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숨 '간과 쓸개' 출간]세 번째 소설집에 기존 비현실적 이미지와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 선보여

인터넷, 스마트폰, 기타 등등의 보고 들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아직도 책을 사고 읽고 쓰는 사람들이 있소. 이 변사, 이 인구가 줄어들망정 없어지진 않을 거라 확신하는 건 책 쓰는 사람들이 악착같이 제가 쓴 책보다 몇 백배의 책을 읽기 때문. 고로 그 수요는 언제나 공급을 넘는다는 확신 때문. 온갖 잡학을 발판으로 책을 써대는 움베르토 에코는 그 백과사전적 지식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하는데, 또 한편으로 이런 말을 했다지요?

"인터넷에는 내가 필요한 지식이 없다."

왈, 대세를 따라가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 그 대세를 만든 원동력은 기본기에서 나온다는 것.

다른 얘기 좀 해볼까요? 기발한 상상력, 환상성,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이는 책, 아니 소설 좀 본다는 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최근 국내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 경향을 뜻하는 말이오. 소설도 예술의 일종이고, 고로 자꾸 새로운 것에 의미부여하는 성정이 있소. 예컨대 60년대 김승옥이 '인간은 개인이다'라며 전설이 됐던 것처럼. 90년대 윤대녕이 '인간은 은어다'고 외치며 주목받은 것처럼.

물론 이런 범주화가 과하다고 생각할 때도 꽤 있소. 이를테면 최근 '환상성' 같은 말로 수식할 수 있는, 그러니까 대세에 있는 작가들은 제 또래 같은 역량의 작가보다 더 주목받기도 한 것이 사실. 그러니 궁금합디다. 이 작가들, 기본기는 있으면서 서사파괴니,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니 이런 재주를 부리는 걸까?

그러던 차에 이번 주 반가운 책 한 권을 받았소. 김숨의 세 번째 소설집 <간과 쓸개>. 이 책이 말합디다.

"암요, 할 줄 알고말고요. 특기란에 추상화라고 쓰지만 데생은 더 잘 해요."

그 데생 솜씨, 구경 해볼까?

'간과 쓸개'는 이 소설집 맨 앞에 실린 단편 소설 제목이오. 화자인 노인은 간암 환자로 자식 넷을 모두 출가시키고 혼자 살고 있소. 위로 나이 차가 한참 나는 누님이 있는데 누님 역시 담낭관에 생긴 담석으로 병들어 누운 상황. 어느날 수도 계량기의 물속에 가득 담긴 썩은 귀뚜라미 무리를 본 후로, 그에게 자꾸 어릴 적 누님과 함께 본 검푸른 저수지가 불쑥불쑥 떠오르는데, 이는 담낭관 병으로 고생하는 누님의 쓸개즙이 떠오르기 때문. 또 이 물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기미처럼 느껴지기 때문. 피차 오늘 내일 죽음을 앞둔 이 오누이는 매번 양쪽 사정으로 만남이 어긋나오.

이렇듯 이 작가는 사물의 이미지를 자기 방식으로 그려내고 그 이미지를 여러 장 겹쳐 이야기로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하오. 이전에 쓴 소설집도 <투견>, <침대> 등 이야기의 밑천 되는 사물을 대놓고 고백한 형식. 그 밑천을 이미지로 만들고, 그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를 부르며 이야기를 풀어가오. 작가가 말합디다.

"저는 제가 본 풍경 중에 한 장면이 무의식 중에 저장되는 것 같아요. 단편 '모일, 저녁'은 아버지가 전어를 굽는 장면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것도 전어철에 횟집을 지나가다 본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쓴 이야기예요. 횟집 아저씨가 뭘 굽고 있는데, 가만 보니까 전어 대가리만 있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강렬했어요."

헌데 이전 두 권의 소설집이 이질적인 재료를 충돌시키며 이야기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그리는 데 신경 썼다면, 이번 소설집의 절반 가량은 표제작처럼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소. 특히 최근 발표작 중에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은데, 작가가 말한 '모일, 저녁'은 그 전환점인 작품이오.

