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배순훈 관장]전시 패러다임 변화, 친근한 미술관으로 업그레이드과천 수장고 리모델링 통해 작은 미술관 지원에 앞장

최근 1~2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은 건립 이래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옛 국군기무사령부 터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지상 3층, 지하 3층 규모로 지어지고 있다.

9개의 전시관이 1/3가량을 차지하는 서울관의 건물 규모만 총 3만 8200㎥에 이른다. 서울관이 완공되는 내년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본관과 덕수궁 미술관, 서울관 등 3개의 전시관을 갖게 되며 전시장 규모도 두 배 가량 확장된다.

서울관 건립과 더불어 내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특수법인으로 전환되는 해이기도 하다. 자율권과 책임 운영을 강화해 관료적 운영 체계에 유연성을 더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공익성 상실과 민간자본 유입에 따른 상업화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그러나 미술관 측은 운영예산은 대부분 국고가 차지해 공익성은 지금처럼 유지되리라고 설명한다. 내년 특수법인으로 전환되면 2016년까지 현재 246억 원의 운영예산은 3배 수준으로 늘어난다. 미술관 자체 수입과 작품 구입비 역시 3~7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슈는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신수장고를 42년 만에 개방하는 것이다. 6700여 점의 작품이 보관된 9개의 수장고 중 6개가 리모델링을 마쳤다. 4중의 첨단 보안시스템으로 방범기능을 강화하고 공간도 30%가량 늘려 1만여 점의 미술품 보관이 가능해졌다. 베일에 싸여 있던 수장고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미술 관련 전문가 그룹을 대상으로 우선 개방한다는 방침이다.

이들 변화를 진두지휘하는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배순훈 관장이다. 대학교수이자 기업 CEO,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두루 거쳤지만 비(非 ) 미술계 출신의 '파격적' 인사로 주목을 받았다. 새로운 변화를 맞으며 어느덧 임기 3년 중 2년을 보낸 배순훈 관장을, 2월 초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본관에서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하신 지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취임 후 가장 역점을 두었던 부분과 성과를 말씀하신다면.

과거 20년 동안 세계적으로 미술관이 10배 이상, 관람객은 100배 이상 늘었습니다. 경제수준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예술의 다른 분야보다도 미술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지요. 그중에서도 중국의 미술시장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한국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일환으로 전시 스페이스를 확대하고 동시에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지난 2년간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2012년 말에 완공이 되는데, 운영은 건립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지금보다 운영예산이 2~3배 증가하고 현재 인원이 100명이어서 300명까지 늘려야 하지만 200명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경쟁력 강화에 힘쓴 것과 동시에 법인화를 서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지난 2년간 무척 바빴습니다. 임기 안에 모두 끝내지 못할 프로젝트지만 기반을 잡으려면 향후 1년도 무척 바쁠 듯합니다.

내년 서울관이 들어서게 되면 국립현대미술관 본관, 덕수궁미술관과 함께 세 전시관의 운영에 변화가 예상됩니다. 특히 서울관이 어떤 아이덴티티를 갖게 될 것인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술관은 전시와 수장, 교육의 기능을 갖습니다. 이 역할을 바탕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어떤 고객서비스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드리면, 서울관은 기본적으로 전시 스페이스가 될 겁니다.

위치상 관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든 쉽게 갈 수 있는 친근한 미술관이 될 텐데요, 그런 경향의 전시를 하려고 합니다. 컨템포러리 아트냐, 모던 아트냐 하는 미술사적인 분류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전시가 되겠지요. 최근에 한 갤러리에서 장욱진 회고전이 열리는데, 우리는 전시장 규모가 크니까 대규모로 그런 작가의 전시도 해보려고 합니다.

현재 짓고 있는 서울관은 전시공간이 9개나 있는 복잡한 구조입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가장 유연한 공간인 화이트 큐브 형태로 짓고 있지요. 서울관을 설계한 건축가 민현준(43ㆍ홍익대 건축학과) 교수에 대해 외국 건축가들이 '21세기 미술관은 이래야 한다'는 심사평을 남겼습니다. 세계에서 굉장히 유니크한 미술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세계 예술의 큰 변화는 융복합인데, 그 부분을 소화할 수 있도록 서울관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을 동원한 예술작품 감상 기능을 서울관이 갖추게 됩니다.

서울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개관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관장께서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를 현재와 연결하는 전시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인 개관전 계획이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백남준 전시는 올해 9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내년에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합니다. 그보다 큰 규모로 백남준 회고전을 한국에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창기 그의 작품은 일본 기술력으로 만들어졌지만 후기에는 한국 기술력이 바탕이 됐거든요.

지금은 한국의 기술이나 네트워크가 더욱 향상됐으니 '굿모닝 오웰' 같은 작품을 하면 좋겠지요. 하지만 이는 여러 전시 구상 아이디어 중의 하나지요. 중국이나 일본과도 다른 한국의 문화, 한국의 기술을 동원한 한국적 특성에 맞는 전시를 모색하며 준비 중입니다.

서울관이 국립현대미술관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 보는데, 서울관, 덕수궁, 과천 본관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는지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본관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반면 무척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세계 미술관 중엔 도심에서 떨어진 미술관이 많고 그 때문에 관람객들이 찾아오기도 하는데요, 이런 곳은 잠깐 들렀다 가는 게 아니라 와서 온종일 머무는 미술관이지요.

