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호 시인-허윤진 문학평론가]하나의 장시로 이뤄진 시집 , '문예중앙 시선' 첫 테이프 끊어

창비시선, 문학과지성 시인선, 민음의 시. 문학출판사의 시집 브랜드 이름이다. 시집은 우리 문학계 담론의 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에, 시장성과 별개로 각 문학출판사들이 꾸준히 출간하는 분야다.

지난 주 문예중앙의 '문예중앙 시선'이 새로 출범(?)했다. 조연호의 <농경시>를 시작으로 여정, 강연호, 김승강 등의 시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같은 이름(문예중앙 시선집)으로 44권까지 발간했다가, 2008년 문예중앙 휴간과 함께 잠시 절판됐던 시집들도 하나둘 복간하기로 했다. 시선집 1권을 낸 과 이 시집에 해설을 쓴 를 함께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하나 고백한다. 조연호의 시는 현재 한국 시단에서 '미적 전위의 최전선'이란 평을 듣는다. 형식과 내용 모두 낯설고 새롭다. 일반 독자들이 그의 시를 한 번에 간파하기란,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을 때 어느 순간 매직아이처럼 눈에 들어오는 시가 그의 시다. 그러니 짧은 기간 그의 작품을 오롯이 읽어내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허윤진 문학평론가
는 그의 시집 4권 중 2권의 해설을 썼다. 우리 문단에서 흔한 일이 아니다. (문학계에서는 평론가가 한 작가에 대한 작가론 혹은 작품집 해설을 쓴 뒤 그 작가를 '떠나보내는 것'이 관례처럼 반복된다.)

이번 시집의 초고 1600매를 읽고 감상평과 조언을 해준 사람도 허윤진 평론가다. 그 조언을 '가이드라인' 삼아 600매로 다듬은 게 이번 시집<농경시>다. 인터뷰에서 은 "작가와 평론가가 함께 협업한 흔치 않은 사례"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 시인을 읽는 법

문학출판사가 시집 낸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문예중앙 시선이 주목받는 것은 (지금은 절판된 상태지만) 이전 문예중앙 시선을 통해 소개된 일군의 시인들 때문이다.

황병승, 김경주, 안현미 등 미래파 시인들의 첫 시집이 이 문패를 달고 출간됐다. 최문자, 하종오 등 중견 시인들의 작품집이 함께 출간됐지만, 이전 문예중앙 시선은 타 출판사 시집과 분명 색깔이 달랐다. 미적 형식이 새로운 시집이 많았다.

조연호 시인
새로 만든 '1호 시집' 역시 파격적 형식이 돋보인다. 조연호의 <농경시>는 단 하나의 장시(長詩)로 이뤄진 시집으로 지난해 출간한 그의 세 번째 시집 <천문>(天文)과 대구를 이룬다. 시인은 삼재(三才)중의 하나인 인간으로서, 하늘(天)과 땅(地)의 간극 속에서 두 세계를 두 권의 시집을 통해 잇고 있다.

이번 시집이 문예중앙 시선집 1호이지요? 허윤진 평론가가 문예중앙 편집위원이니까 여쭤볼게요. 출판사마다 작품을 보는 경향이 다른데, 구체적으로 어떤 시인, 어떤 작품을 시선집으로 출간할 계획인가요?

허윤진 "지금 젊고 주목할 만한 시인들의 원고가 여러 출판사에 묶여 있어요. 평자들 눈이 다 겹치기 때문에. 저희가 미학적 의미가 있는 시를 찾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을 듯한데, 기준은 자기 색깔이 확실하면서도 미학적 의미가 있는 시를 쓰는 시인들의 작품입니다. 또 기존에 발표한 시를 묶어 내는 게 아니라, 가능하면 편집위원이 수소문해서 새로운 원고를 받아서 출판할 수도 있고요. 기존의 방식 이외에 어떤 활로가 있을지 모색하는 중이에요."

의 시집을 1호로 낸 이유는 뭔가요?

"편집위원 3명이 모두 '이 시인이 첫 번째 얼굴을 만들어 줬으면'하고 동의한 시인이에요. 편집위원 모두 의 작품에 비평적으로 쭉 관심을 가져왔고, 각자 한 번 이상 글을 쓴 경험이 있었고요. 문예중앙의 얼굴이 되는 의미도 있겠지만, 한국문학계 전반으로 볼 때 독특한 시집 한 권을 낸다는 의미도 있었지요."

은 이 뒷얘기 들었나요?

조연호 "네. 그래서 굉장히 고생했어요. 허윤진 평론가가 없으면 이 책은 나올 수가 없었어요. 초고 1600매를 다 읽고 꼼꼼하게 줄치고, 장단점에 대해서 얘기해주었죠. 나름 '가이드'를 해 준거죠. 그걸 옆에 두고 참고로 수정했어요. 원론적인 말이지만, 평론가와 작가가 함께 창작한 매우 좋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해요."

1600매 초고와 다듬어진 지금의 시집 모양새가 어떻게 다른가요?

"초고는 소설에 가까웠어요. 시집에서 비유적 상징으로 드러나는 인물형이 초고에서는 소설 인물에 가깝게 움직였거든요. 산문시집으로 출판될 거라면 서술이나 인물이 다른 방식으로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압축된 언어, 내재적 율격을 가진 언어가 살아나길 원했거든요. 가이드라인은 아니고 제 감상평을 전해드렸는데, 퇴고 후에 살아남은(?) 문장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순서도 많이 바뀌었어요. 비율로 보면 90%정도가 바뀌었죠."

'한편의 장시'라고 하지만, 49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49개의 시로 발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음반에서 제목 붙이지 않고 'take1', 'take2'로 발표하듯 말이죠. 굳이 한편의 시로 발표한 이유가 있나요?

