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민용근 감독장편 데뷔작 호평… '동'은 움직임, 아이, 겨울 등 중의적으로 사용

두 남녀가 있고, 이들은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그 사이의 시간은 5년. 카메라는 러닝타임 내내 집요하게 이들의 뒤를 따르고 눈을 들여다보며 5년의 공백을 메운다.

화려한 캐스팅과 스타감독, 거대한 제작비, 어느 것도 없지만 최근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는 단연 <혜화,동>이다. 다큐멘터리 PD 출신으로 이제껏 단편영화 작업을 해온 민용근 감독은 장편 데뷔작으로 평단과 관객의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영화는 유기견 구조를 하면서 살아가는 혜화 앞에 옛 남자친구 한수가 5년 만에 나타나 죽은 줄 알았던 자신들의 아이가 입양돼 살아있다고 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민 감독이 KBS 다큐멘터리 <현장르포 제3지대>의 조연출로 있을 때 취재했던 한 여자의 일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유기견을 구조하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 여자의 안타까운 눈물이 그의 시선에 포착됐다.

이런 섬세한 그의 시각은 영화에서 혜화라는 캐릭터에 그대로 담겨 있다. 영화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정서는 슬픔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과 철거촌이라는 공간도 이런 정서를 함께 구성한다. 인물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무표정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왠지 서글퍼 보이는 것은 섬세한 감정 표현을 중시하는 민 감독의 철학 때문이다.

"인물의 감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좋아하고 저도 그런 영화를 찍고 싶어요. 이번 작업도 관객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가 닿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극적인 사건이나 특별한 장치 없이 서서히 감정선을 고조시키는 전개방식 덕분에 영화의 전반부는 다소 차갑고 가라앉은 느낌이다. 이 때문에 민 감독은 배우들도 영화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난감해 한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묘하고 파편적인 감정이 바로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그래서 민 감독 역시 <혜화, 동>을 '혜화를 따라가는 영화'라고 두루뭉술하게 설명한다.

"사랑하고, 버려지고, 다시 상대를 보듬는 과정까지, 혜화의 마음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로 보면 가장 가까울 것 같아요. 단순히 사랑과 이별이랄지 상처를 극복해가는 과정이라고 하면 이 이야기를 다 담아낼 수 없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민 감독은 마치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사람의 감정에 대한 통찰을 제목에도 반영했다. <혜화, 동>의 '동'은 혜화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동(動)과 아이를 가리키는 동(童), 겨울을 의미하는 동(冬) 등 중의적인 기능을 한다. 이는 그대로 이 영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해주는 카피라고 할 수 있다.

첫 장편에서 신인으로서 드문 완성도를 보여준 민 감독은 다음 작품에서는 좀 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자신이 금세 첨언하듯 '한 개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큰 이야기에 닿는' 전개 방식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영화철학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유난히 큰 요즘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듯하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