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0개국서 판매, 글로벌 브랜드 목표 내년 뉴욕 진출

독립 디자이너, 글로벌, 웨어러블, 편집숍, 패션테이너, 콜라보레이션.

지금 한국의 패션 씬을 설명하는 이 단어들에 전부 한 다리씩을 걸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서른 세 살 동갑 디자이너 스티브 제이(정혁서)와 요니 피(배승연)는 부부다. 젊고 유쾌하고 스타일리시한 이 듀오 디자이너는 얼마 전 2011 S/S 서울패션위크에서 그들의 두 번째 쇼를 치렀다.

대중에게 보이기 위한 쇼가 아닌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PT쇼였음에도 불구하고 최강희, 티아라 등 연예인들과 유력 패션지의 편집장들, 그리고 밀라노 편집숍 텐꼬르소꼬모의 대표 카를로 쏘자니 등이 참석해 좁은 행사장은 북적거리는 인파로 터져 나갈 것 같았다.

TV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멋진 콧수염을 기른 스티브와 눈 밑에 아이 펜슬로 속눈썹을 가닥가닥 그린 요니의 비주얼은 그 자체로 가장 인상적인 브랜드의 아이콘이다.

현재 전 세계 10개 국에서 그들의 옷이 팔리고 있으며, 얼마 전 텐꼬르소꼬모와의 협업으로 만든 옷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대문과 온라인 패션몰에서 사정없이 베껴갔다. 명품 편집숍과 온라인 보세숍이 동시에 탐내는 신진 디자이너, 말 그대로 실용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갖춘 슈퍼 루키의 탄생인가?

2011 S/S 스티브 제이 & 요니 피
대학교 1학년 때 만나 함께 영국으로 유학, 그곳에서 브랜드를 론칭하고 현재까지 사이 좋게 옷을 만들고 있는 스티브 제이와 요니 피를 만났다. 그들은 서로를 '야, 요니야', '얘가 원래 이래요' 등으로 부르며 내내 친구처럼, 팀의 멤버처럼, 애인처럼 서로를 배려했다.

얼마 전 열린 PT쇼가 성황이었다. 초청쇼까지 합하면 서울패션위크에 세 번째 서는 셈인데 달라진 게 있나?

요즘 한국 패션의 글로벌라이즈를 위해 정부에서 노력을 많이 하는데,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구나 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초기에는 초청된 해외 바이어들이 그냥 구경만 하고 가다가 요즘에는 실제로 바잉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더라고요.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고요.

스티브와 요니를 찾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나?

지금 신세계 백화점 편집숍인 블루핏에 들어가 있는데 매입해가는 물량이 매 시즌 약 2배씩 늘고 있어요. 정말 기분 좋은 건 몇몇 아이템만 쏙쏙 골라가는 대신 아예 행거째로 사가는 바이어들이 늘었다는 거예요. 신뢰가 형성됐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매 시즌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번 만족을 하면 그 다음 컬렉션 수주량은 2배가 되고, 반대로 한번 잘 못 보이면 다음 시즌은 없죠.

영국은 특히 그런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신진 디자이너들이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나라가 아닌가.

맞아요. 바잉이 이루어지는 박람회나 전시회는 꼭 동대문의 대형 패션타운 같아요. 1000여 개의 브랜드들이 빽빽하게 몰려 고객의 선택을 기다리죠. 이 중에서 눈길이라도 한 번 받으려면 캐릭터가 어중간해서는 안돼요. 한 두 시즌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정글 속에서 살아남는 서바이벌 능력이 키워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 컬렉션에서는 유난히 캐릭터와 프린트가 많이 보였다. 박쥐, 도마뱀, 앵무새…다 어디서 따온 것들인가?

모두 저희가 직접 그리거나 컴퓨터로 만든 거예요. 캐릭터와 핸드 페인팅은 스티브&요니 브랜드의 시그너처이자 강점이에요. 수많은 경쟁 브랜드와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고요.