"49개를 나눠놓으면, 일단 시집이 더 두툼해졌겠죠.(웃음) 근데 그렇게 발표하면 각각 독립된 시로 읽혀요. 저는 그렇게 읽히기를 바라지 않거든요. 그리고 서사시는 세속화와 역사화를 통해 만들어지고 또 그 전통이 이어졌는데, 그렇다면 '현대에 와서 안 될 건 또 뭔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형태의 서사시는 가능하지 않을까?'생각으로 작업했어요."

무조건 아름다워야 해

사실 조연호의 시가 난해한 것은 내러티브가 명확하게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단어 혹은 문장과 부조화를 이루는 다른 단어, 문장을 연이어 배치함으로써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의 간극을 확대한다.

요컨대 그의 시는 서로 의미가 없는 언어들을 결합함으로써 거기에서 생겨나는 낯선 이미지를 만든다. 동양고전, 기독교, 과학 용어는 이 시인이 즐겨 사용하는 말들이다. 각종 한자어가 빈번히 등장하며 독특한 음악성을 만드는 것도 특징이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들. '사청(乍晴)후, 또 한번 썩은 잎이 되려는 계절이 지하를 자기에게로 항해하게 한다.'(22페이지) 사청은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잠깐 개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는 건가? 은 <문예중앙> 2010년 겨울호 대담에서 "시의 서사구조는 중요하지 않지만"이라고 전제한 후 <농경시>내용을 간추려 설명한 바 있다.

이 시집은 "어린 시절 거세, 할례당한 사람의 기억과 그가 '선생'과 그의 아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관계와 자신, 가족의 관계를 대비시키는 불투명한 이야기"(문예중앙 396페이지)라는 것.

앞서 이 시집이 세 번째 시집 <천문>과 대구를 이룬다고 소개했다. 하늘의 무늬(天文)를 쓴 <천문>이 '또 다른 방식의 우주는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심미적 탐구의 결과라면, 이번 시집은 땅에 엎드려 있는 사람이 '내재적 초월마저 불가능한 세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 시집이다.

권혁웅 평론가는 을 '시단의 박상륭'이라고 말하죠. 종교에서 작품 힌트를 얻는다는 점, 작가가 스스로 조합어를 만든다는 점, 결정적으로 굉장히 난해한 작품을 쓴다는 점(웃음) 등이 비슷한 점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분명 차이도 있죠. 우선 박상륭의 장편은 <잡설품>이지만, 조연호의 시집은 <농경시>잖아요. 전자가 '소설되기'에서 '경전되기'를 꿈꾼다면, 후자는 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박상륭 선생님과 저를 비교한 건 엄청난 영광이지만, 저는 거대한 비전을 갖고 작품을 쓴 적이 없어요. 저는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 문학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무엇을 볼 수 있나?'에 천착했을 뿐이죠. 박상륭 선생처럼 하나의 세계를 만들지는 못해요."

"은 다양한 분야를 시에서 아우르면서도 독단에 빠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시인이라는 걸 굉장히 명확하게 인식하기 때문이에요. 언어에 천착하는 자세가 있거든요. 이 시집은 표면적으로 거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이 시집의 가장 궁극적인 관심은 정확한 문장이에요. 자기 언어의 불안정성을 갱신하려는 의지가 이 시집을 좋은 시집으로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조연호의 시는 사실 굉장한 합리성에 기대어 있어요. 때문에 샤머니즘으로 넘어가지 않죠. 시집이 어떤 면에서는 논리적인 게임에 가까워요."

정리를 해주시니까 굉장히 명확해진 느낌이 드네요. 종교적인 관념성이라고 하나요? 그 점에서 박상륭 선생과 이 비슷하지만, 실제 두 작가는 굉장히 다른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저는 서양의 인식체계를 두 가지-철학과 기독교-라고 생각해요. 그 점에서 기독교를 종교가 아니라 인식체계의 하나로서 들여다보는 거죠. 철학처럼."

"표면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사유가 문학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이유로, 조연호의 시를 니체와 연결해서 읽는 사람도 많은데, 저는 그렇게 읽으면 오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니체가 가진 '증오의 감정'이 이 시집에는 없거든요. 사실 의 시를 비서정, 반서정의 대표주자인 듯 해석하지만, 의 시는 한번도 서정적이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어요."

"저는 처음부터 시의 서정성, 미적인 것을 포기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저의 시에 대한 명제는 딱 하나에요. 아름다움. 어떤 질감이 됐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 평생 글을 쓰는 내내 버리지 않을 거에요."

한 편에서는 '시가 너무 어렵다'는 평도 있지요. 시단에서 평가를 정리해주신다면?

"이 미학적으로 매력 있는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이 시를 즐기는 부류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충분히 즐길 수 없다는 두 부류로 나뉜 것 같아요.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중요한 시인일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칭찬 위주 인터뷰가 아니었나, 하는 우려도 살짝 되는데요. 아마 두 분의 문학적 코드가 잘 맞는데다 오랜 기간 신뢰가 쌓여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문학계를 보면 한 평론가가 한 작가의 작품론, 작가론을 쓰고 나서는 다시 쓰는 경우가 거의 없죠.

"서양의 예술사를 보면, 협업과정을 거치는 사례가 많잖아요. 작가와 비평가가 평생 함께 하는 관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모델이 흔치 않죠. 제 개인적인 이력에서, 글쓰기의 수준 혹은 시를 보는 안목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분기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의 두 번째 시집<저녁의 기원> 해설을 쓴 다음이었거든요. 이후에 제 비평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꼭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작가에요. 한 비평가의 비평 세계를 조형할 수 있는 그런 잠재력을 가진 시인이다, 저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해설이나 다른 방식으로 협업을 할 기회가 있다면 저도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