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여성복 싫어 남성복 전향… 서울 패션위크서 시선 집중

파격, 창조, 실험이라는 단어는 이제 패션계에서 그 중요성이 상당히 약화됐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감성을 어떻게 드러낼까 이상으로 어떻게 감출까에 대해서도 영리하게 대응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번 시즌 서울패션위크는 '입을 수 있는 옷들'의 향연이었다.

그 사이에서 드는 생각은 "와, 이제 드디어 팔 수 있겠구나"와 더불어 "그럼 이제 특이한 옷들은 어디에 가서 봐야 하지?" 같은 일종의 허전함. 언바운디드 어위의 컬렉션이 유독 눈에 띈 것은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한다.

화이트와 민트 컬러가 1대 1로 '쾅' 충돌하는 수트, 매끈한 모직과 인조 양털(그것도 아동복 외투 안감에 쓰는 뽀송뽀송한)의 계산 없는 조화, 거대한 레몬색 아웃 포켓, 스트라이프라고 하기에는 너무 강렬한 컬러 블로킹, 한 손으로 다 쥘 수도 없는 두꺼운 소재. 이 겁 없는 디자이너는 대체 누구인가.

샘플실이 나란히 붙어 있는 망원동 아틀리에에서 언바운디드 어위의 구원정 디자이너를 만났다. 그는 짧은 베이비 펌에 매장 한 켠을 가린 천과 똑 같은 원단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다가 큰 소리로 웃어 젖히다가를 반복했다.

여성복에서 남성복으로 전향한 이유에 대해 "한국의 여성스럽고 우아한 옷들이 싫어서"라고 답하는 그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싫으냐고 묻자 기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옷이요."

컬렉션이 대단히 유쾌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전 시즌을 보니 이번 것이 가장 어둡더라. 원래 밝고 경쾌한 옷들을 좋아하나.

위트 있는 옷들이 좋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옷. 나는 언바운디드 어위를 가능하면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입어 주었으면 하는데 그 이유는 어린 친구들은 그 자체로 유쾌하고 빛나기 때문에 굳이 이런 옷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30대 이상의 남자가 자신의 특별한 감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선택하고,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이 "어머, 뭐 저런 걸 입었어" 하는 게 아니라 "와, 당신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려"라고 평해주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브랜드가 오래 돼서 나이가 들더라도 유머러스함과 위트는 그대로 가져 가고 싶다. 마치 위트와 센스로 넘치는 귀여운 할아버지처럼.

어린 맛에 치기로 선택하는 과감함이 아니라 체질화된 특별함을 원하는 건가. 그런데 왜 남성복인가. 한국의 남성복은 아직도 대단히 보수적인데.

그러게 말이다. 홍익대에서 패션을 전공하면서 당연한 듯이 여성복을 시작했고 Y&K에 입사했지만 남성복의 간결함, 직선적인 멋들이 그리워졌다.

결국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현지 패션 기업에서 잠깐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쌓은 것들을 빨리 표출하고 싶은 마음에 귀국해서 내 레이블을 만들었다.

직선적이고 간결한 것들이 좋아지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

글쎄, 남자친구? 하하하. 이건 농담이고 그냥 우아하기만 한 한국 여성 패션이 잘 맞지 않았다.

여자의 몸으로(?) 남성복을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나?

그야말로 시행착오가 컸다. 내가 좋아하는 남성복과 남자들이 입고 싶어하는 옷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갭이 존재하더라. 특히 남자들이 선택하는 컬러와 아이템이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결국 이번 시즌에는 남편의 의견을 받아 들여 (그의 남편은 란도리 202를 전개했던 디자이너 양근영 씨다) 아이템은 전부 코트나 수트 같은 클래식한 것들로 바꿨다. 이전에는 색깔이나 프린트는 물론이고 아이템 자체가 다 기존에 없던 것들이었다. 셔츠에 날개 같은 케이프가 달려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여성적인 것도 싫어하더니 남성적인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성별이 모호한 것이 좋다. 무엇보다 판에 박힌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미지가 싫다. 중요한 건 남자냐, 여자냐가 아니라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기존에 없던,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 이미지들에 끌린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이미지가 떠돌아다닌다. 그 중 무엇과도 겹치지 않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글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다. 어위(AWE)는 A와 WE의 합성어인데 A는 브랜드의 심볼이자 화자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처럼 여기저기 사람들을 가상의 세계로 끌고 다닌다.

이번 시즌에는 토끼(에이 래빗)가 붕대로 칭칭 감긴 미라와 그와 함께 묻힌 고양이 미라를 발견했다. 이런 내용을 짤막한 글로 쓰고 그걸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미지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보다 글을 이미지로 표현할 때 '나'라는 필터가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소재도 특이한 것들이 많다. 완전히 다른 소재들을 이어 붙여서 대비시킨 것이 인상적이었다.

전체 소재의 20~30% 정도는 개발을 한다. 패치 워크뿐 아니라 디지털 프린팅, 그래픽 작업을 많이 한다. 붕대가 그려진 원단은 실제 붕대를 스캔해서 천 위에 프린팅한 것이다.

이런 작업은 샘플실이 바로 옆에 있어서 가능하다. 아무리 과감한 소재를 개발하고 특별한 디자인을 해도 실제 옷으로 나오면 마음 같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샘플실이 붙어 있으니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옷은 더 웨어러블해지기도 하고 더 창의적이 되기도 한다. 언바운디드 어위 전용 샘플실이기 때문에 비용은 많이 들어갔지만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지금 전 세계 패션계의 중요한 화두는 '웨어러블'이다. 플로우나 므스크 등 여러 편집숍에서 잘 팔리고 있긴 하지만 분명히 고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웨어러블함이 트렌드인 건 안다. 언바운디드 어위의 옷들에 남성성을 더하고 실험성을 줄이는 것도 그런 고민의 결과다. 디자이너는 취하고 버리는 것을 잘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트렌드를 쫓아가는 성격이 못 된다.

앞으로는 언바운디드의 컬렉션은 좀 더 정제하는 대신, 요즘 새로 준비하고 있는 여성복이 있는데 여기에 풀어내지 못한 것들을 몽땅 쏟아 내려고 한다.

여성복은 어떤 콘셉트인가. 언바운디드 어위의 여성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어디서 볼 수 있나?

지금 나온 것은 하나도 없다. '미미카위'라는 이름만 지어 놓은 상태다. 미믹(mimic)과 어위의 합성어인데, 물론 언바운디드 어위와 공통분모가 있겠지만 시장의 반응을 딱히 고려하지 않은 옷이라고 보면 된다. 디자이너의 자족을 위한 옷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기대가 된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달라. 해외 진출도 고려하고 있지 않나.

이번 시즌 홍콩과 대만, 2군데에서 주문을 받았고 서구권에도 진출할 계획이 있다. 서울패션위크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앞으로 계속 나가려고 한다. 다음 컬렉션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엘리펀트 맨>에서 영감을 받은 옷을 선보일 계획이다. 기형적인 외면과 순수한 내면에서 오는 이질감이 테마가 될 것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