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91) 뮤지컬배우 최재림'남자의 자격' 유명세 타고… 비중있는 역 맡아

시청자의 모든 시선이 박칼린의 카리스마에 쏠려 있을 때,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남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때로는 가만히 손만 들어도 남자는 박칼린의 속이라도 들여다본 듯,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합창단원에게 대신 전달해줬다.

올해 나이 26세, 뮤지컬계의 실력자인 박칼린의 완전한 신임을 얻고 있는 이 어린 배우의 이름은 최재림이다.

원래 박칼린을 알고 있던 뮤지컬 마니아라면 이 배우의 대접에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음악감독 박칼린에게 이토록 전폭적인 인정을 받기란 일급배우들에게도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뮤지컬계에서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신인배우에게 이 같은 대접이라니. 시청자의 의문은 점차 최재림이라는 배우에 대한 호기심으로 옮겨갔다.

웃고 있을 때는 제 나이로 보이지만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표면 연령대를 일순간에 올려버리는 그는 신인이면서도 신인답지 않은 행보를 걷고 있다.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선택한 성악과는 노래 인생의 시작이었다. 뮤지컬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건 군대에서 만난 뮤지컬배우 후임 덕분. 이후 뮤지컬을 배우려고 뮤지컬 아카데미인 '킥 스튜디오'에 수강 오디션을 보러갔다가 운영자인 박칼린과 처음 만나게 된다.

뮤지컬배우 최재림의 첫 작품인 <렌트>도 이 인연에서 출발했다. 박칼린의 눈에 든 그는 <렌트> 이후 <헤어스프레이>에서 춤도 경험하며 본격적인 뮤지컬배우로서의 시작을 알렸다. 아직 졸업하지 않은 '학생배우'였던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알려졌듯이 <남자의 자격>을 통해서다.

단 두 줄뿐인 경력의 초짜 배우가 잠재력을 폭발시킨 것은 이즈음이다.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됐던 <남한산성>의 장소영 음악감독의 요청으로 가이드 곡을 노래해줬다가 곡을 들은 성남문화재단 측과 제작진의 호응으로 오디션을 보게 된 것. 박칼린에게 인정받은 노래 실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은 두 줄 경력의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으로 비중 있는 배역인 '정명수' 역을 거머쥐게 했다.

관노 출신으로 청나라에서 출세한 인물인 정명수는 조국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조국에 복수하려는 악역이다. 야비하며 악랄하지만 가슴 속에 맺힌 한도 있는 복합적인 악당인 정명수는 뮤지컬 경력이나 연기 경험이 부족한 그에게는 다소 버거워 보였다.

게다가 내면에 쌓인 분노를 표출하기에 최재림의 성격은 너무 밝고 정직했다. 하지만 연출가의 주문에 따라 혹독한 연습과정을 거친 끝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악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최재림만의 정명수가 완성됐고, 그의 배우 내공은 이로써 한 발짝 더 나아가게 됐다.

올 2월 졸업을 앞둔 그는 이제 전업 배우로서 험난한 뮤지컬계에 뛰어들게 된다. 여느 배우라면 살짝 걱정이 될 만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별로 염려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강인해 보이는 그의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받은 대중의 과분한 관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의 우직한 성품 때문이다.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은 모두 도전해보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히는 그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탄탄한 실력을 무기로 성큼성큼 자신의 페이스로 나아가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