모월 모일, 고향을 찾게 된 '나'에게 아버지는 전어를 구워 저녁을 대접하려 하오. 연탄불에 전어를 굽는 동안 아버지는 장어잡이로 생계를 잇고 있는 근황을 전하오. 아버지는 전어를 굽느라 내가 사온 롤케이크와 우유는 쳐다보지도 않고 하루에 백 마리씩 장어를 잡는다는 둥, 오늘을 꼭 상우 삼촌을 장어식당에 데려가야 한다는 둥 제 할 말만 열심히 늘어놓소. 어머니는 그동안 밥을 짓고, 가지를 볶고, 꽈리고추와 오이를 무치고, 된장찌개를 끓이다, 김치부침개를 부쳐 밥상 차리기도 전에 부침개를 들고 뜯기 시작하오. 밥상을 차린 나는 전어를 담으러 연탄불 앞으로 가오. 마침맞게 구워졌다는 전어는 대가리 다섯 개만 남았소.

갑자기 시클롭스키(Shklovsky, V.)의 명언이 떠오르지 않소?

'낯설게 하기'라는 것

이 기괴하고 낯선 이미지가 이 작가 추상화를 관통하는 지점인데, 앞서 말한 것처럼 이전 소설들이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로 점철됐다면, 비교적 최근 발표한 소설들은 현실에서도 능히 만들어질 이미지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소. 이 소설집 한 권에 모두 담겨 있으니, 전자는 '흑문조', '북쪽 방' 같은 2007년 전후 쓰인 단편에서, 후자는 '모일, 저녁', '간과 쓸개'처럼 2008년 이후 쓰인 작품에서 볼 수 있소.

"소설 쓰는 방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어떤 풍경이나 이미지에서 시작하는 거죠. 요즘에는 그 방식을 버리지 않으면서 새로운 방식을 함께 쓰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오가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소설로 끌어 오는 거죠."

현실에 발붙였다는 최근작들은 유독 죽음에 대한 사유가 많소. 왜 그럴까? 작가 왈, 젊은이보다는 노인들과 대화하길 즐긴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대화는 연극 대사를 연상케 할 만큼 문어체로 쓰였는데, 이 말투 역시 서울 토박이 노인들의 말투를 따라 쓴 것이라고.

언제 노인들과 이야기를 다 했을까? 점심 먹고 집 근처 불광천을 걸으면서. 출판사 편집자 생활을 오래했던 작가는 2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됐소. 대학 졸업 무렵인 1997년 등단해 이제까지 소설집 3권, 장편소설 4권을 냈으니 성실함으로 친다면 동세대 작가 중 으뜸이오. 헌데 작가로서 자의식은 책을 3권쯤을 낸 후에 들었다고 고백하오.

"등단하고도 5~6년은 제가 소설가란 말을 잘 못했던 것 같은데, 왜냐면 '내가 그만한 자격이 되나?', '부끄럽지 않은 소설을 쓰고 있나?' 생각했거든요. '소설쓰기가 내 업이다.' 받아들이면서 소설가로 전업했어요."

제가 쓴 책보다 수백, 수천 배 책을 읽으니 작품 보는 눈은 점점 높아지고, 고로 제 작품 단점이 잘 보이고, 결벽증이 생길 수밖에.

"전 이야기 쓰는 게 고통스럽다기 보다는 즐겁고 재미있는데, 그래도 봄에 발표한 작품보다 여름에 발표한 소설이 더 좋아야 하잖아요. 그런 긴장감은 있어요. 책을 낼 때 이 책이 그 전 책보다 발전했는가를 걱정하죠."

허나 보고 듣고 놀거리가 넘치는 이 시대에 전업 작가의 생활이 불안할 수밖에 없을 터, 끝으로 작가가 소박한 바람을 말했소.

"대중적인 인기를 바라지 않아요. 제 작품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소박하게 바라는 건 기본 독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1~2년에 한번씩은 출판사가 신경 써서 책을 내줄 수 있는 정도의 독자. 1만에서 2만 정도. 제 작품이 읽히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