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천호선 컬처리더인스티튜트 원장'아츠 앰버서더 아카데미' 통해… 국민의 문화 안목 국가경쟁력 높여

작가들의 국제적 활동 순위를 집계하는 세계적 갤러리 가이드인 '아트팩츠닷넷(http://www.artfacts.net)에 따르면 지난 1998년부터 지금까지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뒤를 잇고 있는 작가는 파블로 피카소로, 그만큼 워홀이 현대 미술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런 워홀의 작품이 한국에 대규모로 처음 전시된 것은 2006년 10월 서울 인사동의 문화공간 '쌈지길'에서다. 시대의 예술 흐름을 꿰뚫어 보고 뒤늦게나마 워홀전을 유치한 이는 당시 쌈지길 대표로 있던 천호선 컬처리더인스티튜트 원장이다.

"외국에서의 공직생활을 문화와 함께하면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의 문화의식 수준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죠. 그래서 국민의 문화수준을 높이자는 생각으로 현대미술의 상징인 앤디 워홀전을 유치했습니다."

8일 광화문 자택에서 만난 천호선 원장은 문화 전도사답게 문화가 국가, 사회, 개인을 가늠하는, 그리고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천 원장은 한국 문화계에 굵은 기록으로 남은 행사들을 성사시켰다. 1984년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인공위성을 이용한 거대한 TV쇼에 한국을 참여시켰고, 현대무용의 전설인 머스 커닝엄 무용단의 한국 공연을 이뤄냈다. 1993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이 개관할 때 백남준, 존 케이지 등 플럭서스(전위예술 운동) 작가들의 전시회를 유치한 것도 그다.

천 원장은 40년 가까이 문화의 중심과 언저리에 머물러 왔다. 1968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으로 공직에 입문한 뒤 문공부 문화예술국장,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등 문화정책 전문가로 35년간 일했다.

뉴욕총영사관 한국문화원 문정관에서부터 덴마크, 캐나다대사관 공보관까지 10여 년을 해외에서 근무하면서 백남준, 존 케이지, 플럭서스(Fluxus) 작가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를 통해 글로벌 문화의 흐름을 몸소 체험했다.

공직을 떠난 뒤엔 2004년 인사동에 쌈지길을 오픈했고, 제4회 세계도자비엔날레 총감독(2007년)과 한국벤처공예대학 학장(2009년)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문화은행의 문화교육 전문기관 '컬처리더인스티튜트'를 이끌면서 민간 문화예술대사를 양성하는 '아츠 앰배서더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문화 발전과 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이탈리아 정부 최고 권위의 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먼저 문화훈장을 수상하게 된 것을 축하하며 선정 배경을 들어봤다.

"2007년 갤러리 쌈지에서 이탈리아 사진작가 피에르파올로 페라리의 전시를 한국에 처음 개최하고, 2005년 제1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때 광주시청 앞에 이탈리아의 세계적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대형 디자인 오브제 '기원'을 설치하면서 교류를 게속했죠. 저의 문화은행이 이탈리아 관광청과 일하는 것도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천 원장은 1980~2000년대 국내 문화계 흐름에 비춰 상당히 앞서간 전시와 공연을 기획했다. 이에 대해 천 원장은 문화에 있어서'새로운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 문화의 중심인 뉴욕에서 세계 문화의 흐름을 보면서 '새로운 변화'를 찾는 게 문화의 본질이란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새 문화를 만들기보다는 옛 문화를 복원하거나 지키는데 치중했어요. 피아노를 깨부수며 기존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백남준을 만나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전통문화 보전도 필요하지만 현재를 알리는 것과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전통과 예술의 거리 인사동에 쌈지길을 구상한 것도 위와 같은 맥락이라는 게 천 원장의 설명이다.

"문화가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보고 동생((주)쌈지 전 사장 천호균)과 세군데 거점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미술은 홍대 쌈지스페이스, 공연은 대학로에, 전통문화에서 에센스를 뽑는 거점으로 인사동에 쌈지길을 만들기로 했죠."

결과적으로 공연장을 제외하고 쌈지길은 인사동의 신문화코드로 상당한 역할을 했고, 쌈지스페이스는 독보적인 창작공간으로 유수한 작가 발굴 및 지원으로 이후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전례가 됐다.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가인 이불, 최정화, 이형구, 김홍석을 비롯해 정연두, 고낙범, 박찬경, 양혜규, 플라잉시티, 함경아, 구동희, 조습 등이 쌈지스페이스 입주 작가로 국내외 미술행사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왔다

천 원장은 요즘 컬처리더인스티튜트의 수장으로 아츠 앰배서더 아카데미와 아츠 베이스드 트레이닝(Arts-based training)의 동력을 이끌어내는데 전력하면서 문화예술교육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의 직함인 '컬쳐리더인스티튜트'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했다.

