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전위적ㆍ실험적 측면 유지… 전시 관련 퍼포먼스 워크숍 등 강화

올해 초, 비디오 아트 창시자 백남준(1932~2006)의 이름이 또 한번 다수의 언론 매체를 장식했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5주기를 맞았기 때문인데, 추모식이 열린 것은 물론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의 회고록이 출판되었고, 또 다른 곳에선 그를 추모하는 굿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뜨거운 문화 아이콘으로 살아 있다. 비디오 아트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회화, 조각, 퍼포먼스, 심지어 작곡에 이르는 방대한 장르를 아우르며 유의미한 발자취를 남겼던 백남준. 덕분에 지금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백남준에서 파생된 문화 콘텐츠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그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이 연구될 필요가 있는 아티스트임엔 분명하다.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는 별칭을 가진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전시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생전의 백남준이 경기도와 설립 계약을 맺었던 미술관은 2008년 10월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백남준의 작품 세계와 철학의 면면을 알려왔다.

<코끼리 마차>와 등 국내 미공개 작을 비롯해 2000여 점의 작품이 관람객들에게 공개됐다. 국내 미술관 최초로 외국인 큐레이터를 기용했고, 2010년에는 제2의 백남준 발굴을 위한 '국제 예술상'을 제정했다. 지난해부터는 백남준 연구에 기폭제가 될 만한 서적들을 번역, 출간해오고 있다.

지난 3월 초, 백남준아트센터에 새로운 수장이 부임했다. 독립 큐레이터로 활약해온 박만우(본명 박동천·52) 신임 관장. 그는 백남준아트센터를 "대중친화적인 공간으로 조성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미디어 스케이프>전에 전시되는 백남준의 Suite 202, 1977(제공:백남준아트센터)
부임 후 첫 전시인 <미디어 스케이프>(4월 15일~7월 3일, 백남준의 글과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작가 작품전)을 준비 중인 박만우 관장을 3월 29일 만났다.

백남준아트센터를 대중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셨다. 가장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이긴 하지만 백남준이라는 문화적 콘텐츠가 대중적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대중친화적이란 말에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이런 발상은 개인적으로 20~30년 된 고민과 숙제의 산물이기도 하다. 과거 대학원을 졸업하고 KBS 교육제작국에서 구성작가로 일한 적이 있는데, 당시만 해도 석사가 드물어 고학력자축에 꼈다.

한번은 상사가 내게 안방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쓰라고 충고한 적이 있는데, 왜 우리는 BBC나 NBC처럼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끌어올릴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장경험을 하면서 많은 가능성을 봤다.

백남준아트센터는 개관 2년 만에 2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방문하는 분들이 꼭 미술 애호가들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오신 분들은 어렵다고 말하지만 문턱을 넘으려는 자세를 보고 관람편의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측면을 유지하면서도 전시와 관련된 퍼포먼스나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으로 대중친화적 측면을 강화하려고 한다.

<미디어 스페이프>전에 전시되는 Jeremy Bailey의 'presslmage'(제공:백남준아트센터)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

관객친화적인 제스처의 출발로 강의를 해볼까 한다. 아카데믹한 강의가 아니라 오전에 브런치를 하거나 카페라테를 마시면서 해도 좋다. 미디어 아트 일반과 백남준, 그리고 그의 미술사적 위치를 대화로 편안하게 풀어가면서 관객과의 거리 좁히기에 나설까 한다.

또 도슨트와 자원봉사 시스템을 강화할 생각이다. 현재도 주말 11시, 2시, 4시에 도슨트를 운영하는데 많은 관객이 모인다. 미술관 종사자로서 그런 모습을 목격하는 것보다 행복한 순간은 없다. 도슨트들의 역량이 뛰어나서 한 단계 더 적극적인 형태의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해보려고 한다.

미술관 지킴이든, 도슨트든 작품이나 미술관에 대해 이해하는 바가 많을수록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처럼 완성된 콘텐츠에 대해 정해준 원고를 전달하는 정도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기획이 잡힌 상태에서부터 워크숍에 참여해 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형태를 취하려고 한다.

5년에 한 번씩 하는 카셀 도큐멘타에서도 3년 전부터 다양한 직종의 도슨트들이 워크숍을 통해 전시 과정을 이해하는 과정을 갖고 각자의 시각을 투영해 '프리 스타일'의 작품 설명을 한다. 이런 방식을 광주 비엔날레에서도 해보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4월 중순, 백남준 라이브러리도 개관한다. 누가 주로 이용하게 되나.

