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오성윤 감독우리만의 정서 듬뿍 담긴 그림, 캐릭터, 이야기로 흥행 돌풍

방학은 애니메이션의 최대 성수기다. 특히 할리우드발 애니메이션들은 어린이 관객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들까지 포용하기 위해 총공세를 펼친다. 화려한 색감과 첨단 기술이 돋보이는 그림은 과연 더위에 지친 관객의 시선을 확 끈다. 때문에 여름은 상대적으로 국내 영화들이 버거울 수밖에 없는 시즌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지난주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의외로 국산 애니메이션인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이 작품은 함께 개봉한 해리 포터의 마지막 시리즈와 1, 2위를 다투고 있다. 개봉 전까지 가진 시사회에서도 호평들이 쏟아졌다. '암탉'이 주인공인 이 애니메이션에 왜 모두 열광하는 걸까.

하나 같은 찬사에는 공통적인 이유가 담겨 있다. 이제까지 나왔던 한국 애니메이션과는 주제나 그림이 다르다는 것이다. 황선미 작가의 원작은 동화라는 말이 무색하게 심오하고 철학적인 주제로 동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그러니 원작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은 애니메이션 역시 태생부터 남다른 작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성윤 감독 역시 이런 호평의 원동력이 '그림의 힘'과 '이야기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사실상 국산 애니메이션이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극장에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은 할리우드의 최첨단 기술이나 자본력을 가늠하는 문화자본이었다. 이처럼 척박한 국산 애니메이션 환경에서 오성윤 감독이 던진 승부수는 전례 없는 스타일로 관객들을 극장으로 유혹하고 있다.

원작 <마당을 나온 암탉>은 당시 국내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철학적인 주제가 있는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화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던 만큼, 각색할 때 확고한 기준이 있었을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가족용 영화를 타겟으로 한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작품은 특히 엄마와 아이가 같이 보는 영화를 목표로 했다. 그래서 원작과 달리 초록이 쪽으로 각색을 많이 했다. 원작 자체가 좀 무거워서 가볍게 하기 위해서 수달 캐릭터도 새로 만들었다.

또 요즘 관객들은 3D 기술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다른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주류의 기법을 따라가기보다 우리만의 장점을 극대화해서 차별화하고 싶었던 거다. 그것이 결국 '정서'였다. 우리만의 정서가 듬뿍 담긴 그림과, 그림의 정서가 여과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한국 애니메이션도 성공 사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존에는 지나치게 작품성이나 감독의 메시지 중심으로만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애니메이션이 나올 때도 됐다.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중흥을 위해서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고 생각도 많이 하게 한다. 그런데 요즘 관객들은 할리우드식 서사에 익숙해져 이런 콘셉트가 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외국의 애니메이션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드래곤 길들이기>에서는 주인공 소년이 다리 한 쪽을 잃고, <라따뚜이>에서는 악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인류는 더디지만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어린이/가족영화에서도 피상적인 교훈보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린 관객들은 이미 그런 걸 원하고 있는데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겁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배경 묘사에서 회화의 아름다움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볼 때 그 기준을 서양적인 것에 두고 보는데 그림에서는 동양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독특함이 있다.

"처음에는 더 동양적인 기법으로 가려고 했는데 작업하다보니 표현에 제한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서양화 기법을 혼용했다. 사실 방학 때 흔히 볼 수 있는 해외 애니메이션들의 3D 기법도 기본적으로는 그림을 기반으로 하는 형식인데, 획일적인 그림 제작 방식은 감상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로운 그림 형식으로 관객의 감성과 정서에 어필한다면 우리 애니메이션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 거기에서 새로운 스타일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

한국 애니메이션은 그동안 '아동용' 혹은 '극단적인 성인용'으로 양분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확실히 그 중간 지점에서 해법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역시 이야기의 힘이 가장 크다. 단순한 기승전결이 아니라, 철학적 깊이가 있는 작품의 메시지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됐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볼거리가 풍성한 그림이다.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하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작품 전반에서 유지되는가가 다양한 연령층을 포용할 수 있는 전제조건인 것 같다."

그동안 일반 시사도 거치고 여러 번 관객의 반응도 봤을 텐데. 완성도 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알다시피 주인공이 파격적인 결말을 맞는 작품이다. 감독은 등장인물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더 조심하고 더 감성적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런데 돌아보니 자연의 양면성이랄지 족제비의 모성에 대한 설명, 잎싹이가 자기정체성을 서서히 깨닫는 과정들이 제대로 삽입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형식 면에서도 작품 전반에서 기술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못해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띈다. 물론 예산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집중의 결과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작품으로 기록될 만한 작품이다. 벌써 다음 작품에 기대를 품는 사람들도 많은데,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다음 작품도 역시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웃음). 이번 작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족 애니메이션을 개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성격은 '자연주의 애니메이션'이 될 것이다. 즉 이 시대 모두의 고민이 된 생태, 환경, 생명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그래서 회사(오돌또기)를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와 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