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예술의 전당 김장실 사장

사진=임재범 기자
올해로 23주년을 맞은 예술의전당에는 좀처럼 느낄 수 없던 활기가 돈다. '한번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직원들은 권위보다 친절로 관객을 맞고, '지금처럼만'의 적당주의가 아니라 거대한 청사진을 향해 달려보자는 에너지로 뭉쳤다.

신세계백화점을 통해 친절교육을 받은 직원들은 공기업 고객만족도 조사(기획재정부 주관)에서 지난 3년간 '미흡'에서 최고 점수인 '우수' 평가를 받아 더 신이 났다. 직원들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내년까지 예술의전당의 낡은 시설이 새 옷으로 갈아입거나 이전에 없던 중극장 규모의 콘서트홀이 개관하기도 한다. 오는 10월에는 600여 석의 클래식 전용 체임버홀이 생기고, 2012년 12월에는 토월극장이 1000여 석 규모의 중대형 극장으로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CJ 극장 간판을 달게 된다.

이를 위해 각각 IBK 기업은행에서 45억 원과 CJ에서 150억 원을 유치했다. 서예박물관과 주차시설도 올해 안에 정비를 시작한다. 지난해 말에는 롯데백화점에서 3억 5천만 원을 유치해 아이들을 위한 공간 '키즈라운지'도 오픈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순수예술분야에서 '클래식 한류'를 선도하겠다며 외부 기관과의 교류 협력 MOU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체결했다. 그중에 아시아ᆞ태평양 문화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중국 국가대극원, 일본 신국립극장과의 협력관계도 포함됐다.

예술의 전당 키즈라운지, 사진제공=예술의 전당
지난 2009년 12월에 부임한 김장실 예술의전당 사장이 지난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일군 성과다. 'Refresh! Seoul Arts Center'란 기치를 내건 3년 임기 동안의 청사진의 프로젝트는 노후화된 시설보수, 경영쇄신, 클래식 한류 선도다. 이들은 이미 완성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이다.

"예술의전당이 어떻게 시대적인 흐름을 반영하고 선도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우리의 눈짓, 손짓, 발짓, 그리고 말 하나가 새로운 예술을 만들고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대한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예술의전당의 수장, 김장실 사장을 만났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입니다. 국내에 다양한 아트센터, 문화공간이 존재하는데 예술의전당이 갖는 위상과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또 취임 후 시도한 공연이나 프로젝트는 무엇인지요?

예술의전당이 개관할 때는 비교할 곳이 없었지만 이제는 수준 있는 공연장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들과 차별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첫 번째가 올해로 12주년을 맞는 교향악 축제와 오페라 축제입니다.

제가 부임하면서 기획한 공연은 토요 콘서트, 명품 연극 시리즈, 대학 오페라 축제 등 세 가지입니다. 토요 휴무제가 시행되면서 주말의 시작이 금요일이 되었어요.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셋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토요 콘서트를 열고 있습니다. 12월부터 매진이 됐는데, 종전의 11시 콘서트의 주 관객이 주부였다면 지금은 연인과 부부가 손잡고 옵니다.

예술의 전당 토요콘서트, 사진제공=예술의 전당
기존 연극 중 완성도가 높은 공연을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리는 명품연극 시리즈는 지난해 처음으로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를 공연했습니다. 기존 예술의전당의 제작중심 프로그램을 '기획ᆞ초청 개념의 프로그램 시리즈로 바꿔 화제를 모은 작품을 다시 올리는 방식이지요. 올해 5월에는 <나는 너다>가 공연됩니다.

또 지난해 새로 만든 것이 대학 오페라 축제예요. 장차 프로 아티스트가 될 학생들에게 예술의전당 무대를 제공했는데, 서울대, 이화여대, 한예종 학생들이 공연해 반응이 좋았습니다. 올해도 세 개의 대학을 초청하는데요, 올해부터는 세계 유명 공연 기획자도 초빙해 학생들의 해외진출 발판도 마련하려고 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링컨센터나 영국의 바비칸센터, 일본 신국립극장 등과 비교해 예술의전당의 현 위치를 평가하신다면.

세계 일류 공연장과 겨룬다는 것은, 곧 이 무대에 세계 최고 예술가가 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이 무대에 설 수 있게 올해부터 독지가와 기업의 도움을 받아 아트펀드를 만들 생각입니다. 펀드가 쌓이면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모셔오기도 하고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인 공연이 한국에서 평이 좋으면 아트펀드를 통해 해외 진출도 할 생각입니다.

예술의전당이 품격 있는 공연, 전시로 신(新)한류의 본산이 되겠다고 취임 때 밝히셨는데요,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국가 이미지를 결정짓는 것은 많지만 그 중 문화가 한 나라의 매력도와 경쟁력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소프트 파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를 위해 우리 문화가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야 합니다. 대중문화나 영화, 드라마는 이미 십수년 전부터 한국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예술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요. 예술가들이 개인적으로 해외 진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이들을 서포트하는 작업과 기획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시아ㆍ태평양 시대에 맞춰 한ㆍ중ㆍ일 세 나라가 공동 기획, 공동 투어를 하거나 아트펀드를 통해 한국의 유명 아티스트들을 해외 투어하는 방식이 될 겁니다.

