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최근 으로 '음식 유래 이야기' 시리즈 이어가

"후추 하나로도 경제사를 풀어갈 수 있어요. 동양에서도 귀했지만 특히 서양에서 후추는 금의 가치와 비슷했거든요. 인도에서 나온 후추(를 비롯한 양념류)는 아랍, 베니스를 거쳐 유럽으로 퍼집니다.

서양의 중세시대에 아랍은 후추무역을 통해 전성기를 누렸고, 이후 베니스가 이 무역권을 잡아 번성하게 되죠. 이것이 포르투갈로 넘어갑니다. 스페인이 인도로 향하는 바닷길을 포르투갈에 선점당하면서, 멀리 돌아가다 보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 거죠.

여기에서 고추를 발견하잖아요? 이때부터 세계 경제사가 양념이 아닌 화폐에 의한 경제사로 바뀌게 됩니다. 고추가 후추의 대체재로 떠오르면서 가능해졌죠. 재미있지 않아요?"

음식 재료 하나만 툭 던지듯 꺼내도 동서양의 역사를 훑어내는 그는 음식문화평론가 윤덕노(53)씨다. 25년간 생활을 해오던 그가 음식에 대해 결정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베이징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부터다.

2000년부터 3년간 중국 곳곳의 음식점을 드나들던 그에게 중국의 음식과 음식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이 많았다. 무협영화에 나올 법한 식당에 얽힌 200년 역사와 청나라 황제의 마지막 주방장의 손자가 차린 음식점의 맛, 국가 주석이 즐겨 먹던 음식 등등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했다.

지위와 관계없이 생존에 필수적이면서도 천양지차의 맛의 세계가 있으며,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가 된 방대한 음식의 역사는 곧 그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왜 장모님은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주실까?', '떡볶이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한 것일까?' 혹은 '왜 고사 상에 돼지 머리를 얹을까?' 등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금껏 당연시 여겨졌던, 으레 오랜 전통이라 여겨졌던 관습적인 식습관이 언제부터, 왜 생겨났는지 추적해가기 시작했다.

생활을 할 때부터 습관처럼 모아오던 자료들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한국의 문헌을 뒤적여가며 6년을 꼬박 파고들던 중, 수백 개의 아이템을 찾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음식에 관한 몇 권의 책을 계속해서 써오고 있다.

첫 책이었던 <음식잡학사전>(2007)에서는 70여 개의 음식을 소개하면서 그 음식과 관련한 역사와 문화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 안에는 랍스터가 지금처럼 고급 요리가 아닌 미국의 노동자들이 질리도록 먹던 음식이라는 이색적인 사실도 적혀 있다.

이어 <장모님은 왜 씨암탉을 잡아주실까>와 <붕어빵에도 족보가 있다>를 펴냈고, 최근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듯, 잘 알지 못하는 밥에 대한 문화사 <신의 선물, 밥> 등으로 '음식 유래 이야기'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밥의 상징성을 짚어보고자 했죠. 죽과 국밥을 넣지 못한 게 아쉽지만 밥의 역사를 살펴보는 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음식 얘기는 항상 재미가 있어요. 주역에는 닭에 양기가 많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곧 여자보다 남자에게 좋단 얘기지요. 하지만 이것은 아직까지는 가능성이 있는 추론에 불과해요.

하지만 고려사절요에 보면 신돈이 정력을 키우기 위해 닭을 잡아먹었단 얘기도 나오거든요. 이런 식으로 보편 타당성 있는 논리 체계를 만들어 가는 거죠. 또 고사 상에 왜 돼지머리를 놓느냐를 보려면 우리 고대신앙인 북두칠성 신앙과 도교 신앙에 밀접하게 닿아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죠.

돼지는 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도량을 재는 신인데, 이것은 곧 경제, 재물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돼지꿈 꾸면 돈 번다는 것도 이렇게 연결되는 겁니다."

앞뒤가 착착 맞아 들어간다. 그러나 음식과 관련한 역사서가 따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보니, 수많은 문헌에 한두 줄에 불과한 문장을 단초로 방대한 양의 역사서를 뒤지고, 퍼즐을 맞춰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이 과정에서 풍부한 상상력과 치밀한 논리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그가 인용하는 책의 95%이상은 반드시 원문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다. 하지만 모든 역사서가 당대에 쓰여진 것은 아니기에 적는 과정에서 오류는 없었을지, 신중하게 교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읽거나 듣기에는 흥미로워도 그렇게 풀어내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하지만 '밥'에 대한 책을 써낸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벌써부터 다음엔 어떤 음식의 유래를 살펴볼지 고민 중이다. 후보 중 하나가 과일에 대한 것인데, 그 중 '왜 사과를 선악과라고 하나?'에 대한 의문이 그를 과일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끌었다.

"창세기 어디에도 선악과가 사과라는 말은 없어요. 하지만 서양화에는 선악과로 늘 사과가 그려져 있죠. 살펴본 바로는 라틴어로 사과가 'malus'거든요. 여기엔 사과, 악, 돛대란 세 가지 뜻이 있지요.

곧 사과와 악이란 이중적인 뜻이 자연스럽게 선악과로 사과를 연상케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백설공주가 사과를 먹고 쓰러지는 경우를 비롯해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서양에서 사과는 그다지 좋은 인식의 과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죠."

'음식 유래 이야기' 시리즈의 마지막은 '김치'로 집필할 예정이라는 그는 "음식은 항상 진화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가 그동안 책을 써오면서 갖게 된 확고한 신념이라고도 했다.

"물론 전통음식은 있지만 그것이 배타적인 것은 아니에요. 김치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전통 음식이긴 하지만, 소금에 절이고 양념해서 먹는다는 김치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그런 음식은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특히 고춧가루는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왔고, 배추는 19세기 말에나 재배되기 시작했거든요. 김치를 고조선 때부터 먹었을 것 같지만 지금 먹는 김치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던 거죠. 이런 걸 통해서 보더라도 전통문화라는 것이 배타적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쌀 소비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 쌀도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일반 쌀보다 식이섬유가 많은 다이어트 쌀, 무기질이 많은 미네랄 쌀, 버섯 추출물을 입힌 버섯 쌀, 금박 입힌 금박 쌀까지 그 모습은 계속 변형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음식은 늘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서서히 이루어져 우리는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쉼 없이 변화가 일어나기에 음식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로운지도 모르겠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