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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주사위 놀이하듯 썼어요"

소설가 김중혁 <미스터 모노레일> 펴내
보드게임, 시트콤, 코미디 영화 섞어 놓은 듯한 소설
가끔 영화나 드라마가 해내지 못한 일을 소설이 해낼 때가 있다.

불면증 치료에 탁월하다든가, 혼자 밥 먹기 무안할 때 미장센으로 쓴다든가, 노트북 훔쳐보는 상사눈길 피해서 근무시간에 놀 수 있다든가…. 빳빳한 종이 재질이나 잉크 냄새 같은 아늑한 느낌도 소설만이 줄 수 있는 쾌감이다. (TV수상기나 멀티스크린의 물리적 느낌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소설의 이러저러한 장점에도 안락하고 편안한 재미 때문에 사람들은 영상을 더 선호하게 되는데, 김중혁의 소설은 앞서 말한 소설의 장점에다 (뭐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나 드라마 이상의 재미까지 준다.

그의 장편 <미스터 모노레일>은 작가의 장점이 십분 발휘된 소설이다. 문예지 <문학동네>에 연재한 이 작품은 보드게임 '헬로, 모노레일'을 만든 27살의 사업가 모노와 그 주변인들의 유럽여행기. 보드게임과 시트콤과 코미디 영화를 섞어 놓은 듯한 소설은 작가 특유의 발랄한 상상력과 입담이 더해져 읽는 맛을 더한다.

기준은 재미!

소설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김중혁은 재밌는 입담으로 꽤 알려졌지만, 소설은 커녕 뉴스 보기도 바쁜 독자를 대신해 간단히 그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작가 김중혁은 문학의 도시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그의 죽마고우는 소설가 김연수와 시인 문태준 등등. 이중 양 김씨의 우정이 특별하다 알려졌는데, 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기록지를 교환하다 친구가 됐다.

김연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김중혁은 대구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사이가 멀어지는 듯했지만, 김중혁이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학교수업을 내팽개치고 서울로 오는 바람에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 김중혁은 서울로 올라와 김연수의 자취방과 하숙방에 빌붙어 지낸 적이 많았는데, 미안함 때문에 하루 종일 밖에서 놀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열심히 놀던 그는 친구 김연수가 차세대 작가로 부상하면서 배신감에 문학에 매진해 2000년 겨울 <문학과사회>에 중편 '펭귄뉴스'를 발표하며 작가가 됐고, 두 권의 단편집과 <미스터 모노레일> 포함, 두 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김중혁, 김연수 에세이 <대책없이 해피앤딩>을 바탕으로 필자 마음대로 다시 쓰다.)

국내 활동하는 젊은 작가의 9할이 서울 소재 국문과나 문예창작과 출신이란 사실을 볼 때, 그의 이력을 꽤 특이하다. 그는 이성복 선생이 계시다는 얘길 듣고 계명대 국문과에 들어갔지만, 정작 선생이 국문과가 아니라 불문과 교수인 바람에 "4년 동안 테니스 치시는 모습만 보다"졸업했고, 묵묵히 혼자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며 소설을 썼다.

"혼자 어떻게 소설을 공부했느냐?"는 질문에 "소설은 전부 혼자 쓰는 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아티스트는 기본을 배우고 숙련하는 과정을 통해 대가가 되잖아요. 기본기를 배울 때 잘하는 사람한테 배우면 빠를 텐데, 저는 그걸 혼자서 한 거죠. 시간이 되~게 많으면 할 수 있어요. 학원에서 일주일 만에 배울 수 있는 포토샵 기술을 혼자서 모든 메뉴를 눌러가면서 해보면 한달 만에 익힐 수 있는 것처럼. 저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할 수 있어요."

