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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 김영현 "한국리얼리즘 문학의 본상, 자부심"

실천문학 김영현 대표
출판사 창립 30주년, 계간 문예지 <실천문학> 지령 100호 겹경사
책은 소비하는 데도 노동이 필요한 상품이다. 독자가 책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려면 즉, 상품의 효용을 얻기 위해서는 비용 이외에 시간과 노동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이때 기업이 책을 팔아 얻는 것은 이윤만이 아니다. 출판사는 책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소위 이데올로기라 불리는 것도 함께 전파한다.

베스트셀러가 사회현상을 드러낸다면, 스테디셀러는 사회와 사회구성원을 자기 편으로 바꾼다. 토대와 상부를 함께 쟁취하는 상품이라고나 할까. 자본주의 시대, 출판 산업이 단순히 '산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출판사 실천문학이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같은 이름의 계간 문예지 <실천문학>이 올겨울 지령 100호를 찍어낸다. 겹경사다. 90년대와 2000년대를 통과하며 출판계에서 문학의 스펙트럼은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실천문학>은 리얼리즘 문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실천문학 김영현 대표를 만났다. 88년부터 7년간 주간을 역임했고, 95년부터 지금까지 대표이사를 맡아왔다. 명실공히 실천문학의 살아있는 역사다.

아현동 쌀집 이층에서

1980년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등 문예잡지가 강제 폐간됐던 시절, 잡지 형식의 부정기간행물, 무크(Mook)지의 형태로 <실천문학>이 출간됐다. 발행주체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편집위원은 고은, 박태순, 이문구, 송기원, 이시영이었다. 해직 출신인 박병서가 대표를, 박태순이 주간을 맡았고 출판사 전예원에서 발행했다.

2인 체제는 4년 만에 막을 내리고, 아예 아현동에 사무실을 차려 출판사로 독립한다. 84년 송기원이 주간으로 들어오고, 그는 운영위원을 끌어들여 거금 500만 원씩을 갹출시킨다. 이호철, 김주영, 이수인, 오종우, 안종관, 조태일, 장홍주, 김홍신, 김동현, 이시영, 최원식, 이문구 등이다. 당시 이해찬 전 국무총리도 잠시 편집장을 맡았다.

이상은 김영현 대표가 <실천문학> 100호 기념으로 쓴 '주마간산 30년사'의 서두를 요약한 것이다. "내가 처음 실천문학을 찾아갔던 것은 1984년 겨울 무렵, 아현동 뒤길 쌀집 이층의 사무실"로 시작한 이 글에서 김 대표는 실천문학의 역사를 위 아래로 더듬어 기록했다.

"당시 독자, 젊은 문청들에게 <실천문학>의 영향력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실천문학만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태어난 잡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모든 잡지가 탄생하는 배경에 자기 시대의 요구가 있지만, <실천문학>은 그 당시 정말 절박한 요구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있어요."

통사적인 역사 이외에 대표께서 느낀 가장 보람된 일은 무엇입니까?

"문예지<실천문학>을 거치지 않은 문인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집필자로 참가했어요. 실천문학에서 펴낸 작가들의 책도 마찬가지고요. 시집 시리즈가 187권 정도 나왔는데, 김지하, 고은, 신경림부터 김남조와 도종환 시집까지. 신인도 계속 발굴하고요. 조정래, 박완서. 이문구 선생처럼 한국문단의 줄기를 만든 작가들의 소설도 실천문학으로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리얼리즘 문학의 본상' 이라고 봅니다. 한국 문학의 여러 갈래 중에서 현실의식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낸 출판사이고, 그러다보니 상업적으로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정신이 지금 와서 출판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반대로 가장 아쉬운 건 무엇인가요?

"2000년 넘어오면서 규모가 커진 문학출판사가 많아졌죠. 이에 반해 실천문학은 물적 토대가 약하기 때문에 좋은 작가나 시인들의 작품을 욕심껏 내지를 못했어요. 가장 아쉬운 점이죠."

출판계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하죠. 특히 출판 분야에 있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문제인 것은 매출이 아니라 책에 대한 신뢰도 측면이라고 보는데요. 저만 해도 신인작가나 작품을 대하면 출판사부터 챙겨 보게 됩니다. 신뢰하는 출판사에서 아무 책이나 내지는 않는다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격차가 벌어진 시기를 언제부터라고 보세요?

