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연을 한다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대중(관객)은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관람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문턱이 높은 공연장은 대중에게 외면되기 십상이다. 이를 위해 서대문구의 지역주민들에게 많게는 80%까지 관람료를 할인해주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또한 매주 월요일에는 대중과 친근한 음악공연을 마련해 다양한 연령층이 공유할 수 있는 무대도 준비하고 있다.

경영 철학이 '소통과 융합'이라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모든 계층에게 열려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은 목표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연령, 성별, 인종 등을 뛰어넘는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육성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야극장은 아이들을 위한 야외 공연장이 마련돼 있고, 친구나 연인들을 위한 젊은 층을 겨냥한 공연도 있다. 중장년층을 위해 전시회나 콘서트도 빠져선 안 된다. 또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24시간 개방된 극장을 운영하고 싶다. 심야까지 공연이 펼쳐지며, 하루에 갖가지 공연을 맛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

젊은 나이에 극장장이라는 명함을 달았는데.

부산 출신으로 그 곳에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최근까지 단편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자그마한 영화사를 꾸리고 시나리오 작업을 해왔다. 영화를 만들기 위한 작업들을 준비하고 있던 내가, 극장장이라는 큰 자리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아마 국내에서 최연소 극장장이 아닐까 한다.(웃음) 나이 많으신 선배님들과의 만남이 잦을수록 비즈니스 마인드과 연륜 있는 감성을 동시에 습득하고 있다. 걱정과 고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것들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

배우출신인데 극장장이라는 역할이 어렵진 않은지.

배우로서의 사회를 바라보는 입장과 극장장으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입장이 너무 다르다. 배우는 내 스스로 연구하고 고민하고, 현장에서 준비했던 것들을 쏟아 부으면 됐다. 극장장은 숟가락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멀티플레이어다. 절대적인 스태프가 되어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너무나 다르다.

가야극장이 다른 극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꿈과 희망을 되찾아줄 수 있는 극장이고 싶다. 기회가 없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먼저 극장을 지을 때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 현재 장애인석을 중앙에 두어 인솔자까지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또한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이 않았던 아티스트나 작가들에게도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다. 그런 공연들을 장기적으로 만들어 진행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배우로 활동할 때 한 연기 선생님께서 "배우가 뭐냐?"는 질문을 하셨다.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선생님께선 고개를 저으셨다. 그는 "배우는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중간 매개자일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결국은 중간 매개자로서 사람들에게 희망도 주고, 삶도 보여주고, 죽음도 보여주는 역할이라고 하셨다.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극장도 그랬으면 한다. 좋은 공연 하나가 삶을 포기하려고 한 사람을 살릴 수 있고, 우울증 환자도 공연을 통해 극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회적 중간자 역할을 수행하며 대중과 보다 가까이 있는 극장을 만들겠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