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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경제 비판적으로 보는 법 배웠으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그들이 말하지…> 국내 출간, 23개 키워드로 신자유주의 비판
'33대 0'.

재작년 김수행 교수가 정년퇴임하던 날, 언론들이 뽑은 제목은 대개 이랬다. 국내 대학의 경제학과는 주류 경제학파들이 말 그대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나마 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자유시장보다 정치나 사회제도를 변수로 두는 비주류 경제학 전공 교수들의 입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33명의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중 유일하게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한 김 교수가 퇴임하면서 '32대 1'의 비율이 '33대 0'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큰 틀에서 '제도주의 학파'로 분류된다. 그는 경제사와 사회정치학적 요소를 경제상황 진화에 있어 주된 요인으로 본다. 주요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자유시장경제를 도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산업발전 수준에 따라 단계적 규제와 통제, 보호정책을 펼친 덕분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거칠게 말해, 그는 비주류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라는 말이다.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의 비율이 '한국은 33대 0'이라고 하는데, 유럽에서는 어떤가요?"

그가 말했다.

"미국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유럽도 점점 비주류 학파가 줄어들고 있죠. 나라마다 차이는 있어요. 이탈리아는 그래도 아직 비주류 학파가 대세이고, 프랑스는 주류 학파가 늘었다고 해도 영국이나 독일보다 비주류가 훨씬 많고. 독일은 원래 주류 학파가 대세였고요."

서두가 길었다. 요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향력은 날로 커진다는 사실이다. 그의 역량과 더불어 2008년 세계금융위기도 한 몫을 차지했을 터다.

"전체 산업 파이를 키우면 결국 개인의 이익도 늘어날 것"이라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 효과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확산되며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와 비례해 그의 분석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점점 더 늘었다. 주류 경제학의 진원지인 영국에서 최근 그의 신간을 주목했다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원제: 23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이하 23가지)은 지난 8월 말 영국에서 출간과 동시에 국영 언론들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았다.

<가디언>이 두 차례 저자 인터뷰와 서평을 실었고 'In Praise of…'란 고정 칼럼을 통해 영국 정치인들에게 일독을 권했을 정도다. 가디언이 전통적으로 좌파 경향을 띤다는 점을 감안해도, 주류 경제학의 진원지인 영국에서 비주류 경제학파 교수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책은 기획단계에서 이미 영국,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 등 9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지난주 이 책의 국내 출간을 맞아 장하준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영국 출간 때도 몇몇 국내 언론들이 인터뷰한 바 있지만, 이번 간담회에도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려 그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경제학 95%는 상식적인 이야기

"제가 이제까지 쓴 책 중 <나쁜 사마리아인>을 빼고 전부 학술서적입니다. 그 책을 내고 나서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경제학은 결코 어려운 게 아닙니다. 95%는 상식적인 얘기를 복잡하게 만든 것이고 나머지 5%도 숨은 근본 논리는 쉬운 말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경제 얘기가 나오면 '우리는 모르겠다'고 하는데, 분명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고 이해해야 합니다.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라 가치관이 개입된 부분이니까요."

장하준 교수의 설명처럼, <23가지>는 23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설명한 책이다. 그는 서문에서 자본주의를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단지 지난 30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 자유시장 자본주의일 뿐이다. 장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자유시장 체제가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지난 30년 동안의 경제지표가 말해주듯 최선의 방법도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정부의 시장규제(1장,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다)부터 트리클 다운 효과 비판(13장,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 경제, 고용의 상관관계(17장,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등 23개 키워드로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책에서 '세계 주류 경제학자들이 위기를 불러온 게 아닌가' 비판했다. 최근에는 일반 국민까지 주류 경제학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것 같다.

"아무래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시장주의 경제학을 앞세우고 다른 나라에게 설교하던 미국과 영국 등이 신뢰를 잃었다. 경제학계 내에서도 나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세졌다. 하지만 이미 30년 동안 한 쪽으로 쏠려 있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뀌기 힘들다. 서서히 바뀔 것 같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인 물가관리, 투자,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폐해가 우리 삶으로 직접 드러나는 게 고용 불안정이다. 경제성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고용불안 문제를 서두에 썼는데, 솔직히 인플레이션 2%와 4%는 통계적으로 나오는 거지 실제로 체감이 나진 않는다. 경제지를 보면 인플레율이 1% 오르면 난리가 난 것처럼 쓰지만, 실업률 올라간 거는 별일 없는 것처럼 쓴다.

국내 비정규직 비율은 외환위기 이후 50%에서 60%로 올랐다. 그로 인해 우리 삶이 얼마나 괴로워졌는가? 고용이 불안해지면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할지 모르지만, 보수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일례로 우리나라 의대 편중 현상인데, 엄청난 인적자원 분배의 왜곡이다. 세상의 어느 나라의 상위권 80%가 의사가 되나? 장기적으로 가면 우리나라에 과학기술 노동의 질을 떨어뜨려서 성장의 질을 저해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고용이 불안해지면 사람들이 소비지출에 소극적이 된다. 자꾸 불안하니까 카드로 메워야 하고 빚이 되면 그 이자 부담에 짓눌려 가라 앉는 사람도 있고 전체 수요에도 영향을 미친다."