"제가 출판계 들어온 게 82년도이거든요. 웅진출판사 초대편집장이었어요. 그때부터 출판 계를 되돌아보면…. 80년대는 운동권 친구들이 취직이 안돼서 출판사로 모였습니다. 지적인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서 출판이 르네상스를 이룹니다. 사회과학 출판사가 생기면서 번역서와 양서를 쏟아내던 시절이었어요. 90년대 들어서면서 패러다임이 바뀌어요. 다양한 작가들이 발굴되고, 대자본이 출판계에 몰리죠. 그러면서 큰 출판사들이 생기게 됐는데, 거기 같이 성장을 못하면 군소출판사로 전락하게 되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책, 영업력, 출판사 크기가 책의 성공을 좌우하게 됐죠. 베를린 장벽 무너질 때쯤, 90년도 초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봅니다."

4세대 편집위원은 누구?

김 대표가 쓴 글의 나머지 부분을 소개한다.

이후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면서 80년대 잠깐 부흥기를 맞지만, 월간 <노동문학>을 빌미로 삼은 국세청 세무사찰로 위기를 맞는다. 95년 주식회사로 전환했고, 그해 말 그가 40세의 나이로 대표를 맡았다. 2000년대 <체 게바라>평전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국내 출판계에서 평전이 새롭게 주목받았다. 출판사 실천문학은 5년 전 망원동에 사무실을 마련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내 문학출판분야는 신인상 공모전을 통해 작가군을 형성하고, 문예지를 통해 담론을 자체 생산한다는 점에서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판의 상업적 성공과 별도로 문예지의 담론이 지식사회 주류 담론으로 자리 잡느냐가 중요하죠. 지식 산업분야에서 상징권력을 쟁취하는 건 중요한 의미니까요. 80년대 실천문학이 한국사회 담론의 중심에 섰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 실천문학이 어떤 담론을 생산했나, 생각해 보면 물음표가 쳐집니다. 현재 주목하는 작가나 작품, 담론이 시대와 동떨어진다는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처음에 실천문학이 창간되면서 노동자문학을 가장 먼저 선도했고, 백무산이나 박노해 등 시인을 발굴했습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요. 이후에 남북문제를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였고, 남과 북의 민중주의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리고 국제적인 문제들에도 관심을 가졌어요. 이를테면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면서 야기하는 전쟁상태나 갈등을 넘어가 보자는 시도들이죠. 실천문학이 처음에 제기했던 계급적인 문제, 자본주의 폐단, 우리시대가 그런 문제로부터 해방되었느냐, 고 반문하고 싶어요. 오래된 과거가 오래된 미래와 결합되어 있다고 봐요. 저는 때문에 출판사가 가진 색깔, 가치의 문제, 이 문제의식을 담은 콘텐츠를 대중에서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가 관건이지 그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에 필요 없다는 생각은 안 해요."

통권 100호를 전후해서 <실천문학>의 편집진과 내용이 바뀐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잡지의 편집이 독립적으로 구성됐어요. 제가 사장이지만 방향을 요구하지 않고, 편집위원이 독립적으로 콘텐츠를 꾸려나가지요. 문예 담론은 당대의 중심적인 세대가 만드는 것이 옳다고 보거든요. 우리세대가 7년쯤 편집위원으로 일했고, 그리고 그 후배가 6,7년 정도 이어받아 꾸렸습니다. 임기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시기에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죠. 하나의 마당 개념으로 보면 좋아요. 마당을 연 사람은 있지만, 주인이 될 필요는 없잖아요. 누구든지 와서 놀고, 좋은 발을 가진 사람은 한 때 어울려서 판을 만들어주고 가면 되거든요. 실천문학의 마당은 굉장히 좋은 마당이에요. 하나로 정리된 건 아닌데, 오히려 그 다양성이 하나의 색깔을 이루면서 지나면 성격을 형성하죠."

2005년 박수연, 고명철, 오창은, 김선우, 정지아 씨를 영입했을 당시에 편집위원 나이가 대체로 30대 중반~40대 초반, 젊은 문인들이었는데요. 이후 꾸려진 편집위원은 어떤 분입니까?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으로 꾸려지겠죠. 그 시기가 새 담론을 창출하는 제일 맞는 시기인 것 같아요. 제가 경험적으로 볼 때요. 가장 활동적이고 열심히 할 수 있는 나이이고요. 구성은 아직 결정 안됐어요. 1년에 걸쳐 천천히 바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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