"컬쳐리더인스티튜트는 문화인재를 양성하는 문화교육 전문기관입니다. 문화교육으로 국민의 문화의식이 높아져야 국가의 경쟁력도 증가할 수 있습니다. 문화가치를 창조, 융합, 창출하는 능력을 개발하고 문화인재 배출을 통한 국가의 문화력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각계각층 오피니언리더들을 민간 문화예술대사로 양성하는 아츠 앰배서더 아카데미는 지난 11월 2기를 수료시켰다. 문화(예술) 대사(외교관)인 이들의 역할과 비전은 무엇일까.

"21세기는 문화가 생산성의 질을 높여줌으로써 국가 경제의 기둥이 되는 시대입니다. 문화 기반이 없이는 사회와 기업의 생존마저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미래학자들은 2030년이 되면 세계문화의 중심이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권으로 온다고 말합니다. 로컬리즘이 무시된 글로벌리즘을 반성하고, 지역특유의 문화적 정체성에 기초한 세계화, 즉 글로컬리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하나의 인류공동체문화를 건설하게 된다는 전망인데 그 중심을 아시아가 끌고 나간다는 것이죠.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세계 최고의 문화예술적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우리 문화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세계문화를 선도하는 문화적 주역이 필요한데 아트 앰배서더가 그러한 역할을 해나가길 기대합니다."

천 원장은 1•2기 수료생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문화수준을 끌어올리는 대사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뉴욕에서 백남준, 홍혜경 등 우리문화예술을 빛내는 분들을 보면 그들이 진정한 외교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을 서포트하는 것도 외교관이라고 봐요. 아트 앰배서더의 경우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직접 예술가와 만나 소통을 하다보면 자신의 문화예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어요. 반대로 혼자 작업만 하던 예술가도 자신의 작품세계를 인정하고 알리는 서포트 그룹을 만들게 됩니다. 그렇게 서로 어우러지고 상생하는 서로의 서포터가 되는 거죠."

실제 천 원장은 백남준의 서포트가 되기도 했고, 세계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면서 문화에 대한 안목을 높였다고 한다.

문득 자택 한 켠에 백남준을 비롯 천 원장이 교류했던 존 케이지, 요셉보이스 등 플럭서스 작가들의 작품들이 보여 이들과의 인연을 물어봤다.

"모두 백남준씨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는데 뉴욕에 있을 때 본 백남준씨는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아티스트였어요. 그래서 한국 관련 전시나 행사에 초청하곤 했는데 연결이 잘 안됐어요. 그러던 중 머스커닝엄 댄스컴퍼니라고 1970년대 말부터 미국을 대표하는 무용단의 후원회장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문화원을 자주 들렀었요. 어느날 "소호에서 백남준 공연이 있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해 두말 않고 쫓아갔죠. 거기서 백남준씨를 소개받았고, 이후에 플럭서스 작가들도 만났어요."

천 원장은 1993년 이들 작가들의 전시를 처음 한국에 유치했고, 백남준 사후 1주기 기념전(2007년)을 쌈지길에서 열기도 했다.

천 원장은 요즘 체계를 가다듬고 있는 '아츠 베이스드 트레이닝'에 대해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츠 베이스드 트레이닝은 조직의 창조적 기회를 창출하고 신지식인 아트라티(artati)를 만드는 기업교육인데 이것이 효과를 내려면 기업의 교육문화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정해진 매뉴얼에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 위주의 교육이나 특정한 예술의 단편적인 요소의 프로그램,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단기적인 효과를 바라는 프로그램은 지양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조직과 교육을 이해하고 변화하는 프로그램, 다양한 장르를 융합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프로그램, 체계적인 연구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입니다."

천 원장의 40년 문화인생에 비춰 한국이 문화국가로 발전하는데 정부, 기업, 국민들에게 필요한 주문을 물으니 국민의 문화적 안목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부의 문화 지원이나 기업의 메세나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국민의 문화의식 수준을 높이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천 원장은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컬처리더인스티튜트의 역할에 막중한 책임감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컬처리더인스티튜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문화의식, 안목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교육이 중요합니다. 문화를 숨쉬게 하는 것은 사람이고,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은 교육에서 비롯됩니다. 문화교육으로 국민 개개인의 문화적 안목이 높아져야 국가 경쟁력도 향상될 수 있습니다. 21세기 경쟁력이 '문화외교'에 있는 만큼 한국이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는데 앞장서는 사람들을 배출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천호선 컬처리더인스티튜트 원장은…

1943년 생.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대통령비서실 외무담당 행정관, 주뉴욕총영사관 한국문화원 문정관, 문화공보부장관 비서실장, 주덴마크대사관 공보관, 문화공보부 문화예술국장, 주캐나다대사관 공보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인사동 쌈지길 대표, 제4회 세계도자비엔날레 총감독, ㈜옥션별 대표, 이사장, 한국벤처공예대학 학장, 컬처리더인스티튜트 원장(현). 의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