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여성주의 이슈와 사회변화 맞춰 더 밝고 대중적 작품 선보여

바나나 귀걸이에, 형형색색의 과일 목걸이로 치장할 정도로 튀는 감각의 소유자. 이 여인은 미용기술이 뛰어나지만 도드라지게 살진 몸은 미용실 취직조차 가로막는다. 결국 자신이 직접 미용실을 차리기로 하는데...

뚱뚱한 중년 여성이 사회에서 프로로서 멋지게 살아남는, 독일 영화 <헤어드레서>(감독 도리스 되리, 2010)는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IWFFIS)의 개막작이다. 예쁘고, 젊어야 하며, 게다가 날씬해야 한다는 여성의 외모에 대한 사회적 잣대는 영화 속에도 존재하지만, 주인공은 유쾌하게 편견을 밟고 일어선다.

수 편의 개막작 후보 중 치열한 논의를 거쳐 간택된 이 영화는, 감독 도리스 되리의 문학적인 표현력과 더불어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받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이 그동안 작품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다소 무겁고 어렵다는 관객의 의견을 수렴해, 올해는 더 밝고 대중적인 작품이 올려졌다. 매년 여성 영화의 축제이자,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민감한 여성 문제들까지 포용해온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4월 7일 개막해 14일까지 이어진다.

올해로 13번째 봄을 맞이하는 영화제는 좋은 에너지와 생명력을 오픈 마인드로 나누자는 의미에서 '활개(活開)'를 키워드로 정했다. 열두 달로 1년이 정리되듯, 올해는 지난 12회를 마치고 새로운 주기를 시작하는 첫 해이기도 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 '헤어드레서'
여성주의 이슈와 사회의 변화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남녀의 대립이 아닌 공존을 외치며 남성 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오픈 시네마' 섹션이 지나 10회 때부터 이어져 왔다.

또 이보다 한 해 먼저, 다문화 여성들을 포용하며 그들이 영화 제작을 할 수 있는 워크숍도 마련해왔다. 올해는 그동안 워크숍에서 영화 제작을 한 차례 이상 배웠던 이주 여성들이 전문성을 확보해 다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문인 '단편 경선' 수상자들이 대중영화로 진출하는 사례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있다. <파주>의 박찬욱 감독, <미스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 <여고괴담 3>의 윤재연 감독 등이다. 20대 관객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던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는 이제 부부와 모녀들이 찾는다. 외국인 관객의 숫자도 크게 늘었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진화해가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변재란(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미디어학부 교수) 공동집행위원장을 만나 올해 영화제의 특징과 주목할 만한 작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사단법인 여성문화예술기획 초대 사무국장을 지내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태동부터 함께해온 그녀는 영화 평론가, 교수, 공동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반쪽이의 육아일기>로 유명한 만화가 최정현 씨가 남편으로, 1995년 제1회 평등부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램을 보니, 장르나 소재 등이 다채롭다. 아시아 스펙트럼에서는 중국 여성 영화를 다루고 있는데, 올해의 특징이라면.

최근 여성 중국 감독들이 글로벌하게 활동 중이다. 중국 영화의 약진하는 기운을 받아보고자 아시아 스펙트럼으로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또 영상이라는 틀 안에는 극영화나 다큐만 존재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들에겐 UCC나 게임, 애니 등 영상을 접하는 층위가 다양해졌고 아이폰으로도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우리 역시 영화뿐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비디오 아트로까지 영상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고 봤다. 이번에는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있는 작품도 출품되어 한층 신선한 시선을 만나 볼 수 있다.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고 최고은 작가도 여성 영화인이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 영화인으로 살아가기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나.

최고은 씨는 밖으로 드러난 사례이지만, 한국에는 여전히 수많은 최고은 씨가 존재한다. 그래서 여성으로서 영화를 한다는 것, 예술을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가 살펴봤다.

또 우리 영화제가 이들의 삶과 현실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제도화된 사회 안전망은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문화를 바꾸는 것은 영화제가 할 일이라고 봤다.

좋은 아이템의 영화 제작을 돕는 '피치&캐치'도 눈에 띄는 부분인데…

2000년대 중반까지 영화가 산업적인 성장을 이뤄왔는데, 이후에는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에게 보여지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겪는다.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시나리오 완고 상태가 될 때까지는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제를 단순히 완성된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데 자족하지 않고, 과정 중의 작품을 관객에게 소개도 하고, 전문가나 투자자와의 만남도 주선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 '피치&캐치'다.

다큐와 극 영화를 다섯 편씩 선정해 영화제 기간 동안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멘토 시스템을 가동한다. 지난해 선정된 작품 중 한 편이 <미스 고 프로젝트>로 고현정 씨를 캐스팅해 촬영 중이다.

다문화 가정 여성에게 영화 제작을 가르쳐주는 워크숍도 올해로 5회째다. 이런 프로젝트가 다문화 시대에 어떤 도움이 될 거라고 보는가.

다문화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한류도 마찬가지인데, 무엇이든 어떻게 하면 우리 것을 팽창시켜 수익을 창출하는가에 집중한다. 팽창주의적이고 공격적이며 다소 패권적이기까지 한 사고가 있는 것 같다.

다문화든, 한류든 전적으로 '교류'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시집 온 베트남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우리 것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도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때때로 베트남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기사를 보면, 남녀 간의 권력관계가 민족의 권력관계로까지 복잡다단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놓치지 않고 봐야 할 작품이 있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다 좋지만, 일단 개막작과 강력한 개막작 후보작이었던, 명예살인을 소재로 한 <우리가 떠날 때>는 꼭 봤으면 한다.

감독 자신의 육아 현실을 10년 동안 다큐멘터리로 촬영해온 <아이들>, 지난해 '피치&캐치' 지원작으로 옥랑 재단에서 후원한 <두 개의 선>, 인도 최하층 여성의 삶을 조명한 <핑크 사리>, 주부를 중심으로 끌어가는 <퍼즐>, <네 여자의 수다>와 <관음산>도 놓칠 수 없는 영화다.

여성들의 옷과 가방, 구두의 재료가 되는 밍크나 가죽의 잔혹한 제조과정이 담긴 <나의 신상 구두>, 주부가 하룻밤 동안 사건을 겪고 성찰하는 <피아노 없는 여자>도 권장하고 싶은 영화다.

한국영화 회고전에서는 대학생이던 내게 영화가 '현실에 대한 징후적인 분석의 형태로 관객들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바보선언>과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애니메이션의 색다른 면모를 경험할 수 있는 '애니-X'세션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