보통 이 캐릭터를 통해 처음 저희 브랜드를 인식하게 되고 점차 아우터 류로 관심이 이어지는 게 일반적인 순서예요. 아우터는 특별히 퀄리티에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브랜드의 콘셉트는 가볍고 유쾌하지만 퀄리티까지 가볍지는 않다는 걸 알리고 싶거든요.

테일러드 재킷은 전부 손바느질하고 안감을 위한 디자인 작업지가 따로 있을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이번 시즌에는 무톤 재킷(무스탕)과 코트 류의 반응이 상당히 좋아요. 얼마 전에는 길거리를 걷는데 저희 브랜드 무톤 재킷에서 소재만 더 싼 걸 사용한 카피 제품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무리 온라인 시장 속도가 빨라졌다지만 신인 디자이너의 옷을 복제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다.

한국의 이미테이션 시장이 발달했다고는 들었지만 이번에 제대로 실감한 거죠. 일단 저희 이름으로 홍보하는 온라인 숍에 대해서는 삭제를 요청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좋게 받아 들이고 있어요. 우리 벌써 상업성을 인정받은 거잖아? (웃음)

현재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미국 등 10여 개국에 입점돼 있다. 어느 나라에서 제일 반응이 좋은가.

아시아가 강세예요. 물량으로 따지면 일본과 홍콩이 가장 많아요. 재미있는 건 파리에서 열리는 트레이드 쇼에 일본인 바이어가 와서 저희 옷을 사간다는 거죠. 그들이 호평하는 부분은 재기 넘치는 유러피안 감성이에요. 나중에 한국 사람이 만든 옷이라는 걸 알면 놀라죠.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 디자이너들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좋아져서 고정관념이나 편견 같은 건 많이 없어진 편이에요.

보통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디자이너들은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한국적 감성을 나타내게 마련이고 외부의 평가도 거기에 집중한다. 그에 비해 스티브&요니에서는 그런 느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두 사람의 감성이 전형적인 한국의 그것과 달라서 그런가?

아…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요? (웃음) 저희 옷을 두고 한국적이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요. 그냥 저희는 해외에서 스티브&요니 옷을 보고 저게 컨템포러리 코리안의 감성이구나 라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옛 것만 한국적인 건 아니니까요.

아직도 신인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니지만 어느새 4년 차 브랜드다. 초기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건 뭐고 유지된 건 뭔가?

처음엔 그야말로 원시적인 옷을 만들었어요. 판매는 생각도 안하고 순전히 쇼를 위한 옷을 만들었고 쇼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벅차고 좋았어요. 어떤 시즌에는 모든 패브릭을 다 손으로 꼬아서 드레스를 만들었는데, 하나 완성하는 데 거의 2주씩 걸렸어요. 거의 아트 피스에 가까운 그 옷들을 두고 언론 쪽에서는 '신성이 나타났네' 하며 난리가 났지만 판매는 하나도 안 됐죠. 물론 주문이 들어오더라도 다시 만들 수 없는 옷들이었어요. (웃음) 그때에 비하면 많이 세련돼졌어요.

판매를 염두에 두면서 옷의 곳곳에 재미를 숨겨두는 방법을 깨우친 거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초기의 그런 시기들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부터 너무 판매만 생각하기보다는 하고 싶었던 걸 다 해보는 게 향후 브랜드 콘셉트를 확실하게 잡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스티브 제이&요니 피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저희의 목표는 글로벌 브랜드가 되는 거예요. 내년에는 뉴욕에 진출해요. 국가 프로젝트 중 하나인 컨셉 코리아에 선정돼서 가는 건데, 이 기회에 본격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의 거점을 마련할 생각이에요. 그래서 요즘에는 뉴욕 감성에 맞춰서 콘셉트를 살짝 바꿔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바라는 건 저희만의 캐릭터가 뉴욕에서 자리 잡았으면 하는 것.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것처럼 열심히 서바이빙(surviving)하면서 올라가려고 해요. 우리만의 감성을 지키고 부디 계속해서 즐기면서 일했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마지막 목표는 계속 옷을 만들면서 사는 거니까요.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