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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성희 "수다의 패턴 가진 대가족 이야기"

첫 장편 <구경꾼들> 출간… 여행 떠난 부모와 아이의 성장 이야기 교차
  • 사진:박재홍
소설을 한자로 쓰면 '小說'이다. 작은 이야기란 뜻이다. 작가는 시대를 반추하거나 아예 시대를 넘어서서 '인간의 내면', '세계의 진실' 같은 것을 그려내려는 자(者)이지만, 정작 그들이 갖고 있는 재주라곤 '작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위대한 작가는 이 작은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담아낸다.

윤성희는 소설의 한자 의미를 가장 적확하게 풀어내는 작가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작고 보잘 것 없으며, 별 일도 아닌 일에 혼자 고민하다가 제 나름의 결론에 다다른다. 여기저기서 황망한 사건들이 전개되고 인물들은 실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지만, 그들은 대체로 밝고 건강하게 그 황망한 사건들을 견뎌낸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충실히 재현하는 인물들이다.

일상을 그리는 소소한 이야기

작은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 윤성희 소설의 특징은 곧 2000년대 한국 소설의 한 경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가 낸 세 권의 소설집에는 궁핍과 고독, 우울함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데, 소설 속 인물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상황을 하나 같이 명랑하게 대면한다. 물론 작가가 처음부터 이런 인물을 그린 것은 아니다. 첫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에서 인물들은 그 우울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적막한 고독과 자기소멸의 공포로 일그러진다.

이 슬픔은 두 번째 소설집 <거기, 당신?>에 와서 낙관적 의지로 전환된다. 세 번째 소설집 <감기>에서 한층 더 경쾌해진 인물들은 명랑하고 엉뚱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찌질한 인물들은 사건을 겪으며 불쑥불쑥 숭고한 면모를 드러낸다. 그의 소설은 희비극이 교차한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비극에 대해서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려는 작품을 좋아해요. 그런 작품들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기도 하고요. 인물들 스스로 나름의 윤리가 있고,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조화를 이룰 것인가에 관심이 있어요."

때문에 그가 말하는 방식은 간명하다. 문장은 짧고, 감정을 드러내는 형용사, 부사는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미사여구나 수사는 배제한다. 이 점은 아포리즘이 난무한 한국 소설, 특히 대개의 여성 작가 소설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저는 자의식이 과잉된 것, 엄살 많은 문장을 좋아하지 않아요." 작가는 말했다.

"미술로 치면 크로키처럼 설명하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그러려면 짧게 치면서 여운을 행간에 숨겨두는 훈련을 하게 되죠. 건조한 문체가 좋아요."

구경꾼들

올해로 등단 11년을 맞은 그녀가 지난 주 첫 장편 <구경꾼들>을 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이 소설은 그의 장점이 십분 발휘된 소설이다.

"부모가 자식을 버려두고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세상을 구경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부모가 정작 자식의 어릴 때 모습을 하나도 담아 두지 않은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서 쓰고 싶었거든요. 또 한편으로 이층집에 사는 대가족 이야기를 쓰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대가족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맡겨두고 여행을 다니는 상황이 자연스러울 수 있겠구나, 생각해서 시작한 이야기에요."

'나'와 아버지와 할아버지, 3대 7명이 복닥거리는 집이 있다. 소설은 17살 '나'의 눈으로 그린 세상의 모든 이야기다. 아버지, 어머니의 연애시절부터 시작하는 소설은 그들이 살고 있는 2층집의 내력과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역사를 시시콜콜 복원한다.

외할머니가 엄마를 임신한 채 터미널 다방에 일곱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애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민하던 외할머니는 옆집 아이가 피아노 치는 소리를 들은 다음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엄마는 그렇게 태어났다.

아빠는 어렸을 적 아이스박스 안에 들어가 잠들었다가 가족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소설 창작 수업을 듣게 된 아빠는 이 경험을 비틀어 습작을 한다. 외할머니까지 가족 8명이 총출동한 여행에서 충돌사고가 일어나고, 온 가족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지만, 가족과 다른 병원에 입원하게 된 큰 삼촌은 다른 환자에게 깔려 저 세상으로 가게 된다.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마치 공동체 사회를 축소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는 대가족의 품에서 자라고, 아이의 부모는 세계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난 부모의 이야기와 아이가 성장하는 이야기가 교차된다. 이렇게 나의 성장을 지켜보는 가족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소설은 매일 저녁 이야기가 이어지는 일일 연속극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쓰게 된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사람들이 수다 떨 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잖아요. '수다의 패턴'을 가진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또 하나는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계속해서 맞물리는 방식의 장편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장편은 작은 사건에서 큰 사건으로 퍼져나가는 방식도 있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부딪쳐 균열을 그리는 방식도 있죠. 제가 잘 쓸 수 있는 영역은 이렇게 작은 에피소드를 연결해 긴 이야기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익숙하게 읽어온 소설은 대개 하나의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다. 제한된 등장인물과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필연적으로 운동하고 클라이맥스를 지나 끝난다. 그러나 윤성희의 거의 모든 소설에서 이 소실점은 해체된다.

단편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요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여러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간다. 다소 산만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런 무질서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담아낸다. 세 권의 소설집을 관통하는 윤성희 단편소설의 특징이다. 그 점에서 그의 첫 장편은 단편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이다.

"이야기가 어떤 플롯을 만나서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되느냐에 관심이 많아요. 머릿속에 2, 3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다음 장편은 그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 이야기들이 결합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경장편이나 로드무비 같은 형식이 될 수도 있고요."

'나를 스친 모든 인연을 그려보게 하는 소설. 살아온 터와 곁에 있는 사물들의 내력을 생각게 하는 소설'.

이번 장편에 대한 문학평론가 차미령의 소개 글은 윤성희 작가의 모든 소설에 해당되는 말이다. 가지를 뻗어나가는 이야기들은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내 주변인들에게도 수많은 이야기가 살아 있음을 알게 해 준다.

팍팍한 일상을 간결하게 전하는 이야기는 동세대 어떤 작가의 소설보다도 따뜻한 시선으로 세계를 담아낸다. 소소한 이야기가 빚는 여운을 바라는 독자라면 기대에 값하는 소설이다.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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