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평론가 박평종]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다채로운 주제, 독자적 시선으로 현대 한국사진 지형 보여줘

가히 이미지 과잉생산의 시대다. 이제 카메라에 일상을 담아내는 일쯤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만큼 여운을 남기는 사진 찍기가 쉬워졌는가 하면, 섣불리 긍정을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엔 알게 모르게, 치열한 고민과 부딪힘 끝에 얻어낸 사진을 통해 감동을 전하는 젊은 작가들이 있다.

최근 미학자이자 사진평론가인 박평종 씨(43)가 <매혹하는 사진>(포토넷)을 펴냈다.

지난 2008년 9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사진전문지 포토넷에 연재한 '한국 현대사진의 새로운 탐색'을 묶어낸 것. 한국 사회의 현재를 들춘 구성수, 공간과 인간 행위 관계의 관찰을 다룬 권순관,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와 분열 양상을 드러내는 박진영, 문명의 야만성을 포착한 손승현, 한국 사회의 폭력과 야만을 좇은 노순택, 실내공간으로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주목한 신은경, 타고난 형질과 후천적 기질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윤정미 등 22명의 작가가 담겼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 다채로운 주제를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한 30~40대 초반 작가들에 대한 작가론. "같은 세대 작가로서 동료의식을 가지고" 써낸 글엔 참신하고 깊이 있는 평론가의 해석이 돋보인다.

작가가 해온 일련의 작업들과 함께 보기 좋게 편집된 글은 현대 한국사진의 지형을 보여준다. 당초 평론가가 예상한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가 상충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박 평론가는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니며, 그래야만 작품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자신의 태도를 견지했다.

<매혹하는 사진>의 서문에 보면 작가 선정에서 작업의 연속성과 주제의식의 일관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이 최선을 다하면 좋은 작품 하나씩은 할 수 있다고 본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서 반 이상은 기계의 몫이 됐다. 미술시장이 뉴욕으로 옮겨온 지 오래됐지만 그곳에서 주목받는 작가가 많이 생겨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베스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은 다르다. 지금 당장 보여주는 결과물보다 중요한 것은 지난 10년간 무엇을 얼마나 일관되게 해왔는가이다. 이 말은 곧 이 작가가 1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퀄리티를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기도 하다. 일관성과 연속성은 작가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선배 비평가들의 입장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

개인 취향도 없지 않을 테지만, 이들 외에 다른 기준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동료로서 10년 후에도 작업할 수 있나를 고려했다. 열심히 글을 썼는데, 5년 후에 작가가 사라져 버린다면 허무해질 거다. 당시 포토넷에서 연재할 때 별책부록으로 작가들의 포트폴리오처럼 제작하면서 적잖은 비용도 들어갔다. 얼마나 허망하겠나. 그래서 물론 작업 자체도 보았지만 작가들의 생존력을 봤다. 저 작가가 얼마나 악착같이 살아남을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고려됐다. 특히 손승현 작가는 고민을 많이 했다. 개인전을 하지 않은 작가여서 무리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가 점점 줄고 있는 시점에서 그의 작업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고 봤다."

지난해에는 <한국사진의 자생력>이라는 평론집을 냈다. 한국 작가에 특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방대한 질문일 수 있지만, 현대의 한국 사진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현재 이곳에 살면서,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작가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는 건 당연하다. 한국사진의 방법론을 보면 서양의 방식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의 근대가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어쩔 수 없지만 유형학이나 미장센처럼 몇 가지의 방법론에 한정되어 있다. 주제는 갈래를 나누기 어려울 만큼 다양화되었지만 그런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이 한정된다는 아쉬움이 있다. 한때는 그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 아닌 고민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작업은 문제의식이 온당한가가 더 중요하지, 여기에 무엇을 가져다 썼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매혹하는 사진>에서 22명의 작가를 '역사적 태도'와 '탈 역사적 태도'의 2개 파트로 나누어 구성했다.

"개인적으로 역사적 태도라는 것을 중요하게 본다. 그러나 그에 속하는 작가들이 30~40대 중에 의외로 많지는 않다. 역사적 태도와 탈 역사적 태도의 경계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역사성의 의미를 확장시켜 보면 22명 작가가 모두 포함될 수도 있다. 같은 한국 사회에서 작업하는 이들이니 이 사회에서 작업이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역사성의 의미를 축소해 두 파트로 나누었다."

우리 사회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문제의식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예술가가 능동적으로 사회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사진이 지금까지 사회변화에 결정적인 변화에 기여한 적은 단 한 번이다. 루이스 하인의 사진으로 미국에 아동노동 금지법이 제정된 일이다.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오만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박 평론가께서는 우리 사회의 어떤 현안에 관심을 두고 계신가.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다. 인권문제에 여러 가지 수위가 있겠지만 현재는 이민자 문제다. 유럽사회의 향후 10~20년 동안은 이민자 문제가 심각할 것이라는 말이 많다. 이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늘 이념 대립이 심각했고, 여전히 좌와 우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늘 진보와 보수의 결정적인 기준은 민족주의자냐 아니냐에 있다. 우리 사회의 고용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그 화살이 이민자에게 갈 날이 온다. 지금껏 서양 사회를 모델로 삼아 따라왔기 때문에 서양에서 어떤 문제로 고민해왔는지를 보면 우리의 미래도 보이기 마련이다."

비평가의 역할에는 작가와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는 부분도 있지만 앞으로의 작업 방향 제시도 포함되지 않나 싶다.

"기질 탓이 아닐까 싶지만 그런 방식은 비평이 작가들을 획일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온당하려면, 우리 사회와 문명사를 꿰뚫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할 텐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그런 제시가 폭력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