현재 이곳은 용인시의 '작은 도서관' 프로젝트 일환으로 조성된다. 주말마다 관찰해보니 인근 주민들 중에 젊은 맞벌이 부부가 많다.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미술관을 방문한다. 그래서 라이브러리를 어린이를 위한 공간으로 꾸미려고 한다.

가족이 전시를 본 후 부부가 위층에서 차를 마시면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책도 읽고 놀이도 할 수 있게 만들려고 한다. 갖추어 가는 중이지만 차츰 아이들 공간처럼 바닥 매트와 알록달록한 책걸상도 놓으려고 한다. 논문을 쓸 때 이곳에서 자료 요청을 하면 학예실에서 필요한 자료를 대여할 수도 있다.

2~3년에 한 번씩 블록버스터 전시나 페스티벌을 진행하겠다는 계획도 밝힌 바 있다.

백남아트센터가 용인시에 있지만 다른 지역에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콘텐츠를 제공하느냐이다. 그런 면에서 상설전보다는 특별전이 미술관에 오지 않던 이들이 미술관 문턱을 넘고 뮤지엄 고어(Museum goer)가 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대규모 국제 교류전을 많이 해와 골라야 할 정도로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백남준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기 때문에 특별전의 장르가 미디어 아트에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백남준과는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가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할 당시 KBS에 재직하고 있어서 오며 가며 마주치기는 했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다. 하지만 1985년에 파리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그분의 위상이 굉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2006년 작고하신 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최초로 백남준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 열렸는데, 발표자로 초청받았다. 그때 많은 분들께 도움도 받고 공부도 많이 했다. 그곳에서 백남준아트센터가 기공식을 한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이렇게 인연이 이어졌다.(웃음)

알면 알수록 백남준은 위대한 아티스트다. 96년에 풍을 맞았지만 2002년 구겐하임 전시에서도 레이저가 들어간 작품을 했다. 자칫 20세기에만 머물 뻔했던 그는 21세기까지 겨냥하고 있었다.

브라운관에 갇혀 있던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너무 빨리 돌아가셨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면이 있다. 이런 부분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할 일이다.

오랫동안 미술계 현장에 있었다. 외부에서 보기에 백남준아트센터는 어떤 곳이었나.

학술 연구에 강점이 있고 백남준 연구가 부족한 현실에서 구심점이 되려는 노력도 높이 평가했다. 아쉬운 부분은 미술계 전문 인사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다소 배타적인 기관이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국공립 큐레이터와 정보 공유가 가능했는데, 누가 일하는지도 잘 몰랐으니까.

그래서 인터커뮤니케이션과 동시에 인트라커뮤니케이션에도 신경 쓰고 있다. 인트라커뮤니케이션은 일종의 스파게티 시스템이다. 스파게티 면이 하나를 집으면 여러 개가 딸려 오듯, 조직의 유연성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 회계부나 시설관리하는 분들까지도 어떤 전시가 기획 중인지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신의 일처럼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곧 서비스의 질이 달라진다.

문화행사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과 공유다. 21세기에서 창의성은 혼자 앓는다고 발현되지 않는다. 유튜브나 페이스북도 처음에는 돈을 벌려고 한 게 아니라 재미를 공유하려고 만든 것이 아닌가. 나누면 흥미는 배가 된다. 마찬가지다. 기획하는 전시를 프리젠테이션하면, 전시는 곧 홍보, 교육 콘텐츠로 전환된다. 백남준의 예술 철학도 바로 공유와 재미였다.

백남준이라는 문화 콘텐츠를 확장시키는 일도 백남준아트센터의 역할이 아닐까 싶은데…

그 가능성은 도시 디자인, 건축, 영화, 음악 콘텐츠 분야까지 확장될 수 있다. 백남준의 아이디어와 영감을 따라서 반드시 실현할 것이다. 현재 백남준이 5세부터 12세의 아동들에게 읽힐 수 있는 출판물로 제작되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재는 타당성 검토 기간인데, 긍정적이라고 본다.

현재 검토하는 팀이 샤넬을 콘텐츠로 일러스트가 풍부한 60여 페이지 분량의 책을 만든 것을 보았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이런 방식으로 삽화를 풍부하게 넣어 파리의 대형 출판사에서 펴내려고 한다. 가능하면 백남준 탄생 80주년인 내년에 맞춰서 출간하려고 한다.

박만우 관장은…
서울대 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파리1대학에서 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해왔으며, 2001년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과 2005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을 역임했다. 올해 1월과 3월에 각각 아틀리에 에르메스 예술감독과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으로 선임되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