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화가 김웅]한국적 전통 기반 고유성ㆍ세계성 두루 갖춘 작품의 큰 울림

"전시를 위해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여기가 좋겠네요."

미국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는 재미화가 김웅(67)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예화랑에서 갖는 전시에서 사진촬영을 요청하는 의 요청에 1층을 마다하고 2층의 그 작품 앞에 섰다.

그가 살짝 비켜서자 정면으로 마주한 작품은 4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그가 굳이 그 작품을 택한 이유를 실감케 했다. 고국의 같은 화랑에서 4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은 더욱 깊어진 색감과 관조의 심안을 지녔다. 구석구석 세밀한 구성과 붓 터치, 두께를 더한 질감까지 그가 작품에 쏟은 열정과 성실함이 자연스레 배어난다.

각기 다른 40점의 작품들은 공통의 끈으로 연결돼 있으면서 동사에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있다. 우선 추억, 또는 기억을 매개로 여러 이미지를 융합하는 작업 방식은 여전하다.

그는 "기억 속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있다"면서 "그림 속 형상은 내밀한 내 추억의 집합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 속 추상적 형상은 작가가 보고 싶을 때 마다 떠올리는 '기억 속 심상'인 셈이다.

'Untitled 1-11', Oil on canvas 2011
그의 온갖 이미지를 저장해 둔 기억의 지층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넓게 자리한다. 시골집, 창호지, 장판, 베겟모, 바느질, 눈덮인 산 등. 그의 작품에 장판의 질감과 빛남, 소박한 목가구의 표면, 화려한 꽃무늬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질서를 이루며 작은 우주를 연상케 하는 것은 유년의 기억과 연계돼 있다. 그의 작품에서 한국적 정서가 묻어나는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

그러면서 동서와 시공,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풍요롭고 세련된 화풍을 유지하는 것은 현대미술의 중심인 뉴욕에서 40년 가까이 화업을 지속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1969년 이후 뉴욕으로 건너가 스쿨 오브 비쥬얼아트 미술대학과 예일대 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모교(스쿨 오브 비주얼아트) 교수로 재직하며 뉴욕 하워드 스콧 갤러리 전속작가로 작업을 병행했다. 요즘은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그의 창작은 한국적인 전통에 기반하면서 세계적인 당대성을 끊임없이 수용해 제3의 미적 세계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을 비롯해 남미, 인디안 등의 민화와 민속에 천착해 작업에 도입하는 방식은 그만의 독창성을 강화한다. 그의 작품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되는 등 큰 호응과 반향을 얻고 있는 것은 고유성과 세계성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으로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내면의, 마음속의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Untitled 3-11', Oil on canvas 2011
그는 '아름다움'에 대해 "오래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화면에서 새로운 뭔가를 계속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운 작업'을 붓을 놓는 순간까지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사실 이미 그는 새로운 '아름다운 작업'에 들어섰다. 4년 만에 다시 마주한 김웅의 그림은 적잖이 변했고, 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것은 신작에 자주 보이는 '산'으로 상징된다.

그는 작업의 모티프를 도자나 패션잡지, 실내 소장품 등에서 얻곤 했다. 언제부터인지 그는 실내보다 자연으로 나가 작품의 모티프를 발견했다. 여행하면서 마주한 산이 심상으로 그려지고 어린시절 기억이 뚜렷한 눈 쌓인 흰 산이 오버랩되면서 인생의 깊이를 드러내는 색감과 구도를 건져냈다. 화려하고 도전적인 붉은색이나 단색이 줄고 청색과 회색 계열의 무게 있는 색들이 화면의 중심이 됐다.

그는 산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여행도 많이 다니겠다고 한다. 앞으로 도시를 떠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뜻도 나타냈다. 그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 유년의 기억은 어쩌면 자연을 찾는 그의 심안과 오래 전부터 맞닿아 있는지 모른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에서 우러난 그림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오래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 수 있는 김웅의 '아름다운 그림'은 6월 23일까지 만날 수 있다.

그는 뉴욕으로 돌아가면 자연에서 심신을 추스린 후 새 작품을 창작하겠다고 한다. 그의 다음 작업이 기대된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