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앨범 예상 밖 호응… 음악 감독도

지난 9월 초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말로'가 랭크됐다. 소녀시대도 아닌, 재즈 보컬 말로가 어쩐 일로 네티즌들의 클릭 세례를 받은 것일까.

의문은 클릭 한 번으로 사그라졌다. 재즈 보컬 말로가 아닌, 곤파스 이후에 찾아온 태풍 9호 '말로'였으니까.

하지만 이건 어떤 전조였는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기 스페셜 앨범을 발매한 그녀는 곧 온라인 음반 사이트의 재즈 부문 1위를 꿰찼다. '동백 아가씨', '서울야곡', '하얀 나비', '목포의 눈물'과 같은 전통가요가 재즈적 감성으로 해석된, 의외롭고도 신선한 앨범이다.

서른 아홉 살의 재즈 보컬리스트가 1960~70년대의 트로트라니. 그 감성을 공유할 수 있을까 싶지만 색다른 편곡과 그녀의 허스키 보이스는 그 시대의 감성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까지 끌어안았다.

과도한 바이브레이션이나 꺾기, 트로트 리듬과 같이 예스러운 창법이 사라졌지만 당시의 전통가요가 가진 기품과 감성은 남았다.

"이전 앨범을 못 들어본 분들은 제가 트로트 가수인 줄 안다니까요." 농을 던지지만 예상을 넘어선 호응으로 들뜨고 행복한 기분은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사실 만들면서 반신반의했어요. 촌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원곡 변형은 최소화하면서 편곡을 하고 녹음해 보니까 결과물이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죠. 노래가 잘 빠져나온다 싶었는데, 앨범 내고 나니 주위 반응은 '왜 여태껏 안 했어?'라고 묻는 듯한 느낌이네요."

말로는 어린 시절, 트로트부터 이태리 가곡까지 고루 듣고 노래하기를 즐겼던 부모님 덕에 원곡보다는 부모님 목소리로 전통가요를 귀동냥해 왔다고 한다. 그녀가 처음 전통가요를 리메이크하기 시작한 건, '봄날은 간다'였다. 대학에서 물리학과를 나왔지만 가슴을 울리는 재즈선율을 따라 버클리 음대까지 가서 재즈를 배워왔다.

그러나 소속사는 1집 앨범을 가요로 내길 원했다. 재즈적 감성을 놓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사용한 건 일종의 트릭. 자신이 쓴 4곡은 전통가요를 재즈 스타일로 해석했다. 그렇게 새 옷을 입게 된 곡이 '봄날은 간다', '희망가', '이별의 종착역'이었다.

"제가 완전한 재즈곡을 쓸 수는 없었고, 한국어로 되어 있으면서도 재즈 느낌이 들 수 있는 소스를 어떻게 찾을까 고민했어요. 원래 있던 명곡을 재즈로 편곡해서 부르면 그게 재즈 스탠더드가 되는데, 재즈 형식을 발현시킬 수 있는 우리나라 말로 된 소스를 찾다 보니 전통가요였던 거죠. 지금도 외국곡을 가져와서 재즈 음반을 만들 것이 아니라면 여기서 소스를 얻을 수밖에 없어요."

말로의 라이브 무대에서 이들 곡은 종종 불렸다. 그때마다 관객의 반응은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반짝반짝'했다. 한번은 관객이 찾아와 전통가요만 모아서 앨범을 제작하면 상당수 구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팬들이 원한다면 한번 해 볼까?' 싶어 며칠밤 새워 편곡하고 이틀 만에 녹음을 마쳤다. 5집에 이어 1년 반 만에 발표한 앨범에 6집이 아닌 '스페셜 앨범'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다.

전곡 편곡과 프로듀싱을 하면서 고민하지 않았을 곡이 없겠지만 그 중에도 '고향초'와 '목포의 눈물'이 가장 어려웠고, 가장 신경 쓴 곡은 '서울 야곡'이라고 한다.

"'고향초'는 멜로디가 단순하면서도 신파적이에요. 잘못하면 토속적으로 변할 수 있죠. 가급적 토속적이지 않게 하다 보니 가장 재즈적인 음악이 됐어요. '목포의 눈물'은 기회가 되면 다시 편곡하고 싶은 곡이에요. 처음 편곡할 때는 아프로큐반 리듬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녹음하면서 보니까 리듬 위에서 어떻게 놀아야 할지 깨끗한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다른 곡은 모두 2절이지만 3절이나 되는 '서울 야곡'은 최대한 지루하지 않게 만들려고 했어요. 탱고는 고유의 리듬을 살려야 해서 변화 폭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원곡의 탱고보다는 탱고 느낌이 나는 보사노바로 편곡했습니다."

그녀는 오는 12일부터 열흘간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천변카바레>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지난해 하림이 음악감독을 맡았던 <천변살롱>을 잇는 천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29세에 요절한 가수 배호를 중심으로 1960~70년대의 클럽음악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연이다. 짧은 생애에도 300여 곡의 노래를 하고 '두메산골', '영시의 이별', '돌아가는 삼각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던 배호. 공연은 주크박스 뮤지컬처럼 스토리에 어울리는 배호의 히트곡을 배치하는 식이다.

말로는 음악감독과 더불어 배호를 흠모하는 보이시한 밴드마스터로 약간의 연기도 한다. 배역 이름은 자신의 본명 정수월에서 '정수'만 따왔다.

1998년 TV드라마 <단단한 놈>에 이어 연기는 이번이 두 번째. "누구한테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연기를 한다는 점이 끌렸어요. 대사는 거의 없지만요.(웃음) 진짜 카바레처럼 라이브 밴드가 무대 위에서 연주하면서 극이 진행되는 거라 저도 피아노를 치면서 밴드마스터 역을 맡는 거예요.

드럼, 베이스, 기타, 피아노, 색소폰으로 구성된 밴드를 이끌죠. 원곡을 거의 바꾸지 않았지만 약간의 편곡은 있어요. 당시엔 악기 편성이 빅밴드에 가까웠거든요."

앨범을 발표하고 그녀의 스케줄은 빽빽해졌다. 10월에 앨범 발매기념 단독공연을 마쳤고 곧 <천변카바레>를 끝내면 멀리 이스라엘로 날아가 11월 24일부터 4개 도시 순회공연을 한다. 한국 아티스트가 이스라엘에서 순회공연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 공연은 지난해 LIG아트홀에서 열린 말로의 콘서트를 본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본국에 추천하면서 성사됐다. 당시 공연을 본 대사는 "한국에서의 가장 큰 발견은 재즈 보컬 말로"라고 극찬했다. 말로의 공연을 시작으로 한류 바람이 그곳까지 미치지 않을까, 기대를 품어봄 직하다.

말로는 이스라엘에서 돌아오는 12월 초, 같은 소속사 뮤지션들-전제덕(하모니카), 민경인(피아노), 차은주(보컬), 박주원(기타)-과 함께 <파이브라이브> 콘서트를 이어간다.

늘 서로의 앨범과 공연에서 인터플레이 해오던 이들은 긴장감 넘치는 쫀득한 앙상블로 여러 차례 관객들을 매료시킨 바 있다. 내년 초까지의 일정이 숨가쁘다.

스페셜 앨범 <동백 아가씨>가 나온 이후 그녀의 목소리로 다시 들려달라며 추억의 곡들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스페셜 앨범의 부제로 붙여진 'K-Standards 시리즈'가 지속적으로 나올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지금껏 말로는 계획대로 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음악을 해왔을 뿐이니까. 정처 없이 떠나는 길, 그 위에 새겨진 그녀의 발자국은 이제껏 없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