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 바라보는 사람들 이야기 가득

2010년 초겨울의 대한민국. 이곳에 발붙인 사람들은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저만의 안경은, 혹자를 1960년대 한국에 놓아두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2020년의 미국에, 1990년대의 일본에 머물게 하기도 한다.

이 사람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종종 호기심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여행작가 박준이다.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정주의 삶을 놓고 30대를 유랑하듯 살았다. 마흔이 다 되어 낸 전 세계 여행자들의 이야기 는 수많은 독자들 가슴에 불을 지피고 배낭을 꾸리게 했다.

단번에 베스트셀러 작가란 타이틀을 안겨준 이후 대략 일 년에 한 권의 여행 책을 펴냈다. 뉴요커들의 뜨거운 열정을 담아낸 <네 멋대로 행복해라>,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위해 떠난 이들의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 그리고 최근에 펴낸, 그가 유랑하는 시간 틈틈이 읽어낸 책들과 자신의 경험을 더해낸 <책 여행책>까지.

그의 책 속엔 2010년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 있다. 지금 내가 밥벌이하는 회사가, 지금의 답답한 내 처지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 삶은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홍익대 부근 한 카페에서 만난 박준은 <책 여행책>을 탈고하자마자 미얀마를 다녀왔다고 했다. 아침마다 미얀마 사람들이 낯선 외국인에게 '망갈라바'(안녕하세요)하며 수줍게 인사하던 모습은 2주간의 머무름을 더 짧게 느껴지게 했다. 그가 만난 미얀마 버간에선 여전히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고 미얀마 전역 어느 곳에서도 신용카드를 받지 않으며, 미얀마 사람들에겐 성(姓)이 없이 이름만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이동하기 전, 공항에서 만난 사람들이 기억에 남아요. 오가닉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샤키는 양곤에도 다섯 개의 레스토랑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는 자신을 레스토랑 체인의 대표가 아니라 '치즈 마스터'라고 소개했어요.

스위스에서 25년을 살았던 그는 자신의 가슴 속엔 젖소들이 살고 있다고 했어요. 당장 달러가 없던 저 대신에 방콕에서 택스(tax)를 대신 내준 20대 커플도 있었어요. 여행을 하다 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인연들도 생기고요."

여행의 마법일까, 여행자의 여유 때문일까. 아니 그곳엔 우리와는 다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많은 독자들이 그의 책에 공감했던 건, 타국의 멋진 풍경과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그 속에 우리와 다른 삶이 행복하게 숨 쉬고 있어서다. 부자여서 행복한 사람보다는, 가난하지만 환희로 가득 찬 사람들. 직접 보기 전까지 그에게도 이들은 책장의 글귀로만 존재했다.

그가 처음 여행을 꿈꾼 것은 스물두 살, 강석경의 <인도기행>을 읽고서였다. 그리고 5년이 지나 처음 떠난 여행지는 호주 시드니였다. 코코넛처럼 단단하게 지켜온 삶에 대한 규범이나 기준은 그곳에서 만난 여행자들 앞에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6개월 동안 여행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죠. 너무 놀라서 몇 번이고 물어봤어요. '취업 안 해?' '다시 돌아가면 해야지.' '돌아가면 취업할 수 있어?' '물론이지.' 이런 대화가 오갔어요."

새로운 세계를 본 그의 30대는 부유하는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질문하기 시작했고, 그 답을 찾는 데 10년이란 지난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늘 불안해하고 쉼 없는 유랑을 탓하며 살았지만 그 시간은 이제 지지 않는 태양처럼 그를 비춘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질문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요. 어떻게든 주류 사회에 속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뿐이죠. 한국은 정말 잘 사는 나라예요. 하지만 미얀마나 캄보디아처럼 어려운 나라 사람들이 짓는 환희에 찬 웃음은 볼 수가 없어요. 대기업 대표가 실적 때문에 자살을 하는, 물론 실적도 중요해요. 하지만 그 외의 삶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여행이 제게 가르쳐 준 겁니다."

그는 <책 여행책> 서문에 여행자로서만이 아니라 창조자로 살고 싶다고 적고 있는데, 다양한 삶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의 외연을 넓혀가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라고 했다.

나와는 다른 삶이 가하는 기분 좋은 충격, 그 때문에 기존과는 다른 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책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책 여행책>도 그 연장선에 있다.

"뉴욕의 예술가들은 밥벌이를 위해 접시 닦는 일을 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두 자아는 충돌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데, 이런 일을'하면서 힘들어 하죠. 저 역시 과거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메인 스트림이 아닌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에서 오히려 의외의 행복의 원천을 경험할 수 있게 됐죠. 제 책에 의미가 있다면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최근 그는 태국 정부에서 주는 태국우정상을 수상했다. 태국관광산업에 기여한 미디어, 항공사, 여행사 등에 태국 정부가 매년 수여하는데, 그는 미디어 부문 수상자가 되었다.

여권 속에 이미 200개가 넘는 스탬프가 찍혀 있지만 그는 한동안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아프리카와 남미 등 못 가본 곳이 아직도 많아 그들의 삶이 궁금하단다. 호기심은 늘 그를 유랑하게 한 원동력이었으니, 조만간 그는 또 다른 어딘가에서 이곳과는 다른 세상을 호흡하고 있지 않을까.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