17장에서 '고등교육이 경제성장과 직접 연관이 없다'라고 했다. 그래도 한국사회가 교육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인적자원이나 R&D 등 경제 성장력의 동력으로 교육이 효과 있다는 주장은 나름 타당성이 있지 않은가?

"한국과 반대인 나라가 스위스다. 대학진학률은 낮은데 제일 잘사는 나라다. 기술 직업 훈련은 잘 돼 있어 굳이 대학을 통하지 않아도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경로가 있다. 교육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교육이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을 올리거나 사회적 위치를 올리는 기능이 아주 적다는 거다.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교육하면 정부나 개인이 실망하게 된다는 말이다. 인적자원이론은 상식선에서 맞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국가 교육이 자기 생산성에 도움 되는지는 해당 국가의 직업구조와 개인이 뭘 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영국의 경우 상관관계가 굉장히 낮다. 은행 사원 중 경제학과 출신은 3분의 1이 안 된다. 물리학과 역사학과 출신도 많다. 통계는 대학에 나와서 인적자원에 잡히지만, 결국 다 낭비한 거 아닌가."

이 책을 비롯해 장 교수는 그동안 신자유주의에 대해 집요하게 비판해 왔다. 저자가 지향하는 것은 뭔가?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제도학파라고 하는데 나는 무슨 학파인지 모르겠다. 세상이라는 게 굉장히 복잡하고 다면적이기 때문에 한 가지 이론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원칙적인 면에서는 돌아가자는 거다. 자본시장 규제의 방식은 시대마다 달라야 하지만, 규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거다. 책에서 페이션트 캐피탈(patient Capital, 기다릴 줄 아는 자본)이라고 썼는데, 그런 장기 안목을 갖고 투자가 되는 구조가 돼야 하는데, 신자유주의 시대 단기 경영으로 돌아갔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투자의 지평을 늘려야 한다."

15등이 1등 모인 반에 가면, 성적 떨어집니다

이 책은 <사다리 걷어차기>, <개혁의 덫>, <국가의 역할>,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등 장하준 교수가 2000년대 세계경제를 분석한 책들의 다이제스트 판으로 읽힌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저자의 분석은 더 설득력을 가진 듯 보인다. 간담회에서는 국내외 현안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지속적으로 '트리클 다운'효과를 비판해 왔다. 반면 최근 여당에서는 부자감세안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어떻게 보나?

"이 책 13장에서 썼지만, 신자유주의가 해온 부자감세안은 '자유시장주의적 스탈린주의'다. 구소련은 농업사회였기 때문에 투자 잉여물이 농촌에 있었다. 그때 소련 지배층은 잉여물을 어떻게든 끌어모아 제조업에 투자를 많이 해야 단기적으로 생활수준이 떨어지더라도 장기적으로 소득수준이 올라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집단농장을 만들어서 정부가 농업 잉여를 독점했다. 최근의 감세 논리가 그런 거다. 투자할 사람에게 돈을 몰아줘야 파이를 키워서 그 사람의 몫은 커질지 모르지만, 더 큰 조각을 먹는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런 정책을 쓴 이후에 도리어 투자와 성장이 떨어졌다. 증명된 바도 안 된 정책을 하면 안 된다."

최근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에 대해 언급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보편적 복지, 중요하다. 선별적 복지는 싸다. 진짜 필요한 사람만 대주니까. 근데 그렇게 되면 복지시스템은 돈 많은 사람에게 돈 빼앗아 돈 없는 사람한테 주는 것이 된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복지비 지출은 선진국 중 제일 낮지만 반감은 제일 크다. 수혜가 적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를 해야, 국민이 정책을 받아들이기 훨씬 쉽고 그에 대한 부작용도 적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를 이루려면 바뀔 게 많다. 세금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실현하려면 기본적으로 GDP대비 조세부담률이 40%까지 돼야 한다."

한미 FTA협상이 다시 이슈가 되고 있는데.

"내 바람은 미국이 재협상하자고 할 때 그 핑계로 안 했으면 좋겠는데, 워낙 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해서 아무리 말해도 바뀌진 않을 것 같다. 단기적으로 시장확대 영향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사업이 타격받을 거고 최첨단 산업을 개발하는 데 힘들다.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끼리 자유무역을 하면 득이 손해보다 많다. 문제는 수준 차이가 나는 나라 사이에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후진국이 손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5등하는 학생이 있는데 1등만 있는 반에 넣어두면 자극을 받아서 1등할 수도 있다. 근데 15등하는 학생을 한 반에 넣으면 성적이 더 떨어질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아직 15등이라고 본다. 20~30년 흘러서 수준이 비슷해진다면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 수준은 미국 등 선진국의 40%밖에 안 된다. 결코 5등짜리 나라가 아니다."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

"독자들이 경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방법을 배웠으면 한다. 여기서 탄탄하게 얘기한다고 하지만 다른 식으로 뒤집어 본다면 틀려 보이는 것도 있을 것이다. 철통 같은 사실이라 믿었던 것들도 모래성이 될 수 있다. 뭐든지 비판적으로 보고, 듣고 생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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