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최민규, 발상의 전환 통해 한국인 최초 영국 '올해의 디자인상'

'올해의 디자인상'(Brit Insurance Designs of the Year) 최종 후보는 여느 해만큼이나 쟁쟁했다. 세시간 충전해 한 시간 비행하는 획기적인 비행기도 있었고, 패션 천재 알렉산더 맥퀸(1969-2010) 역시 노미네이트되어 있었다.

이들 사이에서 갓 졸업한 디자이너의 졸업작품이 2010년의 최고 디자인상을 안게 될지는, 사실 본인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시상식장 옆 자리에 앉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던) '이브닝 스탠다드' 가 "네가 우승하면 어떨 것 같냐"고 물었지만 그는 "절대 그럴 리 없다"며 웃었을 뿐이다. 그 순간 단상에서 그의 이름이 불렸다.

디자이너 최민규(30). 한국인 최초로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디자인상을 수상한 그는 "로또 당첨이 이런 기분일까 싶다"며 얼떨떨한 속내를 밝혔다. 그가 만들어낸 디자인은 영국이 60여 년간 고수해오던 플러그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인 폴딩 플러그. 발이 세 개 달려 있고 가로 세로 5cm에 4cm의 두께를 가진 기존의 플러그를 불과 1cm의 두께로 줄인 디자인이다.

이는 플러그를 '접는다'는 생각의 전환으로 가능했다. 한국 플러그의 경우 여러 가지 크기가 사용자에 따라 선택 가능한 것과 달리 영국에서는 단 한가지 플러그만을 사용해야 했던 생활 속 불편함이 디자인의 계기가 됐다.

"영국의 플러그는 규격이 굉장히 까다롭게 적용되어 있어요. 핀이 세 개여야 하고, 그 핀과 케이블이 90도로 이루어져야 하죠. 스트럭쳐 자체가 어떤 식으로 감아도 돌출될 수밖에 없거든요. 때문에 모바일 제품의 어댑터라든지, 충전기라든지, 랩탑에 달린 플러그로 사용될 경우 부피 때문에 휴대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지요."

국내 대학 시각디자인과에서 1년간의 학업과 군복무까지 마친 그가 영국행을 택한 건 2001년 여름이었다. 애니메이터를 꿈꾸며 영국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던 그는 인터랙티브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학부를 마치고 취업하려던 그에게 교수는 RCA(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석사를 마칠 것을 권유했다. 추천을 받아 간 그곳에서 그는 제품 디자인으로 전공을 변경했다. 1지망 지원했던 인터랙티브 디자인과에서 떨어졌기 때문이지만 덕분에 산업 디자인에 빠져들게 됐다.

"심플한 오브젝트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할까요. 단순한 오브젝트에서 나오는 직관 같은 것들이요. 인터랙티브 디자인이라고 하면 룰 같은 것을 만들고 나와 개체가 소통하는 반면에, 제품 디자인은 제품의 라인이나 조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사람과 제품이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가령, 유리문의 손잡이가 세로 혹은 가로로 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사람들이 문을 잡아당길 것인지, 밀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처럼요."

그는 졸업 즈음, RCA와 임페리얼 칼리지 출신 친구들 3명과 함께 '메이드 인 마인드'라는 이름의 회사를 차렸다. 제품이 아닌, '생각'을 파는 회사라는 의미를 담았다. 네 명 중 두 명은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다른 한 명은 MBA를 전공해 비즈니스를 맡는다. 실제 디자이너는 최민규 씨뿐이다.

현재 그들은 폴딩 플러그 상용화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의도하지 않게 폴딩 플러그를 런칭하게 된 '메이드 인 마인드'의 향방은 이 제품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

"회사라고 하면 거창해 보여서, 전 그냥 스튜디오라고 불러요. 처음엔 이곳의 성격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고민했지만 자연스럽게 원 프로덕트 컴퍼니(one product company)가 됐어요. 지금은 폴딩 플러그를 상품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생산되고 수익이 생긴 후에 관련 제품군에 포커스를 맞출 것인가, 아니면 확장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 같아요."

현재 중국의 제조업체까지 선정된 폴딩 플러그는 올해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가장 마켓이 넓은 영국을 비롯해 아일랜드, 홍콩 등 10개국이 이 플러그를 사용할 수 있는 1차 대상 국가다. 이후에는 시장 잠재성이 풍부한 인도와 남아프리카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이전까지 디자인만 해오던 그는 폴딩 플러그로 콘셉트부터 제조에 이르는 과정을 아우르면서 시야가 한층 넓어졌다. 디자인을 하는 데는 그만큼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디자인 영역을 한정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디자인의 정의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만들죠. 디자이너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에서 한 디자이너가 프리젠테이션 중에 쓰레기 자동분리수거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쓰레기를 버리면 쓰레기통에 달린 센서가 깡통, 종이, 플라스틱을 자동으로 분리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전 그 제품이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리수거를 위해 엄청난 에너지와 기술이 들어가니까요. 한국을 보면 쓰레기 종량제로 분리배출이 잘 이루어지잖아요. 굳이 새 것을 만들지 않아도 룰을 적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런 것도 일종의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가장 좋은 문제 해결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일본의 한 디자이너는 '디자인하지 않는 것 역시 디자인의 한 방법'이라는 말을 통해 디자인에 대한 제한된 시각을 환기시킨 바 있다. 디자이너 최민규 역시,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화려한 외관과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기능을 첨가하는 것만이 디자인의 소임이 아님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