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당 포도주 제조법' 특허… 국산 포도 이용 당분 첨가않고 당도 높은 와인

'한 우물을 파라'라는 말이 있다. 샘물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긴 싸움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우물을 파는 시간은 힘들어도 샘물을 얻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오룸다이닝의 한상돈 소믈리에는 '한 우물을 파라'는 의미를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 말 소믈리에라는 이름으로 요식업계에서 발을 들여놓은 이후 큰 일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산 와인을 직접 만들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내놓는 일이다.

그는 2005년부터 국내산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7년 '무보당 포도주 제조 및 이 방법에 의한 포도주'에 대해 특허를 받았다.

국내산 포도를 이용해 당분(설탕)을 첨가하지 않고 당도를 높인 와인이다. 더 놀라운 건 이 와인이 세계적인 와인평론가로 유명한 로버트 파커에게 선보여 87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어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2~5등급 와인들이 85~87점 사이인 것을 감안하면, 국내 포도로 제조한 한씨의 와인이 87점을 받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순수하고 깊은 맛이 난다"는 로버트 파커의 평은 한씨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줬다. 로버트 파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South Korea'라는 카테고리가 생성된 것도 한국 와인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국내 과실주는 오랜 기간 숙성을 시키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요. 하지만 무보당 포도주 제조법은 그간 3년이 한계였던 숙성 기간을 더 장기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성과를 보여줬죠. 앞으로 국내 대표 와인을 만들어 외국인들에게 대접하는 게 목표입니다."

국내산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는 게 쉬운 작업이 아닐 것이다. 왜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

소믈리에로서 일을 하다 보니 외국인들이 한국 고유의 술을 찾을 때가 있었다. 매실주나 복분자주를 권해주기도 했지만, 국내산 과실주에 대한 아쉬움이 늘 남아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포도로 만든 와인을 외국인들에게도 소개하고 서비스하고 싶은 마음에 와인 생산을 결심했다. 한국의 로컬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 벌써 5년째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오룸다이닝을 통해 고객들에게 테스팅해 보이고 있다.

국내 주류업계에서 와인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 소믈리에가 생산하는 와인이 기존의 국산제품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처음 와인을 만든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특히 설탕을 첨가하지 않고 12%에 달하는 당분을 올렸다는 데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로버트 파커에게 테스트를 받은 23B(디오니소스 캐슬)는 포도를 건조시켜 수분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은 장기간 숙성할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농도가 더 진하다. 하지만 생산량이 설탕을 첨가하는 방식보다 적기 때문에 단가가 높다. 하지만 무보당 와인이 깊은 맛을 내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포도의 질에 대해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포도를 직접 생산해 와인을 제작해야 수익적인 면에서도 장점이 있을 것 같은데.

오는 11월 7일 경북 영천시와 MOU체결을 앞두고 있다. 영천시 포도사업단과의 MOU체결은 보다 품질 좋은 포도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우리가 현장에서 익힌 소비자의 요구를 즉각 반영해 신뢰를 주는 와인 생산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또한 영천시에서 만든 포도주들은 카테고리화해서 그 레이블을 소비자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프랑스의 네고시앙(와인업자)의 개념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포도는 와인을 만들기에 적절한가. 지역적 특색이 있을 것 같다.

프랑스, 칠레, 호주 등은 그 나라 와인을 대표하는 포도 품종들이 있다. 그 지역에 따른 품종들로 인해 그 맛과 향 등이 다른 특징을 나타낸다. 우리도 한국에 맞는 포도 묘목을 만들어 생산해야 한국적 맛의 와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도 그만의 포도 품종을 만드는 데 5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도 캠벨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데, 앞으로는 머루를 이용한 교접을 통해 좋은 품종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래야만 포도를 수확하는 농민들도 수익성을 내는 시스템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와인이 국내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는 무엇으로 보는가. 와인이 건강에도 좋다는 의학적 연구 결과들도 많은데.

지난 1997년 IMF 이후 미국 CNN에서 방영했던 '프렌치 패러독스'라는 내용의 와인 관련 방송이 국내에서도 전파를 탄 적이 있다. 레드 와인의 성분이 혈관 질환에 좋다는 의학적 증명을 보여준 프로그램이었다. 레드 와인의 폴리페놀 성분 때문에 프랑스인들이 다른 유럽국가보다 혈관질환에 적게 걸린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줬다. 그 이후 국내에서 와인 열풍이 일어났다. 나 역시 아이가 3살 때부터 와인을 조금씩 수저로 떠서 먹이곤 했다. 이처럼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의견을 부정하지 않는다.

본인은 '와인의 대중화'가 아직 멀었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 때의 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와인의 대중화라 하면, 내 생각에 가정에서 식사 시간에 반주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과음을 하지 않는 선에서 하루에 두 잔 정도의 와인을 권한다. 그런 시대를 만들고 싶다. 대중적으로 모든 연령층이 사랑하는 술이 되어야만 '대중화'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유럽연합과의 FTA 체결은 와인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소믈리에=와인전문가'로 인식되어 있다.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가.

소믈리에는 와인만의 전문가는 아니다. 소믈리에는 와인을 포함한 다양한 주류 등 식음료업계에서 다방면으로 대고객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이다. 서비스할 와인을 선별하고, 맛 보고, 리스트를 만들고, 서비스하는 것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의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와인 감별사'라는 인식은 잘못된 표현이다. 소믈리에 자격증 시험에도 와인 테스팅만이 아니라 서비스, 경영 등의 지식을 요하는 부분도 많다.

앞으로 와인 생산에 있어서 포부가 있다면.

나의 와인 생산 목표는 2만 병이다. 지난해에 3000병을 생산했고, 내년에는 6000병, 그 다음해에는 1만 2000 병 등 더블 스코어로 와인을 제작하고 싶다. 올해는 기후 변화가 심해서 와인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앞으로 국산 포도 품종으로 만든 순수 한국산 와인을 글로벌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종 목표다. 현재 와인과 관련된 책을 집필 중이다. 책을 통해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와인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한상돈 소믈리에는… 1988~1989년 서울 하얏트 리젠시, 1990~2001년까지 조선호텔에서 소믈리에로 활동했다. 1996년 제1회 한국 우수 소믈리에 대회 2위에 입상, 제10회 세계 소믈리에 대회에 한국 최초로 참가해 소믈리에 인증서를 받았다. 2008년에는 사단법인 한국소믈리에협회를 창단. 2007년부터 현재까지 오룸갤러리 내 오룸다이닝의 소믈리에로 활동 중이다.



강은영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