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 레지던시서 '건축가 민현식의 공부법' 진행

4월 20일 민현식 건축가가 성북동 테이크아웃드로잉에 '공부방'을 차렸다.

책장에 가장 먼저 꽂은 것은 존 버거의 책들이었다. 인연이 있다. 영국 런던에서 공부했던 1989년, 처음 만난 '불온서적'들이다.

학교 앞 '레닌 숍'에 들어가기조차 두려웠던 그에게 동료가 권한 'Permanent Red'는 금단의 열매 같았다. 반공교육에 따르면 읽어서는 안 됐지만, 펼치는 순간 놓을 수 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존 버거의 책들을 섭렵했다.

비로소 한국사회가 얼마나 불온한지 깨달았다.

"당시 받았던 문화적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폐쇄된 사회에서 편협한 통로만을 통해 받아들였던 정보들은 얼마나 왜곡된 것이었으며, 분단의 비극이 낳은 금기의 사회에서 사유의 자유는 얼마나 기형적이었나. 더구나 내가 질문할 능력조차 잃은 불구자임을 깨달았을 때의 자괴감은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4월 26일 일기 중)"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반쪽 세상' 밖에 눈을 뜬 후 민현식 건축가가 넓혀 온 공부 편력으로 어느새 책장은 북적북적해졌다. 발터 벤야민과 이탈로 칼비노의 도시에 대한 사유, 마르크스와 체게바라의 혁명의 꿈, 세계전후문학전집의 역사와 인간에 대한 질문….

그중 한 권, E.H. 카의 '도스또예프스키 평전'을 손 가는 대로 펼쳤더니 메모와 밑줄, 읽은 흔적이 있다. 위쪽엔 본문 중 한 구절인 '가장 명예로운 죽음'이 연필로 다시 적혀 있다. '우리를 관대히 봐주고 우리의 행복을 용서해주게, 라고 공작은 조용히 말했다'에는 물결무늬 밑줄과 형광 노란색 덧줄이 그어졌다.

앞머리엔 빨간 동그라미 스티커까지 붙었다. '이것이 문학에서 얻을 수 있는 위대한 대답 중의 하나이다'라는 문장에도 물결무늬 밑줄과 형광 분홍색 덧줄이 있다. 표시마다 뜻이 다르고, 여러 시간과 서성거림이 겹쳐 있어 쉽게 넘길 수가 없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는 민현식 건축가가 직접 정리한 간이 계보도가 나온다. 대하소설이라 그마저도 여러 장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 Invisible Cities'는 여백마다 영어 단어의 뜻으로 빽빽하다. 책 자체가 민현식 건축가의 공부 기술이다.

그뿐인가. 아예 카페 한쪽에 책상을 가져다 두고 본 보이듯, 틈틈이 머문다. 책장의 책에 대한 사연을 쓰고 있는 중이다. 날짜를 달아 일기처럼 테이크아웃드로잉 홈페이지(www.takeoutdrawing.com)에 공개한다. 공부에 대한 성찰이다.

"'평전', '자서전' 그리고 한 인생을 소설화한 것들을 꽂는다. 가끔씩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었지만, 5년 전부터 부쩍 평전을 자주, 여러 권 읽었다. 평전을 읽는 기쁨이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평전'은 한 인생의 서사이기도 하고, 그 인생을 바라보는 저자의 특별한 관점이지만, 또한 그 인생이 살다간 그 시대의 서사이며 그리고 그 시대를 읽는 저자의 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나를 성찰하는 좋은 지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5월 3일 일기 중)"

독서목록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늘어나고, 책들이 읽는 이와의 내면의 대화로 두터워지며, 읽는 이가 책장과 더불어 인생을 정돈하는 과정. '건축가 민현식의 공부법'이라는 제목으로 6월 19일까지 진행되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카페 레지던시에서는 이 시대의 한 열렬하고 성실한 학생이 평생 어떤 사유와 이야기를 거쳐 자신과 세계를 세워 왔는지 목격할 수 있다.

지난 9일 민현식 건축가를 만났다.

카페 레지던시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Invisble Cities'
1년 전쯤 작업실을 이 건물 윗층으로 옮겼어요. 그래서 가끔 들락날락했는데 일반적인 전시도 아닌, 완벽한 레지던시도 아닌 요상한 일들이 벌어지더라고요.(웃음) 예술가들이 서재를 공개하는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한 예술가의 책장에서 제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발견했어요.

잘 알려진 분이 아니라, 아, 이렇게 연결될 수도 있구나 반가웠지요. 그래서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제안을 받았을 때 야멸차게 거절을 못하고(웃음) 하기로 해놓고 굉장히 고민했어요.

그 시집이 뭐였나요?

저기 꽂혀 있는데….(책장에서 김사인의 '가만히 좋아하는'을 뽑아 펼치더니) 이 시, '코스모스' 때문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읽었거든요.(누구도 핍박해 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그런데 뭐가 고민이셨어요?