예술의전당이 예술의 랜드마크이자 시민이 찾는 문화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시설 확충과 함께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의전당은 과거 고급, 순수예술만을 향유하는 공간이었지만 음악분수 광장과 비타민스테이션으로 한 해 수백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대중화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저희도 소수의 전문가나 마니아만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가격부담이 적은 공연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열한 시 콘서트와 토요 콘서트가 모두 2만 원이죠. 그리고 기업의 지원을 받아 야외 공연장도 제대로 갖출 예정인데, 이곳은 대중들이 무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려고 합니다.

또 콘텐츠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예술공간이 가진 당위성입니다. 새로운 예술의 경향을 보이는 주목할 만한 작품들과 신인발굴한 공연을 30% 정도 배분을 하고 나머지는 최고의 아티스트들의 공연과 전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경제의 양극화 못지않게 문화의 양극화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예술의전당이 시민 문화의 향상, 문화 양극화 완화와 관련해 추진하고 있는 프로그램과 계획은 무엇인지요.

작년 한 해 낙도 어린이부터 서울 빈촌 거주자까지 천여 명의 문화소외 지역민들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과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올해는 좀 더 확대할 생각입니다. 저희는 문화햇살 사업이라고 하는데, 남촌 문화재단의 도움을 받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 음악영재 아카데미에서는 시각장애를 가진 유지민 양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두각을 나타내는 조성진 학생도 이곳을 나왔을 정도로 입학 경쟁도 치열하고 성과도 좋은 아카데미입니다.

능력이 탁월한 학생뿐 아니라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신체적 장애로 예술적 재능을 꽃피울 수 없는 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가려고 해요. 이 사회에 희망의 사각다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김장실 사장은 대중가요를 매개로 강연도 자주 하고, 출판도 하셨습니다. 그동안 예술의전당은 대중문화에 대한 문턱이 높았는데요.

그에 대해선 문화부 정책과 궤를 같이 합니다. 오페라극장에서는 오페라와 발레를, 콘서트홀은 클래식 음악을 올린다는 본래 공연장 설립 취지에 맞춘 거지요. 이 때문에 대중예술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대중음악에 공연장이 적합하지 않다는 점도 있습니다.

잔향이 2.0초여서 마이크를 사용하면 에코가 무척 심해지거든요. 하지만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어우러지는 공연은 예외적으로 허용이 됩니다. 그리고 야외 공연장에서는 매년 여름 대중음악 공연을 하고 있지요.

다문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예술의전당도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국경 없는 시대는 예술의전당을 비롯한 문화공간도 피할 수 없습니다. 상주 외국인이 130만 명에 이르고 관광객까지 포함하면 수백만 명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데요. 저희 홈페이지는 이미 중국, 영어, 일본어 페이지를 따로 구성했고 올해 불어와 에스파냐어로도 제작됩니다.

또 외부와의 소통기구도 운영 중인데, 그 안에 외국인 두 명이 있어요. 외국인 입장에서 좋은 의견을 많이 내주십니다. 파리에선 루브르 박물관과 퐁피두센터를 반드시 가보지 않습니까. 서울에 오면 예술의전당에 올 수 있게 지난해부터 한국관광공사와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주목할 공연을 소개해준다면.

좋은 공연이 무척 많습니다만 지난해부터 진행하는 3B시리즈에서 올해는 임헌정 지휘자가 이끄는 부천시향과 1년 동안 브람스 레퍼토리를 집중적으로 선보입니다. 지난해에는 김대진 지휘자가 베토벤을 연주했고 내년에는 김민 지휘자가 바흐를 연주합니다. 불멸의 작곡가들이 예술의전당에서 어떻게 부활하는지 와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는 10월 체임버홀 개관에 맞춰 한 달간 페스티벌을 진행합니다. 요즘 그 기획을 잡느라 정신없는데,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서니 많이 기대해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2011년 역점을 두고 추진할 프로젝트를 말씀하신다면.

21세기가 아시아ㆍ태평양 시대라고 하는데, 그러려면 세계적으로 호소력 있는 문화가 아시아에서 나와줘야 합니다. 유럽은 기독교와 그리스ㆍ로마의 역사적 배경으로 유럽만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지요. 아시아는 역사, 민족, 문화가 다양해서 문화적 통합을 이루려면 지난한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하지만 그 준비는 필요하지요.

우선적으로 한ㆍ중ㆍ일 세 나라의 대표 아트센터 간의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이미 중국 국가대극원, 일본 신국립극장과 교류 협력 MOU를 체결해 올해는 한ㆍ일 연극을, 한ㆍ중 수교 20주년인 내년에는 한ㆍ중 연극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공동기획을 통해 세계 투어도 할 수 있겠지요.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은 문화강국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대중문화가 인기를 얻기까지는 문화공보부 시절, 외국에 우리 영화나 드라마를 무료로 제공해 그들이 한국 문화에 익숙해진 것이 도움됐거든요. 돌밭에 씨를 뿌려본들 씨가 자랄 수 없지요. 돌 치우고, 밭을 다지는 작업이 공공예술기관의 몫이죠.


예술의전당 김장실 사장은…
1956년, 경남 남해 출생. 제23회 행정고시 출신. 1993년부터 문화부 근무를 시작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중앙도서관 등 주요 문화예술기관을 두루 거쳤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을 지냈다.



진행=박종진 편집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