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이철, 엄인호, 주찬권의 <슈퍼세션>1970~80년대 대중음악 거인들의 의기투합 블루스 앨범 발표

한국 록의 전설 (왼쪽부터) '들국화'의 주찬권,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
한국 록의 거장은 녹슬지 않았다. 아니, 거장은 여전히 성장 중이었다. '신촌블루스'의 엄인호(58·기타 보컬),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57·기타 보컬), '들국화'의 주찬권(55· 드럼 보컬). 음악평론가 하종욱은 그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블루스를 한국 대중음악에 안착시킨 엄인호, 펑크와 록을 대중음악에 뿌리내린 최이철, 포크 록 그리고 싱어송라이터의 개념과 원맨밴드 개념을 완성한 주찬권."

1970~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를 장악했던 거인들이 21세기에 던진 출사표는 놀라움 그 자체다. 한 프로듀서의 제의로 의기투합한 이들은 블루스 앨범 <슈퍼세션>을 지난 19일 발표했다. 10월 21일 홍대 앞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린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그들의 뜨거운 창작욕과 음악에의 열정을 충분히 전했다.

"우리나라는 나이 마흔만 넘으면 한물갔다고 하잖아요. 얼마 전에 밥 딜런의 공연을 봤는데, 나도 그랬으면 좋겠더라고. 요즘 나오는 밴드들 테크닉은 많이 늘었지만 음악보다 인물 위주로 가는 것 같아요. 상업성에 너무 치우치는 게 아닌가. 더 나이 먹기 전에 이런 선배들도 있었구나 하는 자극 아닌 자극도 주고 싶었어요."(엄인호)

앨범 수록곡 14곡은 엄인호, 최이철, 주찬권이 4~5곡씩 나누어 작사·작곡했다. 과거의 전설로 머물기를 거부한 그들은 현재의 감성을 담아내며 거장의 건재함을 드러냈다. 주찬권의 '다시 시작해'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사운드는 최이철의 '강', 엄인호의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주찬권의 '니가 있으니' 등이 호소력 짙게 다가온다. 요즘 대중음악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무게감과 따스함이 감돈다.

"나이 들면서 음악을 하고 싶은 욕구가 더 생겨요. 그런데 설 무대는 마땅치가 않죠. 이번에 앨범 녹음을 하면서 마음이 더 앞서네요.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흘러가는 대로 둘 것도 아니지만 공연도 하고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싶어요. 요즘도 계속 좋은 곡이 나올 것 같이 악상이 맴맴 돌거든요."(최이철)

독백처럼 담긴 노래 속엔 각자의 사연도 담겨 있다. 엄인호의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는 김현식의 추모곡이고, 'LA블루스'는 엄인호가 추구하는 음악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주찬권의 '비 개인 오후'와 '아주 특별한 날'에는 그의 딸들인 주자연과 주희연이 함께 노래해 더 특별한 의미가 됐다. 최이철이 작곡한 '바람 불어'는 80년대 초반에 발표했지만 녹음에 아쉬움이 남아 이번에 다시 꺼내든 곡이다.

이쯤, 그들이 활발히 활동했던 70~80년대로 가보자. '한동안 뜸했었지'만으로도 떠올려지는 70년대의 마지막 밴드 '사랑과 평화'는 기타리스트 최이철과 키보드 주자 김명곤을 주축으로 결성됐다. 세련되고 화려한 펑키 리듬은 당대에 없던 신선함으로 단번에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온갖 규제와 금기로 가득했던 80년대, 소극장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비주류 음악인으로 한국 대중음악에 새로운 역사를 썼던 '들국화'. 진실에 대한 다섯 젊은이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부르짖음은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의 명곡을 탄생시켰다.

대중음악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마지막에 자리하는 블루스. 세계 대중음악의 뿌리인 블루스를 한국적인 감성으로 해석해낸 이들이 바로 '신촌블루스'였다. 당시 김현식, 한영애, 이은미, 정경화 등 시대의 보컬리스트들이 객원으로 참여하며 그들의 끈적한 감성을 공유했다.

"그때가 좋았죠. 당시 제 주위에 감성 있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내가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 그 친구들에게서 힘을 얻을 수 있었음에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죠. 앞으로도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뒤돌아보고 미소 지을 수 있는 분위기가 우리 대중음악계에 형성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엄인호)

"펑크라는 음악이 굉장히 복잡해요. 다섯 명이 똑같이 숨을 쉬어야 음악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한 명이라도 다르게 호흡하면 음이 망가져 버리거든요. 김명곤 씨는 리듬감이며 음악적 감각과 편곡 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친구였습니다. 같이 연주하면서 많이 배웠죠. 그가 없었다면 '사랑과 평화'도 있을 수 없었죠."(최이철)

"'들국화'가 멈춰선 지 오래됐지만, 전 지금도 밴드를 합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연습하죠. 언제, 어디서든 즐기면서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죠. 이번을 계기로 형들과 공연도 자주 하고, 그러려면 연습도 제가 많이 시켜야 해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곡 쓰고 내년엔 2집도 내야죠. 주위 친구들에게 좋은 취지를 얘기해서 함께 만들어갈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주찬권)

70~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슈퍼스타들이 다시금 비상을 꿈꾼다. 그들이 비상하는 첫 무대는 오는 12월 10~11일 연세대학교대강당에서 열린다. 그들뿐 아니라 대중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