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사 모티프로 쓴 신간 등단 15년 마무리하는 터닝포인트

소설가 조경란씨가 신간 <복어>를 출간했다. 그가 쓴 12번째 책이자, 5번째 장편이다. 그리고 등단 15년을 마무리하는 터닝포인트가 될 작품이다. "나중에 작가의 작품을 연대순으로 기록한다면, 이 소설이 전반기 마지막 작품이란 말씀인가요?" 그가 말했다. "최전반기요."

감각의 제국

그 '최전반기'의 시작은 어떠했나. 1996년 발간된 첫 장편 <식빵 굽는 시간>에 실린 이문재 시인의 인터뷰를 펼쳤다.

'이 같은 줄거리는 큰 의미가 없다. 서사성을 따라가다 보면 '식빵 굽는 시간'은 눈깜짝할 사이에 불과하다. 식빵보다는, 즉 관계를 구성하는 만남이나 헤어짐, 알력과 같은 사건들보다는 그 사이사이를 빵 굽는 냄새처럼 채우고 있는 '무드'에 유념해야 한다. 문체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15년이 지났지만,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작가의 소설은 서사성보다 관계, 사건보다 그 사이 여운에 방점을 찍는 소설이다. 문체가 아름다운 소설이다. 시간이 지나 작가 특유의 여운은 감각이란 말로 구체화됐다. 그의 자아는 의식이기 이전에 감각이다.

'그는 입을 통해 타자를 받아들이고 혀를 통해 세계와 만난다.'(문학평론가 김화영) 초기작 <식빵 굽는 시간>을 비롯해 <국자 이야기>, <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그는 음식을 모티프로 썼다. 그렇다고 모름지기 작가가 소설을 쓰면서 단순히 먹고 마시는 풍요를 묘사한다거나 음식 사회사(史) 같은 것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조경란의 작품들을 읽을 때, 독자가 향긋한 빵 한 조각이나 와인 한잔 생각이 간절해지진 않는다는 말이다. 작가는 먹고 마시는 감각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 관계에서 빚어지는 자아의 고독과 두려움을 그린다.

"빵, 이탈리아요리, 중국요리, 와인 공부를 따로 한 건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었어요. 그러다가 '이런 이야기를 써봐도 되겠구나'는 생각으로 소설을 썼을 뿐이에요. 깊이 들어가면 전부 먹고 마시고, 만지는 행위죠.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와 무엇을 나누는 거예요."

여기서 신작 <복어>는 예외다.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복어를 다듬는 법을 배우고 복어 요리를 먹었다. 소설 주인공인 '그녀'가 완벽한 죽음을 위해 복어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먹는 것과 유사하다. 그녀의 할머니는 아홉 살 난 아들,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독이 든 복엇국을 먹고 자살했다. 이 또한 작가의 경험과 맞물리는 이야기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작가의 친할머니도 손수 끓인 복엇국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그러니까 <복어>는 작가의 가정사를 모티프로 쓴 소설이다. 작가는 소설 책 끝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글을 쓰게 된 순간부터, 이 소설을 쓰게 되기를 기다려 왔다. 나로서는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너무 일찍 말하고 싶지 않았다.'(작가의 말 중에서)

삶과 죽음의 맛, 복어

여기, 조각가인 여자와 건축가인 남자가 있다. 소설은 그녀와 그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여자의 할머니는 복엇국을 먹고 자살했고, 남자의 형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이 둘은 가족의 죽음을 트라우마처럼 지녔지만, 여자는 죽음을, 남자는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정반대의 벡터로 나아간다. 둘의 만남은 예술이란 공통의 관심사에서 비롯되지만, 이 둘의 관계가 보다 긴밀하게 연결되는 고리는 당연하게도 사랑이다.

남자는 그녀의 얼굴에서 죽은 형의 모습을 발견하고 끌림을 느낀다. 그리고 여자를 삶 쪽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 사랑이 신파가 아닌 이유가 복어에 있다. 여자는 할머니가 끓여 먹고 죽은 복어를 배운다. 여자에게 복어 배우기, 복어 맛보기는 죽음, 예술, 삶을 이해하기 위해 넘어야 할 단계인 게다.

- 이 작품이 터닝포인트가 됐다는 건 작가의 상처를 드러냈기 때문인가요?

"여러 의미가 있어요. 15년 동안 쓴 작품에 방점을 찍은 것이 이 소설이고, 작가에게 여러 관문이 있다면 간신히 하나를 통과한 느낌을 받았어요. 이 소설을 쓰면서 예술가가 자신을 믿고 예술 한다는 것에 대해서 질문했고요. 그 질문에 자연스럽게 죽음의 문제도 따라왔고. 주인공과 객관적인 거리를 완전히 유지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거리는 유지할 수 있었어요."

- 4부 67장으로 구성됐고, 홀수장은 그녀, 짝수장은 그의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이렇게 배치한 이유가 있나요?

"이 소설이 저의 친할머니 죽음과도 관련 있고, 예술가의 근본적인 질문을 껴안고 있는 주인공이란 점에서 1인칭으로 쓰면 반드시 감상의 나락으로 빠질거란 생각에 3인칭으로 썼어요. 그와 그녀 이야기가 교차하지만, 사실 그는 조연일지 몰라요. 두 사람은 등이 붙은 채로 살아가는 존재인데, 여자는 죽음으로, 남자는 삶으로 나가려하죠. 삶과 죽음이 한 몸인 것처럼. 이때 남자의 역할은 여자를 삶으로 끌어 오는 거예요."

- 독자가 쉽게 이야기에 집중하게끔 처리한 장치가 눈에 띕니다. 이를테면, 각 장마다 소설 문장에서 따온 소제목이 달려있는데, 일종의 방향타 구실을 하고 있죠. 그럼에도 이 소설을 한 번에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이야기를 쪼개 재배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이번 소설을 쓰면서는 스스로 한 약속이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이 일어난 방식에 대해서 보여주자'라는 거에요. 일부러 이야기를 재배치한 건 아니고, 의식을 따라갔을 뿐이고요.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소설을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소설에서 시간의 역할은 사건이 왜 발생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해야 하고, 왜, 그때 그 사건이 일어났는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죠. 그래야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소설을 읽으며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요."

- 장편 <혀>가 번역돼 출간됐고, <복어>도 계획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지 반응은 어떤가요?

"제 소설에서 두려움, 관계가 아마 가장 큰 주제일 듯한데, 이건 세계보편적인 관심사인 듯해요. 그리고 역시 먹는 것, 사랑, 기본적인 우리가 갖고 있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 같은 것이죠. 작년 미국 6개 대학을 다니며 낭독회를 하고 질문을 받았는데, 한국 독자와 질문이 너무 유사해서 한 번은 웃음이 났어요."

영화 <식스센스>는 마지막 한 장면을 위해 달려가는 이야기다. <인셉션>에서 멈출 듯 말듯 위태롭게 팽이가 돌아가는 장면은 그것이 꼭 반전이 아니더라도, 서늘한 여운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복어>는 67장을 향해 나아가는 소설이다. 두려움과 죽음, 슬픔과 아름다움이란 예술의 원형을 찾아가는 소설은 그 말미에 제 모습을 오롯이 보여준다. 장면은 더디고, 그와 그녀가 내뱉는 소리는 힘들지만, 마지막 장면의 여운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실망하지 않을 터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