서울관이 개관하면 연간 200만 이상의 관람객을 예상합니다. 하루에 7000~8000명 수준이지요. 도심의 미술관은 교통의 편의가 있지만 다소 복잡하다면, 과천 본관은 미술 애호가들이 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기회를 줄 수 있을 겁니다.

스위스 바젤에 있는 샤울라거는 예술 애호가들이 고급 취향을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이지요. 미리 미술 애호가들이 그룹으로 예약하고 오면 그때마다 작품을 꺼내어 전시하는 형태입니다. 대중적인 전시관은 아니지만 과천 본관도 이 같은 형태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일부 스페이스는 바로 옆이 어린이들이 많이 오는 놀이동산이기 때문에 어린이 미술관도 개관했습니다. 어린이 미술관은 손으로 만질 수 있어야 하지요. 지금도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있습니다.

덕수궁 미술관은 100년이나 된 건물이라 많이 낡았습니다. 안전이나 조명, 공기정화, 온도, 습도 등의 요건이 적합하지 않습니다. 업그레이드가 필요하지요. 스페이스가 크지 않아서 중소규모의 전문미술관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어요. 서울관 건립이 끝나면 진행할 예정인데, 컨셉츄얼 설계는 이미 진행 중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 대표 미술관으로서 자체 경쟁력을 갖추는 것과 함께 전체 공공미술관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책임도 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우리나라에 200여 개의 미술관이 있습니다. 앞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본관과 분관에 인프라가 형성돼서 작은 미술관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해야겠지요. 과천 본관이 교육, 수장, 기획 기능을 갖추고 있어지원 역할을 할 예정입니다.

지난 2년간 수장고를 열어 외부 미술관에 소장품을 적극적으로 대여해 왔어요. 빌려 가는 미술관에서 운반비와 보험료를 부담하지만 나머지는 저희가 부담했지요. 이런 서비스를 통해 국내 미술관 현황을 파악 중입니다.

무엇을 도와줘야 좋은 전시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우리가 전시 기획도 도와줄 수 있고, 작품을 수집하는 것이나 개인이 소장한 작품을 빌리는 것도 주선할 수 있지요.

교육이나 문화행사도 서포트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그런 역할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인원과 예산이 적어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지만 법인화되면서 예산이 3배 이상 늘면 지원활동도 더욱 활성화될 거라 봅니다.

내년에 특수법인이 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달라집니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지금처럼 일 년 단위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집행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술전시는 몇 년 전부터 기획이 이루어지는데 일 년 안에 진행하려니 졸속으로 진행되는 문제가 있어요. 미술관이 책임운영을 하라는 요구가 있지만, 그러려면 예산권과 인사권이 주어져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문화부에서 관할했거든요. 법인화는 이에 대한 권리를 주고 미술관 특성에 맞게 운영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일각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법인화되면 국립미술관 본연의 공공성이 훼손되고 상업 전시가 많아질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직원들의 신분 변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미술관에 오는 관객들이 기대하는 수준이 있습니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곧 상업화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폄하할 일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미술관에 평생 한 번 올까 하는 분들이 그 때문에 미술관을 찾고 있거든요. 관람객들의 수준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일본 모리미술관은 백화점 위에 있어서 상업적 냄새를 풍기지만 결코 전시기획에 있어서 예술성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현대예술은 이미 사람 생활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생활과 가깝다고 해서 상업적이라고 할 수 없는 거지요. 그 같은 우려는 기우라는 생각입니다.

직원들은 그동안 정부 인사체계가 고스란히 내려와서 승진 기회가 적었습니다. 더 이상 올라갈 직급이 없어 입사 때와 같은 직급으로 퇴직했거든요. 행정직은 다른 기관으로 옮겨가 승진을 하는 형식이어서 고급인력이 있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이제는 그런 부분이 해소될 것이고, 구성원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내외 연수를 진행하고 해외의 전시기획자도 초빙해 협업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주목할 만한 전시를 꼽는다면.

올해는 해외교환 전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5월부터 9월까지 미국의 휘트니 미술관과 공동주최로 20세기 미국 미술을 재조명하고, 7월부터 10월까지 프랑스 퐁피두센터 등과 협력해 프랑스의 현대미술을 소개합니다.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금융센터가 런던으로 이동하는데 동시에 미술 시장까지 옮겨가고 있거든요. 이 때문에 각 나라에선 경쟁적으로 자국의 미술 찾기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한국과 호주 수교 50주년을 맞아 대규모 교환 전시도 호주에서 6월부터 8월까지, 한국에서는 11월부터 내년 2월까지 이어집니다.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1943년 서울 생. 경기고,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대학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를 거쳐 대우엔지니어링 부사장, 대우조선 부사장, 대우자동차부품 대표이사 사장, 대우전자 사장 및 회장, 리눅스원 회장, 미래온라인 대표이사 회장 등 역임했다.
이어 정보통신부 장관(1998년 3~12월), 한국과학기술원 부총장 겸 경영대학원장(2006~2009년)을 지냈다. 2009년 2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진행=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