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경 미술 평론가, 인하대 명예교수 전 열고 당신에게 사진은 무엇인가 물어

성완경 인하대 명예교수는 세 대의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이건 콘트라스트가 강해서 책이나 신문 등 정보가 담긴 것들을 찍기 좋고, 이건 컬러감이 좋아서 회화적 표현에 좋죠. 이건 동영상 찍을 때 주로 써요." 주머니와 가방에서 줄줄이 그의 동지들이 꺼내졌다. 언제나 찍을 태세란 뜻이다.

디지털 카메라와 함께 한 세월이 10년이다. 그동안 사진을 찍고 컴퓨터에서 정리하는 것이 생활의 일부가 됐다. 아니, 스스로는 거의 중독 수준이라고 진단한다. "여기에 할애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웃음)"

성완경 교수와 디지털 카메라의 관계를 시간만으로 측정할 수는 없다. 그가 찍은 사진은 곧 그의 아카이브다. 일상의 궤적은 물론 감정과 생각까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내가 너무 셔터를 눌러대니까(웃음) 스스로도 왜 이런가, 사진이 나에게 도대체 뭔가 싶었죠. 전시를 위해 사진을 고르다 보니, 어쩌면 사진이 시각보다는 시간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존재를 지속하고 축적하기 위한 것 말이에요."

이런 '습성'이 성완경 교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찍고, 또 본다. 하지만 의식하지는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와 세상을 연결해준다는 광고 카피에 혹하면서도, 그게 진짜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못한다.

삼각지 액자가게, 2010
그래서 성완경 교수의 사진전 <사진은 나에게>가 문제다. 미술 평론가인 그가 자신의 사진을 솔직히 펼쳐놓은 이 과정은 개인의 기록일 뿐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에 중독된 사회적 습성에 대한 의식이기도 하다.

"엉덩이가 궁금해서" 찍었다는 그의 뒷모습 셀카 누드, 액자 가게 쇼윈도 안에 갇힌 리히텐슈타인의 복제품, 공사중인 주택가 골목길이 당신에게 사진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전시는 1월 25일까지 갤러리나우에서, 2월 13일까지 꿀에서 열린다.

1월 20일 성완경 교수를 만났다.

10년간 찍은 사진의 양이 엄청났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전시할 사진을 고르셨나요?

"저는 사진의 사용적 맥락에 관심이 있어요. 사진이 나에게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여러 행동과 시간이 떠올랐죠. 내 삶과 디지털 카메라와의 관계, 내가 주변을 보는 시선이 드러난 사진들을 골랐어요."

셀카 1, 2007
사진은 주로 어떤 범주로 정리해두시나요?

"보통은 날짜별로 나누어 놓지만, 장소나 특정 주제로 나누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최근 컴퓨터 운영 체제를 윈도우7로 바꾸었는데,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어요. 윈도우7은 검색 기능이 독특해서 사진 제목뿐 아니라 내용도 스캔하거든요. 예를 들면 '셀카'를 치면 내가 '셀카'라고 제목을 달아 놓은 사진뿐 아니라 나에 대한 신문기사를 찍은 사진까지 검색해 줘요. 새로운 분류 체계가 생긴 셈이죠."

디지털 카메라가 싫증 나거나 저항감이 든 적은 없으세요?

"저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쓴 시기는 컴퓨터에 익숙해진 시기와 일치해요. 둘이 얽혀서 저의 생활의 일부가 됐죠. 아직까지는 가능성을 보고 있어요. 테크놀로지의 매력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상태죠."

디지털 카메라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나 가치관에도 영향을 줬나요?

고속터미널역, 2008
"주변 환경에 대해, 내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 더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풍부한 감정을 갖게 됐어요.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 그려지는 세계가 저에게는 시각적일 뿐 아니라 촉각적이기도 해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개념을 체험하게 한달까요."

하지만 테크놀로지가 너무 빠르게 발전한다는 우려도 있는데요.

"저 역시 현기증이 나요. 테크놀로지의 속도가 인간의 속도를 앞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테크놀로지를 따라가진 않아요. 예를 들면 페이스북은 하지 않아요. 저에겐 힘들더라고요. 디지털 카메라는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주죠."

특별히 관심을 가지신 출사 장소가 있나요?

"요즘은 근대와 현대가 겹쳐 있는 장소들이 재미있어요. 예를 들면 제 작업실이 있는 문래동 근처요. 쇠락한 철공소 지역 옆에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낡은 뒷골목과 신식 커피전문점이 혼재되어 있죠."

이번 전시로 10년간의 디카 인생을 중간 점검한 셈인데, 다음 계획이 있나요?

"점점 영화에 관심이 생겨요. 디지털 카메라의 동영상 기능을 이용해 찍거나, 스틸 사진을 이어 붙여 만드는 영화 형식에 시도해보고 싶어요. 고다르 영화를 더 공부해볼까 해요. 포토샵도 제대로 배워야 하는데... 정년퇴임하니 시간도 많고 정신도 자유로워서 할 일이 무척 많아요.(웃음)"

도대체 사진이 교수님께 뭔가요?

"쾌락이고 유희죠. 제 친구인 미디어 아티스트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예술이 유희가 아니라면 나는 벌써 예술을 그만 뒀을 것이다." 저에겐 그게 디카에요."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