펴낸 강준막 작가성은 일상적 행위… 이중적 태도가 문제… 여성도 주체적이어야

흔히 일본을 성(性)의 제국이라고 부르지만, 그 뒤를 바짝 좇는 성 대국에는 대한민국도 있다. 일본이 노골적으로 드러낸 성 문화라면 우리는 주로 음지에서 성 산업이 번성하고 있다.

지난해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 수준 대비 포르노산업 지출률 1위와 함께, 포르노사이트 접속률과 아동성매매 부문에서 1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더 문제인 것은 이 같은 '탄탄한' 성 인프라보다 늘 왜곡되고 죄악시된 채 유통되고 있는 성 문화다. 한국에서 섹스에 대한 관심은 기형적일 정도로 크지만, 이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은 언제나 터부시되고 있다.

억압된 욕망과 그에 따른 잘못된 발화는 종종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많은 사건들 중 상당수가 성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강준막 작가가 <재미있는 섹스사전>을 펴내기로 한 계기도 성에 대한 이런 '연령 초월', '세대 망라'의 거대한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재미있는 야구사전>과 <재미있는 축구사전> 등을 펴낸 그의 다음 계획은 원래 <재미있는 농구사전>이었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지인 독자'들의 즉각적인 의견 수렴 결과 다음 책은 '섹스사전'으로 급선회했다.

스포츠와 달리 섹스에 대한 항목 선정은 만만치 않았다. 혼자 구성해본 항목은 서른 개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강 작가는 보다 섬세한 항목 구성을 위해 술자리마다 사람들에게 '섹스'를 묻고, 인터넷을 뒤져 다양한 성 담론을 추리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주로 군대에서의 경험담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더군요. 아시겠지만 군대에서의 남자란 처절한 본능에 몸부림치는 한 마리 수컷일 뿐입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의 성 문화가 그렇듯이 사전에 싣기에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고 음담패설 수준에 그치는 것이 많아서 상당 부분을 제외시켰습니다."

보다 깊이 있는 구성을 위해 그는 서점에서 관련 도서 70권 정도를 사들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강 작가는 이중 천박한 음담패설을 제외하는 자기 검열을 거쳐 각 항목을 과학적, 사회학적, 인문학적 시선을 적절히 섞어 재구성했다.

비록 사전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저자는 철저히 객관적이기보다는 종종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왜곡되고 변질된 한국사회의 성 문화를 꼬집는 것이다.

그런 삐뚤어진 성 문화에는 성에 대한 이중성이 있다. "주변에 '원 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친구가 있는데 책을 선물했더니 책을 얼른 숨기더라고요. 선정적이라는 이유죠. 책 내용도 그렇듯이 섹스는 '성교'만이 아니라 성별이나 다양한 성 문화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은밀하고 부끄러운 것에 불과합니다. 제목을 '성 사전'이 아니라 일부러 '섹스사전'이라고 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그래서인지 강 작가는 글이나 대화에서도 '센' 단어들을 사용한다. 당당하고 검열 없는 건강한 성 담론을 위해서다. 이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의식적인 선언과 비슷하다.

연령과 학력을 막론하고 남녀 모두 이중적이고 보수적인 섹스관을 갖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성적 이데올로기에도 고루 닿는다. 가령 '아우성 논쟁'이라는 항목이 그렇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성은 아름다운 것이어야 했다.

섹스는 '사랑을 전제로 한 것'이어야 윤리적 정당성을 갖게 됐다. 강준막 작가는 여기서 문화평론가 김지룡의 말을 빌려 "성에 이데올로기를 부여하지 말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성은 '먹고 싸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단지 인간의 일상적 행위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강 작가는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사실로 섹스와 사랑의 관계에 대한 통계적 사실을 제시한다. "성적 욕구가 가장 왕성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의 남자들은 솔직히 사랑 없이 섹스가 가능한 동물이거든요.

이때의 여자는 '대개' 그렇지 않지만, 그런 여자들도 있고, 결혼 후 성에 눈을 뜬 후 종종 외도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때의 성은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즉 성과 사랑과 결혼이 일치해야만 한다는 것은 결국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다름없다는 거죠."

야구 이야기와 축구 이야기에 이어 섹스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강 작가의 행보는 언뜻 평범한 남자들의 관심사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가부장적인 사회 환경에서 직장 생활을 한 '평균적인 남자'로서 남성 중심의 편향적인 성 소비 행태를 수정해야 한다고 자성한다. 일례로 성매매 문제가 그렇다.

그는 성매매 여성들의 심각한 인권 유린을 걱정하면서도 음지로 숨어들어 더 비대해지고 활성화된 매춘 사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관한다.

이 같은 비관론에는 원고에는 있었지만 최종 발행본에서는 빠진 검사들의 성 접대 사건도 있었다. 섹스는 이제 단지 개인 간의 '하는' 문제를 넘어 정치, 경제,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원동력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성매매 특별법 시행 후 섹스의 문제로 야기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결과에는 근본적으로 연령과 관계없이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성에 대한 인식이 있다.

그래서 강 작가는 중고교 성교육에 대한 대대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금 초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이미 인터넷을 통해 볼 거 다 보고 알 거 다 아는 상황인데, 성교육 수준은 지난 세기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까.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성교육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스웨덴처럼 과학적으로 적나라한 영상과 현실을 반영한 구체적인 교육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하자고 주장한다.

또 무엇보다 그는 남성 중심의 편향된 성 관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성에 대한 이해와 함께 주체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책을 보여줬더니 주변 친구들도 처음에는 겸연쩍어 하지만 조금 읽어보더니 굉장히 흥미를 느끼더라고요. 이 책을 통해 여성 독자들도 당연하고 떳떳하게 성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