일기를 쓰라고 해서….(웃음) 제일 우려됐던 건, 폼 잡는 일이 아닐까. 독서량을 과시하는 게 될까봐서요. 보는 분들이 저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되겠지만, 그게 가치 있는 일인지도 문제고요.

건축 분야가 아닌 책들을 가져다 놨는데, 그렇다고 이 책들이 내 건축과 상관없을까, 민현식에게서 건축가라는 정체성을 떼어내면 뭐가 남을까, 싶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존 버거의 책을 가장 먼저 가져다 놓으셨는데, 의미가 있나요?

1989년에 영국 런던에서 1년간 공부할 때 접한 책이에요. 당시엔 한국이 엉망이라 출국 전 자유센터에서 반공교육을 받을 정도였어요. 존 버거의 책들도 봐서는 안됐는데, 읽다 보니 점점 빠져들더라고요. 아, 내가 반쪽 세상에 살았구나, 하고 발터 벤야민, 마르크스, 앵겔스…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그리고 귀국할 때 고민에 빠졌죠.

모은 책들을 가지고 가야 하나, 책만 뺏기는 게 아닐 텐데… 하고요. 결국 짐 속에 뿔뿔이 흩어 넣어 왔는데, 와보니 이 책들이 서점에 다 있더라고요. 어찌나 허탈하던지. 그새 완전히 달라진 거죠.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났어요.

책에 메모를 많이 하셨던데요.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에요. 건축하는 사람들 습관이기도 하고요. 손을 가만히 두면 불안하거든요.(웃음) 끼적거려 놓으면 정리가 되고, 나중에 다시 보면 책 읽은 기억이 나니까요. 몸과 생각을 같이 놀게 하는 방법이기도 해요. 다시 볼 때마다 끼적거린 당시에 내 몸이 어떻게 작동했는지가 머릿속에 들어와요.

평전을 많이 읽으시는 이유가 있나요?

진짜 이야기이고, 주인공뿐 아니라 작가의 관점이 보이는 게 좋아요. 특히 한 사람에 대한 여러 작가의 평전들을 함께 보면 재미있죠.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경우에는 자서전과 평전을 함께 읽었는데, 자서전에 대한 평전의 언급 때문에 더 흥미로웠죠. 자서전의 상당 부분은 거짓말이지만, 그 사람이 그런 건축가가 되고 싶어 했다는 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었어요.

공부방에 중요한 것이 좋은 풍경이라고 하셨는데, 좋은 풍경이 뭔가요?

얼마 전 아름다운 것이 뭐냐는 질문을 받아 떠오른 게 있어요. 박재삼 시인의 시 중 '바람과 햇빛에 끊임없이 출렁이는 나뭇잎의 물살'이라는 구절이에요. 나뭇잎이 아니라 나뭇잎의 물살이 아름다운 거죠. 나뭇잎이 바람과 햇빛을 만나 움직이는 것 말입니다. 그런 풍경이 보이는 게 중요하죠. '관광'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관광버스에서 아주머니들이 춤추는 게 먼저 떠오르지만(웃음) 원래 '빛을 본다'는 뜻이거든요. 풍광이 좋다는 말도 있잖아요.

선생님께 좋은 풍경은요?

건축가 입장에서 집을 지을 때는 몇 가지 기준에 따라 풍경이 '보이도록' 하죠. 마당에 심을 나무를 결정할 때는 잎과 가지가 좋은 나무라는 기준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야 바람, 햇빛에 잘 조응하거든요. 그중 여기에서 가장 잘 생존할 수 있는 나무를 고르는 거죠. 서쪽에 벽을 쌓을 때는 붉은 벽돌을 씁니다.

석양을 받았을 때 아름답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지고, 때가 잘 묻는 재료를 선택하기도 해요. 공간의 성격에 따라 좋은 풍경이 달라질 수도 있죠. 동해 바다에 갔을 때는 5만 원을 더 주고라도 바다가 보이는 방에 묵지만, 일상적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렇게 드라마틱한 건 좋지 않아요.

이곳 풍경은 어떤가요?

창 밖으로 보이는 게 일류 풍경은 아니지만,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이 내부는 미장원이었던 흔적을 남겨 놓아 괜찮은 것 같아요. 요즘 제 고민 중 하나가 새 것을 짓는다고 지금까지의 시간과 기억을 부정하고 백지로 만드는 게 옳은 일인가, 좋은 일인가, 하는 거예요.

창조적 파괴를 내세우는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의심이죠. 건축의 두 축이 시간과 공간인데, 시간을 버리고 공간만 남은 건축은 기형적이지 않나요. 도시와 기억의 문제가 녹아 있는 이탈로 칼비노의 'Invisible Cities'도 항상 저를 생각하게 만들어요.

서울을 좋아하시나요?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운 자식도 자식이니까요.(웃음)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