등단한 뒤에도 그는 축구·여행·음식 전문 잡지의 기자를 하며 자신만의 취향을 살찌웠는데, 이 취향은 그의 소설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를테면 음악을 소재로 쓴 두 번째 단편집 <악기들의 도서관>처럼. 그는 요즘도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인디뮤지션 쇼케이스(발표회)의 사회, 인터넷 문학라디방송 PD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이런 활동이 알게 모르게 글 쓸 때 도움이 되겠죠. 근데 저는 생계형이에요. 일을 고르는 기준은 재밌고 저한테 배울만 한거죠. 저는 문학 강의나 심사를 안 하는데, 확고부동한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제 스타일과 달라서 안 하거든요."

그리고 신은 주사위를 만들었다

신작 소설은 이 유희적 취향의 결정판이다.

주인공 모노는 어느 날 눈을 뜨자마자 '헬로, 모노레일'이란 게임을 생각하고, 곧 게임의 룰을 만들기 시작한다. 모노는 지도를 펼친 후 유럽의 모든 도시 위에다 가상의 모노레일과 블루, 화이트, 레드, 블랙, 핑크 등 캐릭터를 만든다. '헬로 모노레일'은 공전의 히트를 치고, 모노는 순식간에 돈방석에 앉는다.

죽마고우 고우창과 고우창의 아버지 고갑수를 직원으로 채용하고 회사를 키워가지만, 모노가 유럽으로 휴가를 가면서 회사에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고갑수가 회사 돈 5억 원을 들고 벨기에로 사라진 것. 알고 보니 그는 '볼스 무브먼트'라는, 동그란 구(球)로 우주를 관장하는 '우주자'의 힘을 믿는 사이비 종교의 핵심 간부 '핀볼 성자'였다.

모노와 그의 친구들은 고갑수를 구하기 위해, 유럽 여러 도시를 스펙터클하게 헤맨다. 주사위 던지기로 운명을 가르는 '헬로 모노레일' 속 캐릭터들처럼.

"원래 유럽을 좋아해요. 큰 지역에 많은 나라가 붙어 있잖아요. 예전에 유럽철도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온갖 철도를 다 타봤어요. 그때 '나중에 기차를 소재로 소설 써야겠다' 생각했죠."

줄거리를 간추려 놓았지만, 그의 소설은 사건자체보다 사건을 맞는 캐릭터들의 반응이 더 재밌다. 볼스 무브먼트 교인들의 황당한 논리와 인물들의 독특한 말투와 작가의 능청스런 입담 끝에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꽤 커다란 반전도 기다리고 있다.

"첫 장편 <좀비들>을 끝내고 밝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만들고 주사위 던지듯 캐릭터가 알아서 움직이는 방법을 생각하고 바로 연재했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거나 주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인가? 읽으면서 나보코프의 <절망>이 생각났거든요. 이 작가 러시아 귀족출신이라 공부 엄청 많이 했다던데, 소설은 자기 지식과 별개로 '그냥' 썼거든요. 대표작이 <롤리타>잖아요. 나보코프가 <절망>을 냈을 때 사르트르가 해설 쓰고 망신당했데요. 그 해설 읽고 나보코프가 '이 책은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지도 않고, 인류에게 올바른 출구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평범한 독자라면 단순한 구성과 재미있는 이야기가 그저 반가울 것이다'고 썼다죠.

"이 소설 쓰면서 느꼈는데, 자기가 뭘 하는지 알 때는 재미가 없어지는 거 같아요. 스티븐 킹이 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주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 좋아해요. 주제가 먼저 정해지면 어떻게든 그 주제를 말하기 위해서 이야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떻게든 주제는 나오는 거 같아요. 물론 아주 드문 경우로 (자신의 소설책 짚으며) 주제가 없는 경우도 있는데(웃음), 대체로 이야기 속에는 주제가 있죠. 독자들이 교훈 얻는 걸 좋아하고 배우는 걸 좋아해서 각자 얻어가는데, 굳이 작가가 주제를 심을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놀이하듯 쓴 소설을 내고 나니 다시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단다. 세 번째 단편집과 다음에 쓸 장편에서는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쓸 예정이라고.

"최근에 구로 근처에 많이 갔는데 각자 다른 사람들이 한 건물 안에 모여살고 있더라고요. 세 번째 장편에서는 한 건물에서 함께 사는 특이한 직업군들을 다루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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